<수필>

고향의 강 섬진강(蟾津江)

顧 問 李  源  珉(32世孫·牧使公派)

   내 고향은 하동읍이다. 산골의 작은 읍이지만 지라산과 백운산 사이를 맑게 흐르는 섬진강이 있어서 풍광이 아름답고 아담하고 가름진 들이 있고, 사람들이 소박하고 인정이 따뜻한 고장이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과 장수군의 경계에 위치한 팔공산에서 발원하여 3道 12개郡을 거쳐 갈이 225Km유역 면적 4,489㎢를 이루고, 오원천·운암강·적석강·순자강 등의 별명도 얻어 가면서 계곡인 듯, 강 인 듯, 수줍게흐르다가 전남 압록·구례를 지나서 경남 하동에 이르러 화개천과 어울리면서 비로소 큰 강의 모습을 드러내어 남해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고 깨끗한 강이다.

   나의 어릴적 꿈을 키워온 고향의 강은 섬진강560여 리 기나긴 강줄기 끝자락에 속하는 하동포구 80리이다.(하동포구 80리는 실제 거리가 아닌 情感의 거리이다.)
   하동 하면 산중의 소읍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내 어릴 때의 내 고향은 결코 산중이 아니었다. 수많은 화물선과 범선이 섬진강을 통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부산·통영·여수 등지에서 일용잡화 수산물 등을 싫어 올리고, 호남지방의 농산물을 실어 내려가는 교역의 거점이었다.

   그리고 1919년 까지는 화개면 탑리까지 발동선이 운항되어서 화개장터가 성시를 이루기도 했다. 하동읍에는 알본 상인이 많았으며, 일본 요정도 몇 집 있었고, 중국인 비단가게와 청요리(淸料理) 집도 있었다. 호남선 철도와 섬진강 땜 등이 생기기 이전의 일이다.

  내가 일곱 살 쯤에 가설된 섬진강 다린는 길이도 길거니와 그 높이 또한 큰 범선의 돛대가 거침없이 드나들도록 높아서 내 어린 눈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다리로 알았고, 은근히 자랑스럽기도 했으나, 지금은 세월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낡아서 폐도 되어 (철거 비용이 많이 든다고?)천덕꾸러기가 된 채 새로 가설된 다리 옆에 방치되어 옛날의 번창했던 영화를 추억하는 잔해로 남아있다.

  그러나 섬진강은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오늘도 유유히 흐르고 있다. 봄이면 매화꽃, 벚꽃이 강 따라 만발하고, 여름이면 아카시아 꽃향기가 벌·나비를 유혹한다. 녹음이 짙어지면 강과 산, 물과 숲의 향이 강바람을 타고 가슴에 스며드는 그윽한 그 싱그러움은 섬진 강변이 아닌, 그 어디에 또 있을까.  광평의 백사청송은 명성이 높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섬진강의 잉어, 황어, 은어, 참게가 우명하고, 근래에 와서는 연어도 회귀한다고 한다. 재첩은 다연 국내 제일의 명성을 얻었음은 강물이 맑은 때문인 것이다. 오죽하면 부산의 어느 길가에서 붕어(잉어) 빵을 구어서 파는 상인이 붙여 놓은 광고에[섬진강 맑은 물에서 헤엄쳐 다니는 잉어빵]이라고 써 붙였을까?

 이 맑고 아름다운 강을 우리 고장에서는 옛날 두치강(豆置江), 모래가람, 모래내, 다사강(多沙江), 체사강(滯沙江), 사천(沙川), 기문하(己汶河) 등으로 불렀다는데 우왕(禑王)11년(1385)경[왜구가 섬진강 하구에 침입 했을 때 수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光陽)쪽으로  피해갔다]는 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蟾)"자를 부쳐 섬진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930년대에 발행된[하동지(河東誌) 상권(上卷)에 의하면, 섬진강은 두치강이라고 되어 있다. 속설로 전하여 오기를 "수만 마리의 금 두꺼비가 광양의 蟾居로부터 와서 이 강으로 등어갔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섬진강이라고 명명하였다" 고도 한다.

   그런데, 지금 섬진강에는 두꺼비가 보이지 않는다. 두꺼비는 저습한 곳에 사는 양서동물이라, 맑으나 맑은 섬진강에 두꺼비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옛날 어른들로부터 들은 아야기를 떠올려본다.

   달 밝은 밤에 그 달빛을 받아 반작이며 여울져 흐르는  강물은 마치 다섯 마리 용이 상따라 내려오는 것 같다. 그 물결이 머무는 곳에 정자를 세워 오룡정(五龍亭)이라 명명하였고, 다시 물굽이를 틀어 흐르다가 건너편이 있는 다섯 개의 바위에 다다르니 이 바위들을 오주암(五珠岩=속칭:오지바구)이라고 이름 하였다.

   용 다섯 마리가 다섯 개의 여의주(如意珠)를 얻어 승천하니 그 아니 기쁜가. 풍류동(風流洞=불뭇골)에서 풍악소리 울리고, 배애섬(琵琶), 북(鼓)섬의 아름다운 선율도 함께 어우러지니 무동산(舞童山)은 동자가 춤을 추는 형국으로 이 고장의 지형을 그렸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강인가?

    사전(辭典)에 의하면 섬(蟾)은 달(月)섬자 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었다. 또한 섬진 강변에 신월(新月), 당너리(月津), 월길(月吉), 진월(津月) 등 달과 간련한 지명들이 눈에 뜨인다.

   여담이지만, 인접 광양(光陽)은 햇빛이 찬란한 고을임을 자랑하는데 그 곳의 섬거(蟾居)는 달빛이 머무르는 곳으로 대칭적으로 부쳐진 지명이 아닐까? 하는 내 나름의 어슬픈 해석도 해보면서 앞서 인용한 하동읍지의 속설이 참으로 멋이 있는 표현이라고 느껴진다.

   즉 "섬진강 하구에 침입했던 왜구가 수만 마리의 두꺼비가 울부 짖으니 놀라서 광양쪽으로 피해갔다" 이 말은 곧 왜구가 어둠을 타서 침입했는데 때마침 산넘어 달이 솟아 대낮처럼 밝아지니 놀라서 피해 달아났다고 해석할 수 있고, "수만 마리의 금 두꺼비가 섬거로부터 와서 이 강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섬진강이라 명명하였다.  즉 섬거 쪽 하늘에 떠 오른 휘영청 밝은 달빛이 강물에 반사하여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광경의 은유적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교교한 달빛 밝은 섬진강 백사장을 연인과 더불어 걸어본 사람이면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속삭이듯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섬진강! 맑고 아름다운 고향의 강 하동포구 80리는 달밤이 더욱 아름다운 강이다.

   하동포구 팔십리에 물새가 울고
   하동포구 80십리에 달이 뜹니다.
   섬호정 댓돌 위에 시를 스는 사람아!
   어느 고향 떠나온 풍류랑 인가.

   부르고 또 불러도 다시 불러보고 싶은 고향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