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판 부관참시(剖棺斬屍)

얼마 전 신문에 '생존 위한 글 때문에 친일 문인으로 몰리다니…'라는 제목으로, 안타까운 항변을 하는 사연이 보도되었다. 그는 작고한 문인 김소운의 장남이었다. "이미 세상 떠난 모친과 여동생은 민주화 투사였습니다. 평생 한국문학을 일본에 소개해온 부친 역시 1980년 은관 문화훈장까지 받았습니다. 그런 부친이 두세 편 글 때문에 인일 문인이라니요?" 하면서 계간지『대산문화』에서 주장하였다는 것이다.

김소운의 일생에 대해 살펴보고 싶어진다. 김소운(1907~1981)은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세 살적에 부친을 여의고 조부모와 함께 살다가 설상가상으로 모친마저 생이별했다. 그 후 고모 댁으로 옮겨져 유년시절을 진해로, 김해로, 부산으로 전전하면서 불행하게 살았다. 13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교에 입학했으나 도쿄 대지진을 만나 오래 살지 못하고 귀국하는 등, 불운은 이어졌다.

다행히 그 후 서울로 가 공초(空超), 범부(凡父), 수주(樹州)와 같은 좋은 문학 선배를 만나 그가 문학의 길로 입문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크게 뻗어나갈 발판이 마련되고 문운이 열리었다. 운명적으로 그는 어릴적부터 고난의 길을 걸어야 했으나, 의지력이 강해 갖은 간난을 극복하고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고 글을 씀으로써, 문사의 길을 걸어갔으니 훗날 전업 작가로서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소운은 자의반, 타의 반으로 국내에서보다도 일본에서 가히 망명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민족적 차별을 받았다. 그러나 문학 활동을 꾸준히 계속함으로써 놀라울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으니 그의 업적이 특츨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가 한국내에서 펴낸 수필집만도『三誤堂雜筆』(진문사,1955),『김소운 수필선』(아성출판사, 1978),『등불이 지기 전에 젊은이와 이야기하고 싶다』(아성출판사) 등 10권에 이르며, 그의 작품이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일본어로 펴낸 수필집으로『아시아의 4등 船室』(講談社,1975),『가깝고도 먼 나라로부터』(新潮社,1979)『김소운 에세이선』(1981) 등 7권이나 된다.

그 중 특히『木槿通信』은 김소운이 1951년 전쟁의 와중에서 일본 잡지『선데이 마이니치』에 실린 한국을 비하하는 대담 기사를 보고 격분하여, 일본의 오만과 편견을 통렬히 비판한 글을 당시 부산에서 발행되던 국제신보에 연재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 해 11월 일본의 저명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소개로 일본 잡지『中央公論』에 번역 소개됨으로써, 당시 일본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어켰던 것이니,『목근통신』은 한국민족의 입장을 대변해 애국심의 발로에서 쓴 항의서였다.

김소운의 장남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일본에 건너가 부친은 20대 초반부터 죽을 때까지 한국 문학을 일본에 소개하는데 몸 바친 분"이라며, "어떻게 2,3편의 글을 가지고 '친일작가'라는 딱지를 붙여 모든 공적을 묻어 버릴 수 있느냐?"고 말하고 있다. 또 "어머니와 동생이 일조해 탄생시킨 민주주의 정권 아래서 부친은 친일파로 몰리게 되었다"며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씁쓰레 했다고 하니, 운명이란 기구한 것이었던가.

이에 대해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위해 항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김소운이 친일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김소운 작가 같은 '소극적 친일'도 친일로 못 박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간다"는 옹호론자도 있다. 친일문인 명단작성에 참여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은 "당시 친일작가 선정기준(친일작품 3편이상)으로 볼 때 김소운을 뺄 수는 없었다"고 하고, 그러나 김소운에 대해서는 아직 삼사가 다 끝난 것은 아니며, 내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할 때 이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명단을 작성할 것이라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태평양전쟁이 한창 진행중인 일제 말기의 상황을 회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1940년을 전후한 시대에 문인이 친일색작품을 쓰지 않으면 당장 끌려갈 것 같은 공포 분위기였다는 데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6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는 동안 역사적 맥락은 거세되고, 문건만 남아 온사황에서 소극적 친일과 적극적 친일을 가려내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이 시점에서, 사람이 처세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심도 있게 생각해 보게 된다. 일제가 36년간 우리 국권을 약탈한 후 온갖 압박을 가하여 황국신민화 정책을 강행해 우리의 성까지도 빼앗는 급박한 상황으로 몰아갈 적에 나만 '독야청청'한 절개를지켜나가기란 정말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끝내 이를 견디지 못하고 마지막에 친일 냄새나는 작품 한 두편을 썬다고 하여 지금와서 그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정도가 심하지 않느냐는 것이 김소운 장남의 주장이다.

일제시대 20년을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해방 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8·15 광복 후 구성된 국회에서 '반민족 행위 처벌법'이 통과되었음에도 시행하지 못하고 유야무야로 돼 버린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50년이 경과된 오늘에 와서 그 책임을 물으려 하니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 더욱이 혹독했던 일제 말기를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앉아서 친일행위자 명단을 작성하려 하니 무리가 따르고 있다 하겠다.

김소운은 분명히 문학작품을 통해 우리 문화를 일본에 소개하였으며, 한국을 멸시하는 일본일들에게 목근통신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일침을 가하기도 한 애국자였다. 그러기에 그 공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까지 수상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그에게 지금에와서 새삼스레 친일행위의 책임을 묻는 다는 것은, 우리 부끄러운 역사 중의 하나인 부관참시를 연상케 한다.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잇는 자가 물론 극소수 있기는 하리라. 그러나 50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 그것도 혹독한 일제의 학정을 체험해 보지 못한 세대들이 앉아 그에게 돌을 던지려는 것은 '신판 부관참시'인 것 같아 재고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이를 강행하려 한다면, 보다 신중한 잣대를 적용하여 극소수로 국한하여야 할 것이다. (2007. 12.『문예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