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유품

   우리집에는 어머니께서 소중히 여기시던 유품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신주단지'요, 하나는 '원상(圓像)'이다. 큰방 장롱 위에 모셔져 있는 신주단지와 방안의 벽면에 걸려 있는 원상을, 나는 이 유품을 유산처럼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매월 초하루 날과 가족의 생일날 등이 되면 조상단지에 꼭 밥을 올리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또 제사를 모신 후에도 제삿밥 한 그릇을 올려놓았다가 나중에 내려 먹었다. 어머니께서는 "오늘은 ㅇㅇ의 귀빠진 날이 되어 생일상을 차렸습니다."하며 고하고는, 손을 비비고 "부디 착하게 자라 명목을 누리게 해 주십시오."하는 소원을 빌었다.

   원상(圓像)은 어머니께서 당신의 50대 무렵에 성철스님에게서 받아온 것으로, 한지(조선종이)에다 붓으로 원을 그려놓은 것을 액자에 넣었다. 50년 전 어머니께서는 성철스님께서 득도(得道)하시어 성전암에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가 삼천 배를 하고 스님을 친견하셨다. 어머니끼서는 성철스님이 , 4살적에 업어주기도 하면서 돌보았던 터이라, 스님이 득도하셨다는 희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속세와의 인연을 끊은 스님이었지만, 어릴 때 자기를 업어주던 재종 형수를 만났으니 결코 무심히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날 성철스님게서는 어머니에게 원상 하나를 그려 주시면서 "부처님을 옳게 믿으려거든 이것을 벽에 걸어두고 부처님 대하듯 정성껏 모시면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하셨다 한다. 그 후 어머니께서는 당신 방에 걸어놓고 절에서처럼 하루 세 번 참회문(불경)을 외면서 성심으로 108배를 드렸다. 그 정성은 보통 사찰의 중은 저리 나가라 할 정도였다. 오늘 어버이날을 맞아 돌이켜보니 벌써 50년 전의 일.

   어머니께서 남기시고 가신 신주단지와 원상, 나는 자식으로서 이를 길이 보존하고자 한다. 신주단지는 선대의 조상을 섬기며 살고자 하는 토속 종교의 한 유물이다. 나의 어머니는 이를 하나의 신앙으로 믿고 실천하셨던 것이다.

   조상숭배는 나무의 뿌리를 가꾸는 일에 통한다. 나무줄기와 가지가 뿌레에서 돋아났듯, 조상이 있었기에 자손인 우리가 태어난 것이다. 그러므로 뿌리를 가꾸어야 가지가 무성할 게 아닌가. 우리 내외는 조상 섬기는 것을 선조에 대한 추효(追孝)로 생각하고, 어머니의 유물인 신주단지를 받들어 모시려 한다.  성철스님께서 주신 원상은 현재 서재 한 벽면에 걸어 모시고 있는데, 어머니처럼 못하지만, 아침마다 한 번씩 정성들여 예불을 드린다. (200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