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길과 평길

   산행을 하다 보면 평길을 걷다가도 계단길을 만난다. 기돗발 잘 받기로 이름난 보리암이 있는 해 금산은 정면으로 올라가면 정상까지 계단길을 걸어야 하는데, 뒷면으로 오르면 평길을 걷는다. 대신 산행거리가 멀다.

  또 입시 때 수험생 학부모로 장사진을 이루는 갓바위 부처가 있는 팔공산도 역시 정면 등산길은 계단을 수 없이 밟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는 등산로가 넓어 원하는 사람을 위해 옆으로 따로 평길이 마련돼 있다.

   계단길과 평길, 거기엔 특징이 있다. 계단길은 시멘트를 나무판 틀에 부어 넣듯, 발자국을 계단 위에 들어 옮겨놓기만 하면 되는, 틀에 짜여진 규격품 길이가. 그러기에 한 계단 한계단씩 발을 바꾸어 돌어 올리면 되는 기계적인 면이 있다. 대신, 일단 계단길을 택한 사람은 한계단 한계단을 꼬박꼬박 디디면서 걸어가야 하기에 보폭에 재량권이 없고, 계단의 명령에 순응해야 하니 재미가 반감된다. 반면에 평길은 보폭이 자유로워서 좋다. 징검징검 빨리 걸을 수도 있고, 보폭을 줄여 천천히 걸을 수도 있다.

   경사가 가파른 길에서는 계단길의 필요성을 느낄 때가 있다. 미끄럼 방지를 위해서도, 숨고르기를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래서 꼭 필요한 곳에서는 일부러 말목과 나무판 등으로 계단길로 개조를 해 놓은 곳도 있다.

   나는 산행시에 계단길과 평길을 걸으면서 기찻길과 자동찻길을 연상해 볼 때가 있다. 기차(전차)길은 철로가 깔려 있어 그 위로만 달리게 돼 있으니 산행길에서의 계단길과 같고, 자동찻길은 아무런 제한이 없으니 산행길에서의 평길과 같다. 사람들은 기차 운전수와 자동차 운전수 어느쪽을 더 선호할까? 기차(전차)운전수는 계단길을 걷는 등산객처럼 정해진 규격도로를 운행하기 때문에 일단은 안전하고 수월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차 운전사는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으로 전환을 하고 싶어도 그런 재량권이 없으니 얼마나 답답할 것인가.

   반면에 자동차 운전수는 자기 갈길을 찾아가야 하기에 기차 운전수보다 힘들다. 그 대신 자동차 운전수에게는 마음ㄷ매로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갈 수 있고, 가는 방법도 창의력을 발휘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 재미가 있다.

   인생의 길에도 계단길과 평길이 있다. 직업의 종류에 따라 계단길형 직업이 있고, 평길형 직업이 있다. 봉급생활자는 계단길형인 직업 종사자이고, 자영업자등은 평길형 직업종사이다. 그러므로 직업을 선택할 시에는 약간의 재량권이 주어진다. 그러나 계단길형 직업에 들어섰다고 종신토록 그길만이 아니고, 평길과 계단길을 섞바꾸어 가면서 걸어가는 경우도 있다.

   먼 인생길을 걸어가노라면, 계단길이 먼저 당치는 수도 있고, 평길이 먼저 닥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를 달게 받아들여 적응을 잘하는 것이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규격품형 인생길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고, 자율형 인생길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평생을 교직에 종사하였기에 운명적으로 계단길 인생, 적 규격품형 인생길을 걸어온 것 같고, 늘푼수 없이 살았다는 평판을 받은 것 같기더 하다.

   그러나 지금 만약 나에게 후진들에게는 어느 쪽을 더 권유하고 싶으냐고 물어온다면, 할 수만 있다면 규격품 인생길보다 자율형 인생길을 택함으로써 보다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면서 폭 넓고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가기를 권유하고 싶다. (2006. 3.『에세이문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