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 불효

   경주 박물관 근처에 '효, 불효교'가 있고, 여기 서린 이야기가 있어 전할까 한다.
   옛날 일찍이 과수댁이 된 여인과 아들이 살고 있었는데, 아들은 어머니가 밤늦은 시간에 몰래 외출을 하고 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궁금하 여긴 아들이 어머니의 뒤를 밟아 보았더니, 어머니가 개울 건너 마을에 다녀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들은 어머니가 편하게 개울을 건너게 해야 하겠다는 효심으로 하천에다 몰래 돌다리를 놓아 주었다. 그 후 어머니는 누놓은 지도 모르는 다리를 뻔질나게 밟으면서 건너 마을의 기둥서방집을 드나들었다. 아들은 뒤늦게 어머니가 건너 마을을 드나들게 된 속사정을 알고서야, 어머니에게 효자 노릇을 하기 위해 놓아 드렸던 다리가 아버지에게 불효 노릇을 한 다라기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니, 훗날 동네에서 그 다리를 '효, 불효교'라고 명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날 아버지께서 칠순 직전에 병에서 고혈암 증세가 있음에 따라 혈압 강하제를 복용하셨는데 1년 간 복용한 결과 혈암이 정상화되었기에 안심을 하고 그 후로 일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반쯤 후에 아버지께서 고혈암증세가 재발하여 그길로 별세를 하셨다. 이일로 인해 나는 계속 아버지의 혈암관리를 잘해 드리지 못한 불효의 죄책감을 안고 살아야 했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내가 벌써 72세에 다계하신 아버지보다 10년을 더 살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30여 년 전에는 평균 수명이 50살도 안되는 때여서 당시 아버지의 72세 생존은 비교적 장수했다는 말을 들은 시대였으나, 그래도 자식인 나의 욕심에는 차지 못해 아버지의 혈압관리를 잘하지 못한 죄책감과 임종을 못한 불효에 후회지심을 삭일 수가 없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노인병원 방문에서, 환자들이 편안한 저승길에의 골인을 못해 고통스런 삶을 보내고 있는 현장을 자주 보게 되니 효에 대한 개념이 조금 바뀌게 되었다. 이것은 시대 변천의 부산물이라 해야 할까. 지난날에는 부모를 무조건 오래 모시는 것을 '1등 효도'로 여겼으나, 평균 수명이 80을 넘보게 된 오늘날에 와서 보니, 부모를 꼭 장수하게 하는 것만이 효도 아니고, 그보다는 건강하게 살다가 마지막에 고통 받지 않고 운명하도록 하는 것이 더 큰 효도가 된다는 방향으로 전환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지금까지 지녀왔던 불효에 대한 후회와 한이 조금은 감소되는 것 같고, 따라서 30여 년전, 상문 온 친구들이 나에게 "72세면 장수요. 편히 가셨다."고한 그말이 새삼 떠올라 뒤늦게 위안의 말 효과를 받는 것 같기도하여 불효의 죄책감에서 조금은 벗어나는 듯한 느낌도 받게 된다. (2005. 9.『수필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