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오후 3시에 생각되는 것들

   사람이 하루에 일하는 활동시간을 아침 6시부터 저녁6시까지 12시간쯤으로 보고 이를 일생과 비유해 본다면, 나는 지금 대략 오후2시를 지나 3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셈이다.

   옛날 사람들은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다'라고 했지만, 현대인들이 시간의 속도 개념을 이야기할 때, 보통 나이 세대에 마일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고, 거기에 2를 곱하는 경우도 있다. 시간의 흐름이 덧없음을 정말 실감나게 하는 셈이다. 아마 오후 6시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속도 개념은 더욱 더 증가할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일 하던 직장을 명예퇴직하거나 정년으로 떠나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퇴직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가끔 옛 동료들의 퇴직자 모임에 나가거나 등산 등 운동모임이 가보면 '나이든 사람들의 지혜로운 삶 방법'에 대한 강의를 듣는 수가 있다.

   그들의 강의 내용에는 버리기 아가운 말들이 있다. "옛날 일들일랑 모두잊고 잘난 체 제 자랑일랑 하지를 마라,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군소릴랑 하지도 말라. 조심조심 일러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 하라. 그렇게 해야 사는 것이 평안하단다."이다. 잔소리 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간섭과 잔소리를 가장 싫어한단다. 그래서 세태를 반영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을 마치고 나오면서 나서지 않기로 작정했는데도, 공식, 비공식 모임에서는 봉사하는 직책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뭇가지는 가만히 있고 싶어 하지만 바람이 부는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지금 또 그 부질없는 잔소리를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사고는 변증법적 비약을 거듭하면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기에 한마디 거들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어떻게 하면 사람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부탁치게 되는 것이 자연적 이치가 아닐까 생각한다.

   공자는 2500여년 전에 천하를 주유하면서 사람이 바르게 사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여러 왕들에게는 국가를 잘 다스리는 법도를 설파하였다.
  가르침의 역사가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아직 나는 그러한 배움이 부족하여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한다. 아마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사는 법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가정에서는 가치관의 토대를 정립시키기 위해 가훈을 두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급진적인 교류의 증대와 여행의 확대로 인해 인간의 진화속도마저 촉진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언어와 두뇌와 육체의 진화는 이동과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치관 또한 다양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렇지만 진리는 하나로 통하는 법 또한 사실이 아닐까?

  공자께서는"만물의 근원은 하늘(天)이고, 인仁은 사람다움이며, 모든 덕德의 총칭"이라고 하였다. 같은 시대의 성인이며 서양철학 창시의 대표적 철인 중의 한분인 소크라테스는 사람다운 삶에 대해 "연혼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의 정신을 훌륭하게 하며 지혜를 사랑하고 자신과 남을 검토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임을 역설하였다. 그래서 그는 깨끗한 영혼을 지키기위해 사형집행을 모면할 수 있는 길이 있었는데도 사약을 스스로 받아들었다. 영혼과 육체가 분화되어 있다는 이원론에 대한 이론이 이시대, 즉 기원전 5세기 이래 희랍시대부터 유래하고 있다고 하니, 영혼을 쌀찌개 사는 것이 잘 사는 방법 중의 하나라는 사실이 이토록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전방에 가서 소대장을 맡았을 때 일이다. 정훈교육시간에 중대원들에게 '사람이 사는 법(이치)'에 대한 강의를 '용감하게'한 일이 있다. '여러분들은 한사람 한사람이 이세상 전체 인류중에서 유일한 귀중한 존재이다. 하느님(神)이 이세상에 여러분들을 보낸 그 뜻을 찾아 그길을 따라 최선을 다해 매진한다면 가장 성공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 틀림 없을 것이다'라고 제법 자신있게 말하고 했다. 그러던 내가 왜 이제 와서 다시금 젊은 시절에 고민했던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일까?

   2006년 세계보건기구(WHO)발표에 의하면 한국인 평균수명은 77세(여성80세 남성73세)라고 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봤을 때 30세 전까지는 사회 진출을 위한 준비기간이고, 이후 30년간이 자기 생업을 위한 기간이며, 잔여 20여년간이 대체적으로 인생의 마무리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20여년은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 기간을 인생의 황금기라고도 한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대부분 가을에 열매를 맺는다. 운동경기에서도 끝이 좋은면 그 과정이 좋았다고 한다. 마무리 가간을 어떻게 보내느야에 따라 전체 삶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포상할 수 있기 때문에 고민의 시간을 잠시 가져 보는 것 또한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청년시절 객지로 나갈때면 나는 언제나 사립문 밖에서 눈시울을 붉히시며 전송해주시던 조부모님. 고향을 생각할 때면 나는 언제나 그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그 눈물의 의미를 나는 깊이 있게 헤아리지 못했다. 다만 연세탓이라고만 치부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가족 간의 사랑(愛)과 믿음(信) 의리(義)의 표현이었다는 것을 이제 내 스스로가 가족을 외지로 보내면서 맛보게 됨으로써 깨닫게 되었다.

   만남과 헤어짐은 인간생활에서의 원초적 연속 순환의 섭리이다. 가장 크고 위대한 만남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고, 가장 큰 헤어짐은 만남의 종료를 말한다. 만남과 헤어짐을 소중히 하는 삶이야 말로 가장 가치있는 삶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만나면서 인간생활이 시작되고, 그생활의 토대는 愛 信 義에 뿌리를 박고 있으며, 사람됨의 표현은 의로운 삶과 결합되어 있고, 이것은 인간의 시회생활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를 벗어나서 생활하기 어렵다. 그래서 알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말했다. "군자는 모든 일을 義에 입각해서 이해하고 소인은 사리사욕에 입각해서 이해 한다"고 했다.  유물론적 후천적 사고에 따르면 물질적 도대(환경)가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시대는 세계적 교류를통해 인간생활의 양태가 가장 편리한 쪽으로 바뀌어져 가고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환경이 변화하고 사는 방법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사람이 살아가는 본질은 바뀔 수 없다.

  인간의 본질적 행위는 순수이성의 판단에 때른 양심행위이며, 이양심행위야알로 가장 사람됨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인류를 위해 33세의 나이로 심자가에 못박혔었지만 영생하고 계신다. 부처님께서는 "生과 死는 하나"라고 말씀하셨으니 죽음이 자기 소멸을 의미하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도 질량불면의 법칙이 있지 않은가.

   지구의 연령이 약45억년이고 지구상에 생명체가 존재하게 된 것이 35~40억 년전이라고 한다. 인류역사에서 원시인간이 최소 50만년 전에 나타나서 진화를 거듭하여 현생 인류가 나타난 것이 불과 약5만년 전이라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원래 없는 것에서 왔다가, 없는 곳으로 개체가 돌아가니 노자가 말하는 무라는 말이 실감난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空이다"라고 하셨으니, 있는 것도 아니고 찬(滿)것 또한 아니다. 긍정도 부정도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종국에 가서는 모든 것은 영혼 속에 양심이 잠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모든 사물은 뿌리로 돌아간다' 했다. 영겁의 세계에서 나의 삶이 비록 잠시일 뿐이지만, 튼튼한 뿌리의 한가닥을 만들기 위해 저울로 잴 수 없는 정신적 사고의 질량을 최대치로 높이기 위해 최선의 다하는 삶이야말로 또한 가치가 있는 삶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팔자 약력> 국가공무원관리관(1급)퇴직, 현재(재)극동문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고려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