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하다

   묵은 우스개 이야기 하나.

   먼저 탕 안에 들어간 아버지가 "아, 시원하다!" 하면서 기분 좋아 하였다. 뒤이어 탕으로 들어간 아들은 물이 뜨거운지라, 곧 나와서 "뜨거워 죽겠는데… 세상에 믿을놈 없네."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시원하다요' 아들은 '뜨거워 죽겠는데'이니 어느 한쪽은 거짓말이 아닌가.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두 사람의 말이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시원하다'의 뜻풀이가 여러 가지로 나온다. 더울 때 선서한 바람을 쐬는 것처럼 서늘하다, (마음을 찝찝하게 하던 것이 해결되어) 후련하고 가뿐하다, 마음이 상괘하다(refreshing), 수수께끼 같았던 그 일을 알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말이나 행동 등이 거칠새가 없고 서글서글하다, 가렵거나 체하거나, 마려운 느낌이 가셔져 기분이 상쾌하다, 앞이 막히어 답답하던 것이 확 틔어 답답하지 않다(be clean), 국물 따위의 맛이 텁텁하지 않고 산뜻하다(시원한 김친국), 기대나 욕구 등에 만족할 만큼 충분하다. 등등으로 쓰인다.

   이처럼 같은 낱말이라도 그것이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로 쓰이는 낱말들을 어느 나라 말에서나 만나게 된다. 언어의 생성 발달은 그나라 국민의 정서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시원하다'고 하는 표현을 하는 것은 이미 우리 국민의 정서에 부합되고 있는 것이다.

   목욕탕 안의 알맞게 뜨거운 물에 들어 갔을 적에 '시원하다'는 것은 날씨가 서늘하게 시원하다는 뜻과는 다른, '상쾌하다'는 뜻으로 바뀌어 서로간의 정서로 굳어져 버려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인데, 아직 성장이 덜 된 아이는 미처 그 낱말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의 뜻을 모르고 있었기에, 아버지가 엉뚱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가 풀리지 않아 갑갑하고 담담한 가운데서도 뜻밖에 스포츠 면에서는 우리에게 '시원하다'는 느낌을 주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경우가 잦아 위안을 받는 수가 있어 좋다. 2002년 월드컴 축구에서 16강을 넘어 4강에까지 진출함으로써 우리 국민에게 '아, 시원하다'는 선물을 연달아 안겨주었다.

   지난해 들어서도 박태환 선수가 수영 3관왕이자, 대회 최우수 선수(MVP)로 까지 뽑혀 온 국민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 주었고, 또 빙상 경기 세계대회에서 김연아가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선수가 되어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뿐만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골프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어 자주 세계 각국 선수들을 제치고 정상을 차지함으로써 한국 국민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지난해 연말 대통령선거에서는 국운이 열려 혼탁한고 갑갑한 사회가 안정되고 경제가 되살아나기를 바랐기에, 정권이 교체됨으로써, '시원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하였다. 그런데 막상 새 정권이 입성하고 보니, 새 대통령이 시원한 정치를 펴나가지 못하고, 더욱이 쇠고기파동 같은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으니, 또다시 갑갑한 세상을 만난 듯 답답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국민들은 하루속히 정부가 민의를 파악하고 시국을 잘 수습함으로써 스포츠경기에서 얻어지는 쾌감처럼, 또 앞서 목욕탕에서 나온 아버지가'아, 시원하다'는 것을 느끼는 것과 같은 공감을 모두가 느낄 수 있게 되기를 갈망해 본다. (200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