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에 올라

    태산(泰山)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이는 조선조의 이름난 선비요, 서예가였던 양사언이 읊은 시조로, 무엇이든지 하면 된다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울 때 인용되는 교훈 담긴 시조이다. 태산에는 두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썩 높은 큰 산을 뜻하고, 또 하나는 중국 산동성에 실재하는 고유명사로소의 산을 뜻한다. 양사언이 어느것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느쪽이든 뜻은 통하는데, 우리나라에는 고유명사로서의 태산은 없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에 공자의 고향인 곡부를 관광하면서 그 유명한 태산을 등반한 기쁨을 안고 돌아왔다. 태산이 하도 유명하기에 꼭 한 번 올라보고 십었었다. 광장히 높은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 1524미터로, 우리나라 한라산 높이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그런데 태산이 어쩨서 유명한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예로부터 중국에서 명산 다섯을 고르는데, 동·서·남·북과 중앙에 각각 산 하나씩을 뽑아 동산은 산동성의 태산(泰山), 서산은 협서성의 화산(華山), 남산은 호남성의 형산(衡山), 북산은 산서성의 항상(恒山), 그리고 중악(中岳)으로는 하남성의 (崇山)을 오악(五岳)이라 불러 역사적으로 중국 명산으로 일컬어 왔었다. 그 중에서도 태산이 더 유명해진 것은 동서남북의 차례에서 첫 손 가락으로 앞섰기에 호악(五岳)의 어듬으로 꼽히게 된 것이었다.

  역사상 중국황제들이 즉위하였을 적에는 태평성대의 실현을 신(神)에게 보고하는 성스러운 의식인 봉선(封禪) 행사를 태산에서 올렸다. 이런 거국적 행사 때문에 태산이 중국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부각되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천황이 봉선을 올렸다는 정상의 제단에도 서 보았는데, 규모가 그리 크지 았았다. 그런데 황제라고 누구든지 태산에서 봉선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덕이 있는 황제만이 이를 허락받았으며, 역사상 72명의 황제만이 봉선 의식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태산은 대산(垈山)이란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다. 산 아래에 옛날 봉선 의식을 거행하던 대묘(垈廟)가 있었다. 우리는 하산후에 이곳에도 가 보았다. 대묘(垈廟)의 본전(本殿)은 거대한 천황전으로, 북경 자금성(紫禁城)의 태화전(太和澱), 공묘(孔廟)의 대성전(大成殿)과 함께 중국의 3대궁전이라 한다.

  공자는 태산에 올라서 "태산에 올라보면 천하가 얼마나 작은 것인가(登泰山而小天下)"라 읊었으며, 문인 두보(杜甫)도 "태산 정상에 올라 다른 산들의 작음을 한눈에 굽어보리라(曾當凌絶頂一覽衆山小)"란 시를 남겼다고 한다. 태산은 태안시의 북쪽에 있는 산으로, 나무가 그리 무절하지 않은 돌산에 가까운 산이었기에 자연 풍경지로서 가치는 별로 없고, 문화 유적지라 할 만큼 온갖 유적이 널려 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태산에 오르는 길은 케이블카가 가설되어 있어 힘들지 않고 오를 수 있었다. 케이블카로 약 15~20분 걸이어 착지점에 도착, 정상까지 걷는 거리는 약30분이니 왕복 소요시간이 한사간 반 정도면 가능하다. 들은 바에 의하면, 케이블카는 일본인이 설치하여 수년간 운영하다가 중국에 헌납하였다고 한다.

  나는 태산에 올라서 옛날 케이블카도 없는 이 산에, 천하에 지존적(至尊的) 권위를 자랑하던 대 황제가 자신의 즉위를 고하고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식을 지내기 위해 이 높은 곳에까지 직접 발 걸걸음을 옮겨 무릎을 꿇었다고 생각하니, 태산의 권위는 황제에게조차 군림할 수 있는 막강한 것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여기에서 태산이 중국 제일이 명산임이 천하에 홍보되고, 따라서 양사언도 공자를 사숙(私淑)하는 유학자였기에 그의 시조에서 태산을 인용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이번 중국 곡부 여행에서 얻은 큰 보람은 두가지였다. 하나는 1960년대 후반에 모택동의 중국공산당에서 문화혁명이란 이름아래, 2천년간이나 세계 3대 성인으로 추앙을 받아온 공자에게 무산계급과 노동자만의 시각으로, 하루아침에 봉건적 노예제도의 오호자'였다는 죄명을 둘러씌워 사형선고를 내려, 공자 비하운동을 일으켜 유적지를 훼손하고 참배조차 못하게 했었는데, 이번에 가서 보니, 그 후에 중국 정부 스스로가 자신들의 과오였음을 깨닫고, 파손되었던 공자 유적지를 복원하였을 뿐 아니라, 이를 재정비, 미화함으로써, 죽었던 공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또 하나는 등산가가 그 날 목표한 산의 정상을 밟아보는 쾌감 때문에 산을 오른다는 말처럼, 중국 천황의 권위위에 군림하는 태산의 정상을 비록 케이블카의 도움을 받기는 하였지만, 이를 답파하고 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산을 정복하는 기쁨은 등산객에게는 초상의 쾌감임이 확실하다. 이러한 쾌감은 등산객만이 향유하는 전유물이 결코 아니라 할 것이다. 산은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인생에도, 우리 마음에도 산이 있다.
  우리의 평생 행로에서 넘어야 할 어려운 고비가 한두 개가 아니니 이것이 곧 산이 아니고 무엇인가? 우리가 산에 올라 정상을 밟음으로써 누리는 쾌감은 곧 우리의 인생행로에서 어렵지만 보람된 일을 마무리해 내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상통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