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3>

日本 땅에 세워진 李眞榮 梅溪 父子 顯彰碑
壬辰亂 때 포로로 끌려가 和歌山 地域文化 發展에 기여

   
李 炳 壽    

 현해탄 건너 멀리 이국땅 일본에 우리 합천이씨 22세손인 이진영과 그 아들 매계선생 뷰자의 현창비가 1998년 7월 18일 일본 화가산현 화가산시내 岡公園 입구 도로변에 세워 졌다.

 이진영선생은 400년 전 임진난 때 의병으로 곽재우 장군 휘하에서 싸우다가 패해 23세의 몸으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가 온갖 고생 끝에 海善寺에 정착하면서부터 유학자임이 인정되어 해선사 주지의 추천으로 당시 화가산 성주(藩主) 德川賴宣의 侍講이 되어 蕃政을 도왔으며, 큰 학자로서 이름을 떨쳤고 40세에 일본 여인과 결혼, 아들 매계를 낳았다.

  매계는 아버지의 학문을 이어받아 더 큰 학자가 되어 제2대 藩主 德川光貞의 시강이 되고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父母狀(효행, 법도지키기, 사치않하기, 분수지키기, 정직 등을 기르친 글)을 지어 藩主의 이름으로 가가호호에 배포, 이를 외우고 실천토록 하기를 대대로 350년간 명치시대 敎育勅語가 나오기까지 화가산 지역의 정치교육의 이념으로 삼게될 정도로 주민을 교화, 정신적 영향력을 미쳤다.

  이처럼 이진영 매계 부자는 와카야마 지역에 많은 공헌을 하였으므로, 그 곳에는 두 분의 사적이 곳곳에 산재돼 있고, 박물관 도서관에도 유품 또는 저서가 보존되어 있으며, 향토 사학자 중에는 진영 매계만을 전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이다.

  1970년대 초에 해선사 주지(田村歡弘)와 당시 우리나라 문교부 교육파견관이었던 金海永선생(부산출신)등이 진영선생의 고향인 창녕 영산을 방문, 확인 하였다. 그후 해선사 주지등과 합천이씨 종친회, 영산 문화재 보존회 등이 합동으로 영산 못가에 이진영 매계 현창비를 건립함으로써 양국 관계자들의 욍래가 잦게 되었던 바, 이번에는 일본에서 和歌山市를 비롯, 和歌山縣 日韓親善協會, 韓國民團 和歌山地方本部, 和歌山文化協會, 재일본합천이씨종친회 등이 참여한 가운데 李眞榮 梅溪 縣彰會를 조직, 비석을 세우게 된 것이다.

  현창비 제막식에는 우리나라에서 중앙종친회 만섭회장과 상희, 병원 두 부호장께서 참석하였고, 합천화수회에서 명갑회장과 직상부회장, 용수 전부회장, 뵹목 재무가 참석하였으며, 부산총친회에서 병수회장과 갑순간사 등 3명이 참석 하였다.

  제막식은 한국민단 和歌山縣 지방본부단장(李德)의 개식사에 이어 내빈 소개, 田村歡弘 住持의 건립 경과보고가 있었고, 和歌山市長의 인사와 和歌山縣知事 및 大阪駐在 대한민국 총영사(金世澤)의 축사가 있었다. 그리고 문중대표로서 이만섭 중앙종친회장과 이상주 이본종친회장의 인사가 있었는데, 사회자가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역임한 이만섭씨'라고 소개하자 많은 박수가 터져너오기도 하였다.

  축사와 인사말 등에서 이진영 매계가 和歌山 지역의 교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이구동성으로 찬양하는 내용들이 수없이 언급되었으며, 여러 사람의 입에서 한일간의 우호증진과 친선을 부르짖는 제의가 연발됨으로써 모든 참석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한편, 현창비 건립을 위한 소요 경비조달에 있어서는 재일종친회 상주회장을 비롯하여 경도 거주 경복총친과 대판거주 삼수 종친 등 몇몇 회원들이 상당한 협력을 한 것으로 들었다.

  400년 전의 임진왜란은 우리가 패전한 전쟁이다. 그러나 400년 전 그때 이진영 같은 학자나 沈壽官같은 기술자들이 많이 건너가 미개한 그들에게 도덕 학문 기술 교육을 시켜줌으로써 일본의 문화적 발전을 이루게 하였으니, 비록 무력 싸움에서는 패하였지만 문화싸움에서는 그들을 지배하였다고 하겠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가 도덕 학문 기술면에서 그들로부터 배워와야 할 상황이 되었으니 새상은 돌고 도는 것인가? 순자는 이런 경우에 쓰기 위해 '靑出於濫:제자가 스승보다 학문 기술이 더 나음을 뜻함)'이란 말을 지어 냈던가?

 이진영 매계는 인본인들에게 도덕 학문을 전수한 훌륭한 스승이요, 교육자요, 은인이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이에 보답하는 뜻으로 이번에 현창비를 세운 것이니, 시혜자에 대한 본은이다.

  400년전 고대에 우리의 적국이엇던 일본인들이 최근에 다시 그들의 은인이었던 한국인의 현창비를 세웠다는 사실은 정말 쇼킹하고 흐뭇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어 앞으로는 한 일 양국간에 적개심도, 망언도, 한풀이도 눈 녹듯 사라지고 평화만이 존속되어 나갔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안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부산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