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고 학덕은 길다

   일본 큐슈 후쿠오카현 카스가시(春日市) 정행사에서 국제퇴계학 학술 발표회가 열렸다. 그곳에서 200여 명의 참석자와 함께 일본 땅에 세워진 퇴계선생의 현창비를 보자 벅찬 감명이 있었다.

   일본 땅에 퇴계선생의 현창비가 서게 된 것은 서울 남한산의 망월사와 일본 큐슈의 정행사가 자매 결연을 맺고 있었던 바, 이퇴계 선생이 일본 유학(儒學) 중흥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는 사실이 양측 사람들 사이에 공동 인식이 되었기 때문 이었다.

   서울의 망월사(望月寺) 주지 성법스님은 퇴계선생의 15대손이다. 젊을 적 일본 동경대학에 유학하고 동아와 출가하였으며 망월사 주지가 된 후 일본 사찰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그는 원대조인 이퇴계 선생이 유교 학자로서 한국뿐 아니라, 일본의 유교를 일으키는 데도 공헌하였으며, 명치유신 때 교육헌법인'교육칙어'의 근본이 퇴계사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측 사람들에게 제의하였고, 이를 인정한 일본 사람들도 선뜻 찬동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퇴계선생 비석에 참배하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였다. 그는 500년 전 조선 유학자 아닌가. 그리고 일본은 임진왜란 때 우리 국토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며, 근세에 와서도 36년간 우리 국권을 빼앗아 지배하였다. 일본은 우리에게 원한의 나라이며, 일본 또한 우리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일본 땅에 현창비가 세워졌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무슨 힘의 작용이었는지 가만히 새겨본다. 첫째는 선생의 15대손인 스님의 역할이 결실을 맺었다. 둘째는 종교적 힘이 컸다. 퇴계선생은 일본에 유학의 기반을 확고히 조성하였다. '교육칙어'에까지 선생의 사상이 담겼으니 명치이후 이 가르침으로 교육받은 일본의 현대인들은 은여중 성생의 정신적 영향을 입고 성장한 셈이다. 따라서 자신들의 학문적, 도덕적 스승이요, 은인격인, 학덕 높은 어른의 현창비 건립에 선뜻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겠는가.

   학덕의 힘은 위대하다. 퇴계 선생은 430년 전 70평생을 살고 타계 했다. 그러나 그 학덕은 살아 남아 일본 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다시 비석으로 화신(化身)되어 정행사 뜰에 나타나셨으니 인생은 짧고 학덕은 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과 국제친선의 힘 또한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 역사 왜곡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 시점에서 사찰간 화합의 결실인 현창비 건립은 한일 국민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2005. 9.『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