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지혜

  성철스님 생존 시에 행자들에게 하지 말라는 세가가 있었다. 낮잠 자지 말라, 군것질 하지 말라, 책 보지 말라였다. 처음이 말을 듣고 나는 첫째와 둘째는 이해가 되었으나, 셋째 번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성철 스님 당신께서는 수천 권도 넘게 책을 읽었으면서도 제자들에게는 책을 읽지 못하게 하다니, 자가당착도 이만저만이 아니라 생각되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에서 귀동냥을 한 적분으로 스님의 속뜻을 알게 되었다. 앞서의 행자들에게 내린 세가지 금기사항은 성철스님의 독창적 발상은 아니고, 불교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던 '修者5戒'중에 들어 있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수자5계에는 돌아다니지 말라와 말하지 말라가 더 포함되어 있었으니 이는 수행자에게 국한된 수칙이었다.

   불교에서 수행자들에게 왜 책을 보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 책속에는 온갖 지식이 담겨 있다. 아름다운 시도 있고 흥미 진진한 이야기도 있으며, 깊은 철학과 사상도 숨쉬고 있어 인간이 살아가는 바른 길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처럼 유익한 책을 왜 멀리 하라고 하는 것일가. 여기서 지식과 지혜에 대하여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식과 지혜는 어떻게 다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지식은 사물에 관한 명료한 의식이나 이해 또는 정신이 어떤 대상을 아는 작용 및 이 작용에 의하여 알려진 내용을 이르는 말이라 되어 있으며, 지혜는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또는 불교에서 미혹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이라 되어있다.

   불교의 禪에서는 정신을 가다듬어 번뇌를 버리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며, 무아의 경지로 들어가려 하는 것이니, 이는 문자나 말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식은 가치가 없고, 지혜만이 오로지 마음으로 얻어지는 참다운 삶의 가치가 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책읽는 것은 지식을 얻는데는 도움이 되지마는, 깨달음의 경지인 지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만하면, 성철스님께서 수행자들에게 그처럼 '책 보지 말라'고 호령하시던 이유가 조금은 납득이 된다. 그러나 모든 행자들이 성철스님의 주문대로 100퍼센트 실천할 수 있었을까 하는 데 대하여는 의문이 남는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신문이나 책을 읽어가면서 세상 돌아가는 상황도 알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아닌가. 스님 말슴대로 만약 책과 담을 쌓고 산다고 하여 저절로 지혜가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니, 성철스님의 말씀에는 '수행을 하는 동안'이란 단서가 붙어 있었으리라 믿어진다.

   한편으로 우리 현실 사회를 들여다보면 지식을 많이 습득하지 못한 사람가운데도 세상을 누구보다도 바르고 깨끗하고 지혜롭게 삶으로써 인생의 모법이 되고 승리자가 되어 존경 받는 이가 얼마든지 있으니 지식이 없어도 지혜는 스스로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에서 '마쓰시다 전기'로 유명한 마쯔시다 고오노스케사장은 학교 문턱이라고는 4년밖에 넘나들지 못했다. 그러나 전기공업 분야에서는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를 갖추어 만인에게 문명의 혜택을 베풀 수 있었다. 미국의 재벌 카네기 역시 학교 교육은 4년밖에 받지 못했지만, 세계적인 갑부가 되어 온갖 사업을 발전시켜 세계인에게 행복을 누리게 하지 않았던가. 또 우리나라에도 자유당 시절 국회의원 R씨는 자기 성명 석자도 근근히 쓸 정도로 무식하였음에도 건설 사업에 성공하여 부자가 되고, 국회의원까지 역임하면서 수많은 불우이웃을 구제함으로써 존경을 받았다.

   그러면 지식과 지혜의 관계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불교에서는 지혜의 가치가 지식의 가치보다 우월하다고 보지마는 그렇다고 지식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 않겠는가. 지식보다 지혜를 중시하는 것에는 대체로 동의 하지만 지식이 지혜를 얻게 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하겠다.

   만약 둘의 가치를 자울에 얹어 본다면 저울대는 지혜 쪽으로 기울 것이다. 그러나 지혜가 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이라 할지라도, 최소한도의 기본적인 지식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도리나 선악 따위를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을 발동시켜 지혜를 낳아 줄 것이니 지식의 자치를 무시할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 지식이란 반드시 문자에 의해 얻어진 앎만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고 해서 알게 된 것을 포함한다. 앞서 예거한 국회의원 R씨는 비록 문자에 의해 얻어진 지식은 없었지만, 생활 속에서 보고 들어 알게된 지식이 있었기에 남다른 삶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무리 지혜의 가치가 소중하다고 할 지라도 지식의 가치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니, 독서의 가치는 역시 존중된다 할 것이다.

   지식과 지혜, 이는 동전의 앞뒤와도 같이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러나 그 역할 개념에서 볼 적에 지식은 직접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고, 지혜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므로 지식은 지혜를 낳기위한 보조적 역할만 할 수 있는데 비하여, 지혜는 바로 인간의 행동을 진실되게 하는 동력이 된다는 면에서 역시 지식보다 한층 우위에 자리잡고 있다고 하겠다.

   앞서의 마쯔시다 고오노스케나 카네기 등이 많은 지식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뛰어난 지혜를 지녔기에 어느 지식인보다도 세상을 역동적으로 운행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이제 성철스님께서 행자들에게 '가야산 호랑이'란 별명을 들어가면서도 '책 보지 말라'는 수칙을 철저히 챙게셨던 이유를 알게 되었으니, 뒤늦게 깨달은 나의 晩覺이라 할까. '개 줄 당기는 것도 모르고 교장 한다'는 우스개 속담이 떠오른다. (2007. 12 『수필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