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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은 해상표류 체험학습
요즘 '체험학습'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도자기 굽기, 민속놀이, 역사탐방, 농작물 가꾸기 등, 온갖 분야에 걸친 체험 학습들이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같은 체험학습들은 오늘날 우리 교육이 지난날의 이론 중심학습의 약점에서 벗어나 경험 중심학습을 중시해야 한다는 쪽으로 교육 방향이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본의 아니게 뜻밖의 '해상표류 체험학습'의 기회를 만났다. 지난 10월 20일 일본규슈대학에서 열린 제20회 한일중퇴계학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후, 4일간의 관광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기 위해 하카다할을 출항하였다. 23일 오후 2시 30분 쾌속 여객선 코비호에 몸을 긷고 부산항을 향해 오는데, 약 2시간 후인 4시20분쯤에 배가 충돌하는 불상사를 맞았다. 운항하던 배가 갑자기 '쿵'하는 소리가 나면서 멈추게 됨으로써 우리 승객들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배는 줌심을 잃은채 파도가 조종사로 바뀌어 죄우로 흔들기를 시작하고, 승각들은 겁을 집어먹고 동요했다. 모두가 불안감속에서 안정부절 어쩔 줄을 몰랐다. 얼마 후 선내 안내방송이 나왔다. 이 배가 뜻밖에 고래와 충돌해 사고를 당하여 지금 수리 중에 있으니 그리 알아달라는 내용이었다. 좌우로 흔들리는 배의 요동이 점점 더 심해짐에 따라, 승객들 중에 배멀리를 하는 이가 속출하였다. 개중에는 심하게 토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나도 약간의 멀미기를 느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주위에서 심한 고통을 못 견뎌 하는 이를 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화장실에 가보니 멀미 승객이 토해낸 배설물로 꼴불견의 관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표류를 시작한 배가 1시간이 넘었는데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승객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하고,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객 하나가 여성 안내승무원에게 달려들어 당장 선장을 데려오라고 호통을 쳤다. 그말이 선장 궤에 들어갔던지, 선장이 신분을 밝히면서 방송을 하였다. "승객 여러분! 저는 선장 아무개입니다. 이 배는 고래와의 충돌로 선체에 손상을 입어 지금 손을 보고 있습니다. 수리가 끝나는 대로 곧 출발하겠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배는 조금 가는 듯 하다가 서고, 또 서곤 하는 상태가 되풀이 되었다. 운행을 시도해보아도 뜻대로 안되는 모양이었다. 승객들의 항의는 계속 터져 나왔다.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있는데도 아무런 조치가 없으니 어떻게 할 작정이냐, 빨리 본사로 연락해 다른 배를 불러와서 우리를 갈아타게 하라고 요구하는 성급한 승객의 목소리도 나왔다. 드디어 선장이 객실에 모습을 나타내어 해명을 하고 양해를 구하기더 하였으나 정상회복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그리고는 알마 후에 선장과 기관장이 합의를 하고 방침을 정하였는지, 다시 방송이 흘러 나왔다. 두 개의 엔진 가운데 한 개가 고래와의 충돌로 손상되었으므로, 수리를 해 보았는데 기름의 유출로 수리가 불가능하여, 부득이 엔진 하나만으로 운항을 하면서 부산가지 가야 하는바, 속도가 느려져 밤 10시 30분이 되어야 도착이 되겠다는 것이다. 약 5시간이 연착되겠다는 것이다. 그때의 시간은 오후 5시였고,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부터 표류 상태는 멈추고 배의 속도는 느리지만, 그래도 운항이 계속됨에 따라 용동상태가 덜해졌다. 승객들의 불안도 다소 진정되고, 항의 소동도 잠을 재웠다. 모두가 도착시간이야 좀 늦어지더라도 무사히 돌아갈 수만 있었으면 하는 일념으로 마음이 돌아섰다. 6시가 좀 지난 무렵에 희망 섞인 목소리가 방송실에서 흘러 나왔다. 한 개만으로의 엔진 성능이 예상보다 좋아서 10시 30분 도착예정이 9시 45분으로 앞당겨지겠다는 내용이었다. 마음속의 박수가 나왔으며, 승객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이렇게 하여 조마조마하던 5시간이 지난 밤 9시 40분에 배가 바산항에 도착함으로써, 승객들이 안도의 한숨을 들어 마시는 가운데, 우리의 해상 표류 체험학습은 종막을 내렸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일생에 운 좋은 체험학습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속담에 '젊어서 공생은 돈을 주고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체험을 하였으니 행운아였다는 생각도 든다. 아슬아슬하고 스릴 잇는 특별한 체험을 맛보았으니 말이다. 한때 승객 한 분이 안내원에게 과격한 폭언을 퍼붓기도 해서 나는 좀 민망스럽다 싶기도 하였지만, 옆의 한 일행분이 "저런 사람도 더러 있어야 한다."고 편을 들기도 하였다. 그런 덕분인지, 하선할 적에 선박회사 직원이 나와 "본의 아닌 사고로 심려를 기쳐 조송하가"는 사과와 함께 늦은 시간에 택시비나 하시라고 봉투를 주기에 뜯어보니 일금 5만원이 들어 있었다. 돌아오면서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배가 고래와 충돌하는 순간에 분명 '꽝'하는 금속성 소리가 났는데, 그 고래는 얼마나 큰 부상을 입었을까 하는 것이다. 필시 고래는 그길로 중상을 입어 끝내는 불귀의 객이 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자업자득이라고는 할 수 있으되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 구석이 우울해 졌다. 고래에게 당부하노니, 앞으로는 그대들이 제발 쾌속정 같은 작은 배러고 하여 깔보고 박치기를 시도해 보는, 그런 무모한 장난은 안해 주었으면 한다. (2007. 10 퇴계학연구원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