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예찬

    내고향 마을 입구엔 수령을 알 수 없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 있다. 지금이 청년기인지 노년기인지 아는 삶이 없다. 내 어릴적이나 80년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언제나 푸름이 창창하니 '만년 청년'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이 느티나무는 큰 그늘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대담·토론의 광장이 되기도 하였다. 나는 집이 가까이 있어 어릴적 느티나무 우산아래로 자주 찾아가 책을 읽기도 하였기에 향수가 짙다.

   요즘도 간혹 고향엘 방문하면 누구보다도 먼저 입구에서 나를 반겨주는 것이 느티나무다. 그래서 '고향'하면 먼저 느티나무를 떠울릴 정도이다.

   느티나무! 나는 그대앞에 서면 마음이 경건해 진다. 그대는 육중하고 웅대하다. 아무도 다음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큰 우산이 되어 아늑한 정자나무 모양을 이루어 가면서 자라주니, 나는 그대에게서 '자율'을 배우게 되었다.

   또 무게가 있어 경솔하지 않고, 온갖 풍상을 겪고서도 속으로만 삭이고 견뎌내니 인고의 수도자요, 어진 선비와도 같도다. 그대는 하늘을 받치는 커다란 우산으로 뭇사람을 안아주고, 불볕 햇살도 가리어 보호하는 포용력을 지녔으니, 이처럼 도량 넓은 이를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으랴.

   나는 어디에서나 느티나무를 보기만 하면 마음이 숙연해지니, 고향 마을 느티나무의 인상이 수호신으로 인각되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피라미드처럼 안정감 있고, 말없이 입 다문 그 모습이 얼마나 믿음직스러운지 모른다. 거기에서 온갖 삶의 고통을 이겨내고 의젓함을 풍기는 도승이나 선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으니 절로 존경심을 느낀다.

   여우가 죽을 때엔 머리를 고향 쪽으로 돌려 죽는다는 수구초심(首丘初心)이란 말이 있지만, 나도 이제 팔순을 넘기고 보니 귀소본능(歸巢本能)의 심정으로, 향수심에 잠기게 된다. 그래서 '고향'하면 느티나무가 생각나고, 얼마남지 않은 여생을 그 느티나무처럼 포용력 있고, 어젓하게 배풀면서 살아가는 삶으로 마무리했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된다.  (20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