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일 교수에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의 저자에게

 

  김경일 교수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본인은 지난 1999년 선생께서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펴냈을 때, 그 책을 읽고 「대학교수,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는 비판성 글을 쓰고, '교수님 너무 심하시네요.'란 충고성 서한을 직접 보내 드린바 있는 이병수입니다. 내가 다시 김굑수에게 글을 보내게 된 것은 이번에 내가 퇴계학 연구원과 박약회에서 주관한 공자 탄신 2,555주년 기념 치전(致奠)행사에 동참하여 중국 곡부(曲阜)를 탐방하고 돌아와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23일 우리 일행 552명은 경기도 평택항을 출발, 황해를 14시간 항해 끝에 중국 산동성의 영성(榮成)항에 도착하였는데, 우리는 거기서 600명의 중국 환영단으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산동성 성장을 비롯한 여러 단체장들과 시민 학생들이 참집한 가운데 악재를 앞세워 열렬한 환영의식을 베풀어주었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버스로 하루 반을 달려 목적지인 곡부에 도착, 공자의 사당인 대성전에서 우리나라의 의전으로 치전(致奠:제물과 제문을 가지고 조상하는 의식)행사를 가졌습니다. 알고보니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성균관을 중심으로 곡부에서 제사를 올린 일은 더러 있으나, 이처럼 대규모로 행사가 치러지는 것은 처음이라며, 중국사람들이 놀라워하였습니다. 그날 진설한 제수는 한국에서 준비해 갔으며, 제기 24종 64점도 한국제품으로 준비하여 제사를 지낸 후에 그 제기를 그곳에 기증하고 돌아옴으로서 또한 그들에게 인상적인 감동을 주게 되었습니다.

  으리는 4일간에 걸쳐 노(魯)나라 애공(哀公)이 공자가 서거한 이듬해(기원전 478년)에 공자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 공묘(公廟)와, 공자 자손이 대대로 살았던 저택인 공부(孔府), 그리고 공자와 그 후손들의 묘소인 공림(孔林) 등을 돌아보았으며, 안묘(顔廟), 주공묘(周公廟), 맹모림(盟母林)등도 순방하였습니다. 또 마자막 날에는 태산의 신을 모셨기에 태산행궁(泰山行宮)이라 불리우는 대묘(垈廟)와 그 밖의 여러 곳을 탐방하고 태산 등반도 하였습니다. 태산에는 케이블카카 가설되어 있어 그다지 힘들지 않더군요.

  이렇게 곡부에서 공자 유적을 순방하고서 나는 당시 공자가 얼마나 많은 중국인의 절대적인 존경을 받으면서 살고 갔는가 하는 것을 각종 유적의 규모와 그 유적에 묻어 있는 향기로서 충분히 감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데 그 반면에 모택동의 공산당 집권 후 이른바 문화혁명 당시에 공자비하운동을 일으켜 유적 참배도 금지하고, 심지어 유적지 훼손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실제로 비석 하나가 두 동강이 났던 것을 시멘트로 발라 복원시켜 놓은 것을 볼 수 있더군요.

  김교수께서『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저술할 적엔 아마도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의 영향을 받아 그러한 책을 쓴 것이라 짐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데 이번에 내가 곡부에 가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중국 공산당의 공비(孔卑: 공자를 비하시키는)사상은 10년도 못되어 인민들의 반대에 봉착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민심을 등진 정치가 성공 할 수 없다'는 논리로 모택동에 맞서는 간부 당원들의 강력한 주장에 밀리어 공자 격하 운동은 물 건너가고, 그 후에 곧 공자 유적도 복원되고 참배객도 늘어 났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즘 와서는 중국정부의 실용주의 정책으로 유적 복원에 머물지 않고, 외국관광객 유치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교수님, 이젠 교수님께서도 생각을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공자는 누가 무어라 하여도 석가모니, 그리스도와 함께 성인으로 추앙을 받던 분이 아닙니까? 그런 성인을 중국공산당이 집권하면서, 노동자 무산계급 위주의 시각에서만 보고 '봉건적 노예제도의 변호사로'로 비하시킨 것이 아닙니까?' 사람의 시각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인가 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걸어갈 도덕성을 만인에게 가르쳐 준 은인인 공자를 하루아침에 '인민 권력착취 방조자'로 전락시켰을 뿐 아니라, 오히려 전인민의 증오의 대상으로까지 끌어내렸으니 공산주의 사상은 칼날보다 무섭다고 하겠습니다.

  김교수님은 그러한 공자 비하운동에 앞방 서 동참하였으니, 중국의 문화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이제는 대오각성을 해야 되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내가 김교수의 『공자가 죽어야 ...』란 책을 보고 더욱 격분한 것은 책 제목에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성인을 모독하였으며ㅡ 더구나 「국민의 내면을 지배해온 유교문화의 권위와 위선에 대한 600년만의 자유선언」이란 안하무인격인 부제를 붙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김교수께서는 그렇게 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함으로써 약효를 받아 책이 좀 팔려 짭짤한 수입을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로 인해 가치관이 확립되지 못한 성장과정의 청소년들을 얼마나 현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석학자인 토인비는 '한국에서 장차 인류 문명에 크게 기여할 것의 하나는 효사상'이라고 할 만큼 효정신은 세계적인 우리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간 교육을 잘못한 탓으로 2001년도 유니세프의 조사에서 아태지역 17개 나라 중 '어른 존경심 꼴지'라는 불명예스런 훈장(?)을 달게 되었다니 얼마나 낯 뜨거운 일입니까? 김교수께서는 여기에 대해 일말의 책임 같은 것을 느끼시지 않는지요.

  물론 김 교수께서 책에서 의도하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급격히 변천하는 현대사회에서 공자와 같은 낡은 유교사상이 대폭 수정되어야 할 점이 허다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김교수께서는 문장 수사법상의 강조법으로서 '공자가 죽어야...'그런 표현을 한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마는, 자라나는 세대에게 호기심을 자극함으로써 독약을 주는 결과를 낳게 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는 이번 곡부 여행에서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된 10년간의 문화혁명에서 김교수의 소망이었던 '죽었던 공자'가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기에 김교수께서 참고하시고, 곡부에의 재차 방문을 해 보십시오.
  부디 김교수께서도 중국정부처럼 과오를 솔직히 시인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