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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企劃特輯>

인생의 후반기를 어떻게 준비할 것 인가?

교육학박사 이 수 식
(32世孫·첨사공파)
경성대학교 명예교수

아침 이기대 산길을 걷다보면 도로변에는 하얀 벚 꽃 잎이 꽃비를 뿌리고 양쪽의 산비탈에는 노란 개나리가, 그리고 산 길 가에는 진홍빛의 진달래가 아침 산 꾼들을 반기고 있다. '정망 좋은 계절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나다 보니 말라 버린 풀숲사이에서 노란 복수초가 고개를 내밀고 인사를 하고 있다. 영하 20도를 넘어서는 눈바람을 맞으며 덕유산을 종주하던 것이 어저께 같은데 벌써 봄은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가려고 한다. 계절의 빠른 변화를 느끼면서 내 인생의 삶도 이처럼 빨리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몇 년 전 학교생활에 바빠 쫓길 때만 해도 내 나이가 얼마인지, 그리고 정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따라서 노후에 대한 준비도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언젠가 학교 교장선생님들이 모인자리에서 강의를 하는 기회가 있었고, 그 자리에서 한 교장선생님께서 정년이 다 되어가는데 걱정이라면서 어떻게 준비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조언을 구하였다.

이 질문에 대하여 나는 웃으면서 '아직도 준비하지 못하셨나요?' 라고 대답은 했었지만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나 자신의 인생후반에 대하여 깊이 생각헤 보는 기회가 되었다. 사실 노후준비에 대하여 한마디로 말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어렵다. 왜냐 하면 사람마다 처한 사정과 여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은 우리들의 앞 세대처럼 자녀들과 함께 노후를 노낸다는 것이 불가능하고 따라서 어떤 형태로던 따로 살아갈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때 이후로 인생 후반기를 덜 후회하면서 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에 대한 준비를 미리 하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첫째는 자녀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금전적인 여유는 있어야 하겠다.

노년의 준비와 관계없이 인생살이에서 어떤 시대의 어떤 형태의 삶이던 돈이란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물론 옛날 어릴 적 삼천포에서 온 생선장수 아줌마들의 생선을 판 대가로 보리랑 쌀이랑 한 자루씩 받아 이고 가던 일, 그리고 긴 여름 밤 참외가 먹고 싶어 부모님들 몰래 보리를 한 바가지 퍼다 주고 참외를 바꾸어먹던 시절처럼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던 시절이 있기는 했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그런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자신에게 필요한 나름대로의 여유자금은 마련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면 노년기를 대비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 다다익선이라고 흔히들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질 수 없는 범인(凡人)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무능에 대한 변명 같지만 한정된 액수를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돈이란 필요한 물건을 바꾸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할 때 여유자금의 과다는 필요한 것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흔히 필요한 것 이상의 돈을 모으려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돈을 번다(make money)'는 것이 아니라 '돈을 모은다(collect money)'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의 차이는 돈을 버는 경우는 쓰기 위해서이고 모으는 경우는 돈이 수집의 대상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돈 수집가(money collector)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돈이란 자신의 필요량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실 나이가 들어 자녀들의 뒤를 돌보아주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할 것 같지가 않다.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하고 생각날 때 친구들과 어울려 반주와 함께 간단한 식사를 할 수 있고 철따라 가족과 함께 국내나 혹은 가까운 해외여행이라도 할 수 있는 정도라면 충분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두 번쩨로 필요한 것이 함께 소일할 친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서양의 속담에 아동들이 일곱 여덟 가량의 나이에서 친구를 사귈 줄 알면 성공한 어린이고, 나이 칠십이 넘어서도 사귈 친구가 있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사실 그 나이만 한 때의 어린이들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또 일흔이 넘은 나이에는 많은 친구들이 곁을 떠난다는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주위에 그렇게 많은 것 같던 사람들이 하나 둘식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안 말벗이 되어주었던 친구가 하나 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제 이 넓은 세상에 나혼자만이 동그라이 남게 되는구나 하는 고독감과 소외감이 함께나를 엄습한다.

물론 '인간은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세상에 태어나 아무런 도움 없이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삶을 꾸려가다가 언젠가 동행자 없이 혼자서 사라져가야 할 자기 삶에 대한 책임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원초적으로 외로운 동물이라고 하는 실존주의 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고독이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우리들의 앞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대가족제도 속에서 생활 하였기에 아마 우리가 느끼는 만큼의 외로움으 덜했으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세상의 변화가 느린 사회에서는 세대 간에 공유할 수 있는 공통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과 같은 빠른 변화의 시기에는 세대 간에 동일한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젊은 세대들과 같이 앉아서 대화를 하노라면 어떤 한 가지도 공감이 형성되지 않아서 외계인과 대화를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연히 노인들은 가족 간의 대화 속에서 멀어지게 되고 자연히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인간에게서 가장 무서운 병은 외로움이란 병이라고 한다. 이병을 치유하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노인들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가능한, 그리고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는, 무엇인가 통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 하리라는 생각을 갖는다.

노년을 달래기 위한 친구는 그롷게 많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함께 산과 들을 나들이 하고 소주잔 기울이면서 자연이 변해가는 모습이나 세상 돌아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지낼 수 있는 몇 사람이면 족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노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 놀 꺼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호이징그라는 학자는 '인간을 놀이하는 동물' 이라고 하였다. 사람은 어린 시절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즐거움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놀이에 투여하게 된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가면서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일이라는 생산에 자신의 에너지를 투여하게 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생산 활동에서 멀어지게 되는 경우 다시 그 에너지는 놀이에 사용할 수 있어야 자신의 삶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오늘의 사회는 사람의 인력을 사용하던 시대와는 달리 자동화된 기계가 사람의 힘을 필요로 하는 생산을 대신하여 줌으로서 잉여 에너지를 놀이에 투여할 시간과 여유가 더욱 많아지게 된 것이 오늘날 놀이문화가 발달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처럼 생산 활동에서 멀어진 노년기에는 놀이의 필요성이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놀이의 방법을 모르거나 놀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갖추어지지 못하기 때문에 생을 무료하게 보내는 경우가 많다.

놀이에는 정신에너지를 소비하는 바둑이나 화투와 카드, 그리고 음악이나 그림 등의 예술 활동이 포함될 것이고, 육제적 에너지가 필요한 경우는 골프나 수영 등의 운동종목이거나 등산과 같은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일 것이다.

사실 우리세대들은 젊은 시절 놀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지 못하였고 또 시간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위와 같은 종류의 놀이를 하는 방법도 배우지 못하였다. 그리고 우리 사회도 이러한 놀이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시설이나 환경을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필자가 몇 년 전 뉴질랜드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관광도시인 로토루아의 호수가에 집을 얻어 산 적이 있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18홀 짜리 골프장(로토루아 골프클럽)이 있었고, 일 년에우리 돈으로 56만원 정도에 회원권을 사서 골프를 칠 수 있었기에 시간만 나면 샌드위치와 콜라 한 병을 가지고 다섯, 여섯 시간을 보낸 다음 클럽하우스에서 500원정도에 500cc짜리 생맥주를 마시고 하루를 즐긴 적이 있다.

이와 같이 부담없는 비용으로 찬구들과 어울려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운동시설, 가족과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와 곁들여 생맥주를 마시며 춤과 노래를 즐길 수 있는 독일 뮌헨의 대형 레스토랑 같은 것이 우리 주위에 있다면 노년을 즐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을 갖는다. 요즘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각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주위의 산에 등산로를 만들고 나이든 사람들이 쉽게 산에라도 가서 쉴 수 있게 해주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어쨌든 노후를 맞이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죽일 수 있는 취미생활을 갖는 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필자는 정년되기 3년 전에 친구들과 조그만 등산모임을 만들었고 주말마다 근교 산을 찾고 매달 차를 빌려 전국의 명산을 찾아 근방의 맛 집에서 별미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매년 히말라야와 같은 해외의 명산을 찾아 스스로 체력의 한계와 정신력을 시험하여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생각하는 노후를 보내기 위한 준비에 대하여 내 나름대로 간단히 정리하여 보았다. 준비하여야 할 내용이 사람마다 같지는 않을 것이고, 또 위의 것만 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노후의 준비보다 더욱 중요하가고 느낀 것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그리고 자신과 남의 처지를 비교하지 말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인식하고 이를 수용함으로써 지금의 나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되는 것이 더욱 중요하리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