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링 인간

   '보링'하면 흔히 자동차 엔진 재생하는 것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요즘엔 보링이 자동차 같은 기계 재생 수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간에게도 적용되는 말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10년 전, 왼쪽 아래 어금니 두 개가 탈이 나서 이를 뽑아내고, 대신 인공치아를 심었다. 인플란트이다. 이 두 개를 뽑고 4개월 동안 안정을 시킨 후 잇몸 뼈에 전기 드릴로 구멍을 뚫어 그 자리에 금속으로 된 나사가 달린 못을 박고, 다시 2개월 안정 후에 그 나사못과 연결된 기둥을 새우고는 다시 2개월 후에 그 기둥을 둘러 둘러 씌워 인공 친아를 만들었다.

  이렇게 하여 심은 이는 몇 개월이 지나고 나니, 정상적인 이 못지 않게 음식 씹는 역할을 잘 하는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2년 전에 다시 오른쪽 위 어금니 한 개를 또 심었다. 따라서 심은 이가 세 개가 있었는데, 4개월 전에 또 왼쪽 아래 어금니 하나가 탈이 나뽑고, 이 심는 공사를 진행 중이다. 그렇게 되니 도합 4개의 이를 인공 치아로 대체해 심은 셈인데, 앞으로 이를 심느 공사를 더 계속해 나가야 될 것 같다.

   지금 상황으로는 본시 있던 치아는 점차 하나 둘씩 마가져서 제 기능을 상실해가고, 오히려 대체하여 심은 치아가 더 튼튼하여 음식 씹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니, 자동차 엔진을 갈아 보링한 만큼이나 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과학의술의 발달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니 이것이 인체 보링이 아니고 무엇인가.

   나의 인체 보링은 치아에서남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6개월 전에 눈에도 보링 공사를 했다. 백내장 수술을 한 것이다. 백내장 수술이란 알고보니, 결국 눈동자의 수정체를 인공 수정체로 바꾸어 끼우는 수술이었다. 노안이 되어 눈이 침침하여 잘 안 보이는데, 인공 수정체를 바꾸어 줌으로써, 잘 보이게 하는 수술이었다.

   몇 년 전가지만 해도, 백내장 수술은 며칠 동안 원을 하면서 해야 하는 큰 수술이었는데, 요즘은 의술이 발달해 오전에 수술을 하고, 오후엔 퇴원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이튿날의 일이었다. 수술한 다음날 오전에 병원에 와서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풀고 시력 감사를 하였더니, 그 결과 수술 전에는 0.4~0.5밖에 안 되던 시력이 1.0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도 수정체를 바꾸어 넣은 것이 자동차 엔진을 바꾸어 넣은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으니, 영락없는 인체 보링이 아닌가.

   이처럼 나는 이와 눈알에 인체 보링을 하였지만, 어떤 이는 인공 심장을 갈아 넣고, 또 어떤 이는 대장 수술을 하여 항문을 밖으로 내어 차고 다니는 이도 있다. 그러니 때는 바야흐로 자동차 보링 시대가 아닌, 인체 보링 시대가 도래했다.

   옛날 같으면 인생 포기서를 제출하고 저승 세계에 입학원서를 내야 할 사람들이 인체 보링을 통하여 삶을 연장하고 있으니 의술 발달에 감사해야 하겠다. 나도 인공 치아를 심은 덕분으로 임에 든 음식을 알맞게 분쇄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백내장 수술을 한 덕분으로 안경을 끼지 않고도 신무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인체 보링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옛날엔 인플란트를 하거나, 눈의 수정체를 갈아 끼우는 백내장 수술을 하는 것을 상상이나 하였던가.

   그런데 여기에서 나는 슬그머니 욕심 하나가 생긴다. 노늘날 의학 기굿의 일취월장으로 인체의 보링까지도 가능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인체 아닌 인간 보링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체가 곧 인체라. 이 인체는 의학의 힘으로 보링이 가능해지고 있으니, 정신도 육체처럼 보링이 가능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정신적 인간이란 곧 도덕적 인간을 말함이 아닌가. 그런데 현대사회가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도덕성, 곧 인간성이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평판을 받고 받고 있으니,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일부에서 인성교육에 대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살아있는 듯하니 희망을 걸어볼 만한 일이다.

  과학의술의 발달로 인체의 보링까지 가능해짐으로써 보링 인간이 탄생되고, 인간 수명이 연장되고 있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인간성이 상실된 비도덕적 '보링 인간'이 영산된다고 하면 이는 결코 환영할 일만은 아니라 할 것이다. 인간 수명의 연장이 곧 인간의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인즉, 인체 보링에 못지 않게 정신적 인간보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도 관심을 기울여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도덕성을 상실해 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인간성을 심어줄 수 잇는 보링 방법은 무엇일까? 인체의 보링은 의학의 힘으로 가능하지만, 인간 보링은 교육의 힘에 의지하여야 하겠다. 그런데, 교육은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병행해야 성과가 나는 것인데, 오늘날의 현실은 모두가 입시교육을 위주로 한 지식 교육에만 눈이 어두워 허둥대고 있으니, 인체 보링만이 아닌 올바른 인간정신 보링을 위한 방안이 연구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제 가정, 학교, 사회의 3가지가 서로 손을 맞잡고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합심해 나갔으면 한다.

   인체 보링까지 하면서 오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 한다면, 우리는 치아를 새로 심거나 눈 수정체를 갈아 끼우는 인체 보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인간성을 심어 주는 인간 보링에도 눈을 돌려야 하지 않겠는가. (2008. 6. 『수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