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어린이날의 사모곡(思母曲)

李源珉 (32세손 목사공)

  5월 5일 어린이날의 아침은 맑았다. 평소처럼 어침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서서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향하니, 비가 내린뒤의 하늘은 끝없이 맑고 학교로 이어지는 길도 씻은 듯이 깨끗하기만 하다.

  교정에 들어서니 조기축구회원들이 시합 직전의 워밍업을 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늙은이, 젊은이들이 각양각색의 옷차람으로 배드민턴, 조깅, 걷기운동을 하고 있는가 하면, 어슬픈 몸동작으로 매손체조를 하는 노인네 등, 이른 아침 학교 운동장의 품경은 매우 다당하다. 나도 그 중의 한사람이 되어 잠시 맨손체조로 몸을 푼 다음, 운동장 가장자리를 빠른 걸음으로 몇 바퀴 돌고 나니 온몸에서 땀이 조금 배이고 맑은 아침 공기로 해서 마음도 상쾌해졌다.

  간단한 아침운동을 마치고 학교 뒷문으로 나와서 서리 산책을 겸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잡아 성당 앞 좁은 도로로 접어드니, 저만큼 앞에 걸음걸이가 좀금 시원찮아 보이는 할머니와 그 손을 잡은 머리가 흰 남자의 다정스런 뒷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을 가지고 뒤따라 가는 내 걸음이 그들보다 빨랐는지, 차츰 서로의 거리가 좁아져 그들이 나직하게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렸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날 조옴 보오 소"
  여기까지는 두 사람이 함께 불렀다.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오"
  할머니가 혼자서 노래를 했다. "우리 엄마 잘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80쯤 되어 보이는 어머니와 50대로 보이는 아들이었다.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모자의 노래가 다시 이어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아마도 老母는 치매기가 있는 모양인지? 이따금 띄엄띄엄 나직한 모자간의 대화가 들리기도 한다.

  "엄마 언제 올 건데?"
  "…"
  노모의 말은 잘 들리지 않았고
  "우리 엄마 잘도 하네!" 아들의 말만 들린다.

 내가 다가가서 "어머니 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예" 하고 짤막하게 대답 했다.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다시 말을 걸었더니 쑥스러운 듯이 "고맙습니다"하고 역시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할머니에게도 "할머니 건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더니 아들이 "어마 고맙습니다. 라고 인사해." 약간의 응석이 섞인 아들의 말이 조금도 어색하게 들리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인사하니 "우리엄마 잘하네!" 아들이 다시 어머니를 창찬한다.

  어린이날 아침 80 노모와 백발이 성성한 아들간의 대화가 너무나도 정겹게 들리고 그 모습이 보기에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머머니가 젊은 시절에 지금의 백발이 돤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걸으면서 아들이 부르는 동요 한가락을 듣고 "아이고 우리 새끼 잘도 한다!"라고 칭찬했을 것이다. 결코 돈이 많아 보이거나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인 것  같지믐 않고,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모자간이었다.

  저 어머니가 어떻게하여 저렇게 아들을 잘 길렀을까? 세파에 시잘려 노약해진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저토록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걸어가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서 우리들의 어머니를 생각나게 한다.

  孟母가 따로없고, 申師任堂이 따로 없다. 저렇게 효성스러운 아들을 길러낸 어머니가 맹모요, 신사임당이요,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가 아니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60세에 돌아가셨다. 그해 봄 진해 벚꽃 구경하지고 한 약속을 병환이 위중하여 지키지 못하였고, 회갑 잔치도 차려 드리지 못한 한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오늘 아침 그토록 감동적인 모자의 모습을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 모자의 모습에 어머니와 나의 모습을 대입시켜 보았다.

  어머니께서 살아계신다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변변히 효도 한번 하지도 못한 불효자식이 이제와서 설령 치매에 걸렸더나도 살아만 계신다면…… 가슴속에 묻혀 잇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되살아난다.우리 부모님께서 결혼하신지 7년만에 나를 낳으셨으니, 그 시절로서는 퍽 기다리던 아들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내가 열살이 되어서야 둘째 아들이 태어났으니 어릴 때 나는 남달리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어머니는 조용하고 인자하신 분이셨으며, 매를 들고 꾸중을 하실 때도 있었지만, 철부지 어린나를 조용히 타이르시는 분이시고, 섬진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팔러 다니는 사람의 손에서 유난히 큰 잉어나 자라 같은 것이 눈에 뜨이면 조용히 사서 남몰래 방생하시는 분이셨다. 그건 아마도 자식들을 위하는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런 어미니께서 아버지의 사업 실패, 6.25전란 등으로 모진 고난을 겪으셨으며, 그 와중에서도 자식에 대한 사랑과 기대는 극진하셨다. 어떤 곤경과 시련 속에서도 늘 여유가 있고, 밝은 심성을 가지도록 길러 주셨기에 나는 세상을 살아오면서 어려움이나 시련에 부딪쳐도 특별히 어려워 하거나 좌절한 적이 없이 마음은 언제나 여유롭게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를 길러주신 어머니를 내 동생 원계는 어느글에서 '나는 특별한 종교가 없다. 있다면 어머님에 대한 믿음뿐이다.…… 어머님 이상의 지고지선이 이 하늘 아래 또 있겠는가? 어미님 앞에서는 그 어떤 가치로도 버금가는 절대자가 있겠는가?하여 나의 종교는 어머님이시다.'라고 썼다.

오늘 아침에 본 그 모자간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나니 더욱 가슴 저리게 어머니가 그리워진다.(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