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은 숙 (34세손 전서)
저에게는 초등학생 조카들이 있습니다. 밝고 맑은 그 애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제 마음까지 환해질 때가 많지요. 주위에서 아이들이 참 아이답다고 할 때면 마치 저 자신이 부모라도 된 듯이 뿌듯하기도 하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밝게 웃을 수 있는 이아들의 미소 뒤, 우리의 관심이 미치지 못하는 그늘진 곳에서 어둡고 탁한 얼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다른 아이들의 존재를 떠올려 보게 됩니다. 얼마 전 언니로부터 들은 애기입니다. 아파트에서 가끔 큰 소리가 나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버지가 어린 딸을 때리는 소리였답니다. 한번은 이웃이 억지로 문을 열게하여 들어가 보았더니 아버지가 손에 최파이프를 들고 있더랍니다. 그러한 폭력을 가족중 아무도 말라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자정이 겉보기에는 지국히 정상적이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의외로 평범한 가정에서 이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으며, 양친이 모두 아이를 학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작은 조카와 같은 반 한 남자아이의 머리가 심하게 찢어져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담임 선생님이 온몸을 살펴서 여기저기 심한 상처를 발견한 경우도 있었답니다. 부모들에게 늘 맞아서 생긴 자국이라니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증거자료로 사진을 찍어두고 한번만 더 그러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강하게 경고를 했다지만 과연 효과가 있을찌…. 이러한 아타까운 일들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은 우리의 인식이 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온몸이 멍투성이인 아이를 두고 다시 한번 이러면 신고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돌아선 이웃 주민의 행동을 비난할 순 없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남의 가정문제에 깊이 관여하는 것을 거리끼는 마음이 크고, 실제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물며, 신고 자체와 그이후의 번거로움을 감수 할 수 있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억지로 문을 열게하고 그 집에 들어간 곳 만으로 현재로선 용기 있는 향동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상처자국을 사진 찍어둔 선생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정내 폭력, 특히 아동학대가 우리와 우리들의 아이, 사회전반에 미칠 영향을 인식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 까요.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계속 유지하고 적극적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할 준비를 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됩니다. 뉴스를 장식하는 끔찍한 사건에 '저런 나쁜 사람들이 있나. 아이가 불쌍해.'하고 그냥 넘기거나, 지하철 전광판에 <아동학대 신고전화 139>이라는 글이 뜨면 '저런 번호도 있구나'하고는 무심히 지나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제도적으로는 아동학대를 발견했을 때의 대처 방침을 명확하게 정하고, 신고절차의 단순화, 재발 방지책의 마련, 필요한 경우 피해 아동의 양육과 교육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질 수 있도록 하는 관계법령의 정비 등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일선 교사들에게도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하고, 과연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원인을 파악하여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여성아니 수감자, 노인, 장애인 등 우리가 신경써야 할 권리는 수 도없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인간의 권리는 바로 힘없는, 약한, 어른들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라나는 아이들의 그 것일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생물학적 부모는 쉽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면 진정한 가정을 꾸리기는 힘들 것이며, 현재 뿐 어니라 미래,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더 먼 미래가 밝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마음깊이 새겨 봅니다. 아이들의 밝음 웃음은 그저 얻어지는 것이 아닐테니까요.(이병규 부회장의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