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 약이다

   노령사회가 됨에 따라, 60대 이후 사람들의 절대적인 관심은 '어떻게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에 솔려 있다. 그래서 한 때 권배사도 "九九八八 二三四(死)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간 앓고 죽다)"가 등장해 유행을 하더니, "그런 욕심은 너무 과하십니다" 하는 일부 며느리들의 반발에 부딪혀 주춤해졌다.

   얼핏 생각하면 좀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나, 냉철히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다. 그런데 부모 자식 간의 공통 과제는 역시 '어떻게, 건강하게 오래 살다 갈 것인가?'에 있다.

   어떤 이가 나를 보고 "건강을 유지하는데 무슨 비결이 있느냐?" 묻는다. 팔순을 넘겼고, 혈색이 좋은 편이며, 모임에 빠지지 않고 잘 참석하는 것을 보고 묻는 말이라, 듣기 싫지는 않다. 그러나 무슨 비결이 있으랴.

   돌이켜보면, 나는 직장생활을 할 때만 해도 몸이 여위고 그리 건강한 편은 못되었다. 위장이 좋지 않아 늘 약봉지를 달고 다녔으며, 간혹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병원마다에서 붙여준 병명은 '신경성 위염' 또는 '신경성 십이장 궤양'이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위염'이면 '위염'이지 '신경성'이란 접두사는 왜 붙느냐 싶어 불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내가 정년퇴임을 하고 난 후에 의사들이 역시 공돈은 안먹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수업하랴, 생활지도 하랴, 또 관리직이 되고 난 후에는 여러 교사 상대는 물론, 때로는 학부모나 각계각층의 인사를 상대하려하니, 신경이 많이 쓰였다. 막판에 가서는 교원 노조까지 탄생하여 더 신경을 예민하게 하였다.

  그러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나니 자질구레한 신경 쓸 일이 내 몸에서 벗어났다. 그러고 나니, 나를 괴롭히던 '신경성 위염'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몸에서 떠났다. 신기할 정도였다. 식욕이 당기고, 밥을 잘 먹으니 살이 붙기 시작하고, 심지어 배가 나와 식사량을 조절해야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즐거운 비명이라고나 할까. 신경을 안 쓰니까 병이 저절로 도망을 가 버렸으니, 의사가 '신경성'이란 접두사를 붙인 것이 꼭 합당한 병명이었음에 감탄을 했다.

   더러는 나를 보고 "무슨 보약이라도 먹느냐?"고 묻기도 한다. 과거에는 나도 '십전대보탕'같은 안약이나, 비타민제를 비롯한 양약 등 몸에 좋다는 약들을 더러 먹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약도 양약도 촌수가 멀어졌다. 지난날의 약이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다.

   건강유지의 평범한 비결로 인구에 회자되는 말에 밥잘 먹고, 변 잘 보고, 잠 잘 가지의 세가지가 있다. 또 장수국 일본의 한 노인이 노령들에게 경고하는 말에 넘어지지 말라, 감기 들지 말라, 과식하지 말라가 있다. 나는 평법한 이말을 명념하고 살아가려 노력한다. 그래서 알맞은 운동과 적절한 식사생활에 신경을 기울인다. 아침 6시에 일어나면 거실 바닥에 누워 팔다리 운동을 20분쯤 하고, 학교 운동장에 나가 속보로 다섯바퀴를 돈다. 거기엔 '몸 돌리기' 등 몇 가지 운동기구가 있어 도움을 받는다.

   아침식사는 몇 년 전부터 미숫가루로 때우고 있다. 과식으로 인한 뱃살을 빼기 위해서다. 식사 후에는 디저트로 과일을 꼭 챙긴다. 제철 과일을 밥보다 많이 먹는 편이다. 쾌변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나의 전매 특식이 한 가지 있다. '씨앗'이다. 땅콩, 잣, 호두, 호박씨, 해바라기씨 등을 디저트 코소에 준비해 두고 먹는다.

  쌀 낟알도 씨안이지만, 모든 씨앗은 비타민 E를 함유하고 있으므로, 영양가가 높다는 것을 어느 책에서 보고 이를 실행해 보니, 효과가 있는 듯 하여 10년 전쯤부터 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내가 한때 몸이 피곤할 때면 눈동자의 흰 창 혈관에 출혈이 돼 있다가 1주일쯤 지난 후에야 원상회복이 되곤 하는 증상이 1년에도 몇차라 불청객처럼 나타나곤 했는데, 씨앗을 취하기 시작한 후로는 그 증세가 거짓말처럼 치유되었다. 싸앗의 효과라 믿고 있다.

   이처럼 내가 평소에 약을 잘 먹지 않게 된 것이 '씨앗 먹기'와 무관하지 않다. 음식이란 신체의 건강을 지탱해 나가는데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주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음식을 고루고루 먹어주는 것이 영양소를 균형 맞게 보급해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약을 복용하는 목적은 보양과 항균, 즉 부족한 영양소ㅡㄹ 보충하거나, 나쁜 병균과 싸워 퇴치시키기 위해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병이 나기 전에 미리 균형 잡힌 영양소 공급을 하는 일은 병의 예방책이 된다 할 것이니, 음식만 고루 섭취하면 약은 먹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여기에서 나는 자연스레 '음식이 곧 약이다'는 체험적 진리를 터득한 셈이다.

   이제 내가 정년퇴직을 한 지도 어언15년이 되었다. 이 시점에 나에게 가로놓인 당면과제는 여생을 어떻게 보람되고 건강 관리하다가, 염라대왕 부름 받고 갈적엔 고통없이 응소할 수 있도록 함으로서, 자식들에게도 큰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맞은 운동은 물론, 무엇보다도 식생활에 더 신경을 쏟아야 하겠는데, 특히 음식이 곧 약이라는 것을 믿음으로 고루 양분 섭취를 하려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저승세게 문턱에서 터득한 노후 건강관리지침 제 1조는 '음식은 약이다.'라 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엔 물론 긍정적인 생각과 매사에 만족할 줄 아는 생활습관이 바탕이 돼야 할 것은 두말할 니위가 없다. (2007. 6 『수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