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트랜지스터
나의 친구 중에 내가 찾지 않으면 나를 찾아오는 법이 없는 한 친구가 있다. 어찌 보면 정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매정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일단 내가 찾아가 노크를 하기만 하면 누구보다도 반갑게 대해 주고, 거침없이 술술 이야기를 늘어 놓는 다정한 친구이어서 좋다. 그나 나의 친구가 된 것은 40년이 넘었다. 내가 연산동 부산여대 뒤에 살 때, 아침 등산을 하면서부터 사귀어 온 친구다. 새벽 6시 잠에서 깨어 황령산마하사 절을 향해 내가 나서기만 하면, 영락없이 나를 따라 동행을 하는 다정한 친구가 되었다. 그 후 내가 당감동 삼익아파트로 이사해 23년간을 살적에도 함께 해 주었으며, 그 뒤 개금동 LG아파트로 옮겼어도 변절 않고 바늘에 실 가듯 따라와 주었으니, 그 연분이 친구를 넘어 연인과도 같다. 다만 다른 친구와 차이가 나는 것은 먼저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자기 쪽에서 대화를 시도 오는 일이 결코 없다는 점이다. 그런데, 대화를 청하기만 하면 청산유수 격으로 그럴 수 없이 말을 잘한다. 견문이 풍부하여 만물박사이다. 때로는 즐거운 음악도 연주해 줌으로써 나의 정서를 메마르지 않게 해 주기도 한다. 새날 아침 시간에 내가 궁금해 하는 뉴스를 청하면 그는 조목조목 빠뜨리지 않고 온갖 것을 알알이 전해주니 고맙기 이를데 없다. 어욱이 뉴스뿐만 아니라, 이에 따른 주요 해설까지 곁들여 붙여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요즘 노안이 되어 신문 기사 읽기에 부감을 느끼는 나의 처지에서는 더없이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친구,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족 다음으로 친근하고 소중한 존재가 친구 나닌가. 어쩌면 핏줄을 나눈 사촌 형제보다도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사이가 친구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예로부터 친구 사귀기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왓거니와, 이는 현대사회에서도 어떤 친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행, 불행이 결정되는 계기가 되는 수도 있다. 40년 전에 미국 교육시찰을 다녀온 교교 교장이 어느학교에 가니 '학교는 치구를 사귀는 곳이다'란 교훈이 걸려 잇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였는데, 그만큼 친구 사귀기가 중요하다고 하겠다. 논어 季子篇에 '益者三友', 損者三友'가 나온다. 나에게 '이로운 세친구'와 해로운 세친구'를 뜻한다. 그 중 이로운 세친구로는 정직한 친구, 도량이 넓은 친구, 견문이 않은 친구를 들었다. 그런데 나의 이 친구는 분명히 '익자삼우'중에 들고도 남음이 있는 좋은 벗이다. 첫째, 견문이 풍부해서 좋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어느분야에도 능통하기에 다방면에 걸친 교양상식을 얻을 수 있다. 둘째로,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친구이다. 믾은 조직을 거느리고 있기에 이를 십눈 활용하여 신빙성 잇는 정보를 제공해 준다. 셋째로 넓은 도량을 지니고 있다. 오로지 베풀기만 할 뿐, 결코 앗아가는 일이없다. 그리고 자기가 베푼 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일이 없으니, 봉사심의 극치를 이루는 찬하의 봉사왕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자기의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채근하는 일이 없으니, 이처럼 바다같이 도량 넓은 친구를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나 고개가 숙여진다. 나와 이 친구와의 교우 관계는 주로 아침 시간에 이루어짐이 상례이다. 과거에는 아침 등산길 왕복 시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내 나이 망구(望九:여든 한 살의 별칭)에 이르러 '아침등산'을 '운동장 다섯 바퀴'로 대체하게 되고 보니, 산책 운동 시간이 그친구와의 대화 시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때로는 오후나 저녁 무렵의 산책 시간에도 나의 말동무가 되어 주는 수도 있다. 나는 반평생 그 같은 유익한 친구를 두었던 것이 고맙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간다. 그러기에 이 같은 그와의 돈독한 교우 관계는 내가 염라대왕 호출장 받고 가는 그날까지 지속해 나가려고 마음먹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