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졸업 60년 만의 동창회 외1편
고문 李 源 珉 (32세손 목사공)
나는 가족과 함께 매달 한두 번 고향에 가서 선고께서 거처하시던 시골 집에서 며칠간 머물며 텃밭을 가꾸고 손에 흙을 묻히면서 소일하고, 때로는 나를 찾아온 죽마고우들과 술잔을 나누며 지난날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가족도 고향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도시 생활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서 심신의 피로를 푸는 것이 좋은 모양이다. '도시와 달리 마루에서 바로 마당으로 내려가서 흙을 밟는 촉감이 좋을 뿐만 아니라, 그 흙냄새와 꽃향기가 심신을 맑게 해주니 새로운 기운이 솟는 것 같다'고 예찬한다. 그래서 달마다 고향에 오게 되는 것이다.
지난 3월에도 고향에 갔더니 친구들이 우리가 초등하교를 졸업한지 60년이 되었다고 하면서「卒業回甲」이니 각처에 흩어져 있는 동창생들에게 연락하여 기념 동창회를 열자는 鄭大根, 韓斗永,辛基鉉 등, 동창생들의 제안에 기꺼이 동의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4월 3일 신기현 형으로부터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국적으로 수소문하여 전화로 연락한 결과 상당한 호응을 얻었다"면서 4월 7일에 동창회를 열기로 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4월 5일 9시20분 부산발 목포행 무궁화호 열차를 탔다.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차창 밖의 풍경은 며칠 전에전에 고향에서 부산으로 돌아올 때 봤던 산과 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지구의 오난화로 봄이 앞당겨진 탓인가? 벚꽃은 이미 만개하여 꽃잎이 흰 눈처럼 흩날리고, 겨우내 땅속에 움츠렸든 보리가 어느새 파랗게 생기를 찾아 허리를 펴고 이삭을 뽑아 올리고 있었다.
과수원의 나뭇가지에는 파릇파릇한 잎누이 텄고, 물을 잡아 못자리 준비를 하는 논도 있었다. 며칠 사이에 산야의 모습이 확 달라졌으니 자연의 조화가 놀랍다. 짧은 시간에도 이렇게 많이 바귀었는데, 60년의 세월은 동창생들에게 얼마나 큰 변화를 주었을까? 지난날 추억의 조각들을 되짚어 보는 사이 어느덧 열차는 하동역에 도착했다.
4월 6일은 비가 내렸다. 정대근 형이 비가오는데도 불구하고 모교에 가서 제30회 졸업생명부를 복사해 가지고 나를 찾아왔는데, 동창생들의 이름이 모두 일제의 강요로 개명한 일본식 이름으로 된 명부였다. 둘이서 옛 시억을 더듬어 가며 본명을 찾았는데 우리와 한 반이던 [마쓰구미(松組)]64명의 본명은 모두 찾을 수 있었으나, 남녀 공학반[다께구미(竹組)]사람들, 툭히 여자들 본명은 찾기가 어려워서 그쪽 동창생에게 맡기기로 했다.
우리는 1936년 하동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1937년 하동읍내 공립심상소학교로 교명이 변경되고 1941년에 다시 하동읍내 공립초등학교로 바뀌었으니 일제의 식민지 교육의 변천과정을 짐작케 한다. 1942년에 제30회 졸업생으로 교운을 나왔으나 초등학교의 1회 졸업생인 셈이다.
4월 7일은 언제 비가왔느냐 듯 쾌청한 날씨였다. 11시에 1차 잡합장소인 명성다방에 갔더니, 서울에서 최상선, 경기도 의왕에서 남형우, 파주 홍현승, 부산 이대련, 양산 남백우, 마산 박잔석과 한결같이 고향을 지켜온 정대근, 신기현, 한두영과 김만기, 박경종, 이승우, 정덕호, 진성윤 그리고 나를 포함한 15명과 여자 동창생1명등 모두 17명이 모였다.
이보다는 많이 모일 수는 없을까 싶었으나 이 정도의 모임에도 멀리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전화를 걸어서 찾느라 고생한 이야기를 들어니 60년의 단절이 참으로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그 긴 세월 풍상을 겪은 기록으로 머리는 백발로 변하고 얼굴에는 주름이 생겨서 어떤 이는 얼른 알아보기 힘든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곧 그 주름진 얼굴에서 동안의 친구를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시골 다방에 웃음꽃이 피고 한동안 옛날의 개구쟁이들의 시끌벅적한 교실로 변해 버렸다.
게획한 대로 모교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기위해 자리를 옮기려 하자, 여자 동창생 두분은 굳이 사양하고 돌아갔다. 아쉬운 생각이 들었으나 한편으로 시골의 우리세대들에게서는 아직도 내외하는 풍습을 볼 수 있구나 하는 향수 같은 것도 느꼈다.
모교의 교정에서 校舍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옛날의 목조교사는 흔적도 없어지고 외형마저 다른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왠지 낯설고 어색한 생각이 들었다. 비록 콘크리트 건물이라도 와관만은 예날의 그 모습으로 재현할 수는 없었을까? 본관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면 부속건물(우리가 다닐 때 理科室 만이라도 옛날의 모습으로 남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시 볼 수 없는 것이 참으로 애석하다.
기념 촬영을 마치고 남해대교로 관광을 갔다. 대교를 건너면서 바라본 고향의 풍광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새삼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아침 점심대라, 노량바다의 싱싱한 생선회와 매눈탕에 반주까지 곁들인 점심상은 진수성찬이었고, 그 맛 또한 천하일미가 아니었던가? 오랜만에 동창 친구들이 고향에서 만난 자리인지라, 멀지 않아서 80이 될 나이를 닞고 동심의 세계에서 옛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 보니, 60년만의 만남의 시간이 너무짧았다.
인생의 황혼길에서 어린 시절의 동창생을 만나고 보니 반갑기더 하려나와 여러무로 변한 친구들 과 서로 살아온 길을 되짚어 보는 뜻있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시간에 쫓기다시피 각처로 흩어져 돌아가면서 "1년에 두 번은 어렵더라도 한번씩은 꼭 동창회를 하자"라고 다짐하면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리고 6.25전란으로 모든 것이 소실되어 기념될 만한 것이 없었는데, 요행히 신기현씨가 졸업 사진첩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의 얼굴이 너무나 작아서 노안으로 알아보기 함들 곳 같기에 사진첩을 부산으로 가지고 와서 확대 복사하여 나의 장표로 한권씩 선물로 보냈더니, 모두 전화나 편지로 고맙가는 인사를 전해 왔다.
모처럼 옛 친구들에게 좋은 선물 했구 싶어 뿌듯했다. 언제쯤 또 동찿회가 있으려나 기다려진다.(2002. 4. 30)
1년에 한번은 꼭 동창회를 열자고 다짐하고 헤어진후에 아직까지 동창회 연다는 소식이 없다. 그때 열다서이 함게 찍은 기념사진과 복사한 졸업 사진첨을 펼쳐 보면서 언제쯤 동창회 소식이 오려나 기다려 본다.(2006. 6. 4.)
(2) 友情의 꽃
거실 창가의 햇볕바른 곳에 아름답고 기품이 너치는 화분 하나가 그 자태를 뽑내듯이 자리하고 있다. 마산에 사는 죽마고우 朴珍錫 형이 보낸 것이다.
박형은 내가 불의의 사고로 석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있는동안 여러번 문병을 와주었고, 퇴원한 후에는 내가 출입이 자유롭지 못하니 집에서 심심할 것이라고 음악 CD를 손수 만들어 보내 주는가 하면, 거의 매주 한번꼴로 전화를 걸어 위로해 주는 자상하고 다정한 친구다.
며칠 전에도 여늬 때와 같이 전화가 걸려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박형의 농장에서는 몇해 전까지는 5~600분의 분재를 가꾸다가 나이 들어감에 따라 그 수를 차츰 줄여 왔으나, 작년까지만 해도 150분 정도는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힘에 겨워서 자기가 가장 아기는 몇 분만 남아 있다는 말을 하기에 "내가 몸이 웬만하면 가서 분재구경도 하고, 그 핑계로 나들이도 할 수 있을 것인데…"라고 자탄을 했다.
그런지 며칠 후에 인편에 화분을 보내 온 것이다. 꽃잎이 떨어지지 않토록 '스치로품 상자'에 담아 포장해서 灌水 등 관리 방법까지 자세하게 알려서 보낸 것을 받고 보니 무심코 했던 말이 후회스러웠다. 자기 손으로 30년여년을 가구고 오껴온 작품이라고하니 얼마나 정이 든 愛藏品일 것인데, 나 같이 그저 바라볼 줄밖에 모르는 문외한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사양한다고 박형에게 전화 했더니 "꽃잎이 다 떨어지고 난 후에 돌려 보내라"고 했다.
평소에 남달리 다정하고 박식한 그를 우리는 만물박사라고 칭송한다. 8순이 이마에 닿았는데도 손수 자가용을 운전하며 농장관리를 하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과수, 약초 뿐만 아니라 게계, 전기 등에 관한 지식이며 심지어 국내외 여행, 예능방면의 상식 등등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는 그는 놀라울 정도로 폭넓은 지식을 갖춘 사람으로 알 고 있었으나 이렇게 훌륭한 분재 가꾸기 솜씨까지 갖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 친구가 이토록 따뜻하게 권하니 더는 사양하지 않고 "잘 삼상하고 돌려 보내겠다"고 했는데, 밤에 다시 전화가 왔다. "관리가 어렵지 않다. 돌려 보내지 말고 가을에 근처 花園에 맡기면 안전하니 봄에 다시 찾아오면 될 것"이라면서 그냥 가지라고 한다. 귀한 화분을 몸을 다쳐서 자유롭게 출입 못하는 친구에게 감상하라고 보내준 것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는데, 30년 넘게 손수 가꾸어 愛之重之하든 분재를 선 듯 내주며 마음에 들면 가지라는 이친구의 우정이 가슴이 아리도록 고맙다.
하얀색 꽃잎에 분홍색 무늬가 든 꽃이 핀 나무에 연분홍색 꽃이 피는 나무가 접목되어 조화를 이룬 화분이다. 이 꽃 같이 철죽과에 속하는 꽃의 이름은 많다. 映山紅, 映山白, 杜鵑花, 진달래, 양달래, 철죽, 산철죽, 참꽃, 개꽃 등 여러 가지 꽃이 있고 이름이 있다. 일본에서는「샤쿠나게까(石南科)」에 속하는「쓰스지(정촉)」가있고「사쓰기쓰지(5월철죽)」「기리시마」등의 변종도 있다고 하며 주로 한국, 중국, 일본등 각국에 분포되어있다고 한다.
합천이씨중앙종친회장 이상희 전 장관은 그의 저서「꽃으로 보는 한국문화」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봄이 되면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잎보다 앞서 꽃을 피워 산을 온동 진분홍으로 물들이는 꽃 진달래는 오랜 세월을 두고 우리겨레와 애환을 함께 하며 살아 온 한국의 꽃"이라고 예찬 했다.
이봄에 온 산에 꽃피는 그 진달래를밖에 나가서 구경못하는 친구를 위해 계절에 맞추어 활짝 핀 화분을 노냈으니 진달래 꽃이 만발한 고향의 동산을 그대로 안아다 나에게 준 바나 어찌 다를까?
친구의 우정이 진달래꽃 만발한 고향의 동산을 옮겨다 놓은 것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살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지달래
울긋 붉긋 꽃 대궐 차리인 동리
그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오~ 친구여! 당신이 보내준 저 아름다운 꽃의 이름을 「우정의 꽃」이라 이름 지었소….(2005.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