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고향 지킴이
이제 내 나이 회갑을 넘기고 보니 세월이 유수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어, 그간 내가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된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 후 농촌에서 줄곧 살다보니 농촌 지킴이, 고향 지킴이가 되었다. 요즘 농촌 젊은 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감에 따라 농촌이 점차 노령화됨으로서 앞으로 우리나라의 농촌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야기되고 있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농촌을 기피하고 도시로 나가기를 선호하는 이유는 농촌 생활이 장래성과 희망이 없다고 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젊은이들의 농촌 기피 풍조는 6.25전쟁 이후부터 줄곧 계속되어왓다고 하겠으나, 근간에 와서 더욱 가속도가 붙게 된 것은 농촌에서는 결혼 상대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하겠다. 내가 사는 마을도 해방될 당시에는 약 40호 되던 것이 그 후 귀환 동포들이 돌아와 한때 50호 이상으로 늘었은데, 그 후 점차 줄어들어 현재는 20호도 채 안되는 열학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우리 부락에도 총각이 결혼 상대자가 없어 부득이 동남아 지역에서 짝을 구해 온 사람이 두집이나 생기게 되었다.
지난날 나도 20대 후반에 한때 도회지 생활을 하고 싶어서 종형이 사는 부산에서 직장을 구해 월급쟁이 생활을 해본 적이 있었다. 농촌에 처박히어 사는 것이 뒤떨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고 도시에 가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싶은 욕심에서 가본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도시에 가서 작장 생활을 해 보니 자유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였다. 농촌 생활은 비록 고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동안 노력하여 수확을 해 놓고 나면, 한가하게 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도 있고, 나만이 누릴수 있는 자유 시간도 있는데, 도시의 작장 생활은 늘 몸이 매인 가운데 지내야 하니 그것이 결코 농촌 생활보다 편안한 것도 화려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기술이라도 있었으면 거기에 재미와 장래 희망을 걸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그런 형편도 아니고 보니 낙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럴바에야 차라리 농촌으로 돌아가 내 농사를 내 뜻대로 짓는 것이 났겠다는 생각이 들어 몇 개월 후에 귀향하여 농촌에 정을 붙이게 되었다.
농촌생활과 도시생활에는 각각 장단점이 있겠지만,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내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속담에 "바람도 올바람이 낫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나는 일찍 도시 생활의 경험을 해 봄으로써 도시생활이 결코 겉보기처럼 화려하고 수월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와 내 농사를 내가 열심히 짓겠다는 결심을 하고 살았기에 그래도 끝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가지 고마운 것은 그동안 3남 1녀의 자식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고학을 하다시피 하면서 학교를 잘 마치고 제대로 일자리를 찾았으며, 결혼도 하여 제각기 독립 가정을 이루어 준 일이다.
오늘날 농촌 생활이 비록 어렵고 고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부의 농촌경제부흥에 대한 배려로 많이 변화되고 삶의 질도 향상되고 있다. 물론 기존의 벼농사에만 매달리는 농업은 이제 물건너 간지가 오래며, 시설하우스 농작물을 재배하여 열심히 노력하면 연간 소득 이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도 있으미 도시에서의 시원찮은 월급쟁이 생활보다는 낫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컴퓨터, TV 등 각종 전자제품의 보급과 적절한 문화생활도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여유도 조성되어 있어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니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요즘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도 농촌으로 들어가 사명감을 갖고 축산업이나 특수 농작물 재배에서 성공한 이가 많이 있다고 하고, 또 직장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농촌에서 자연과 더불어 여생을 즐기려는 이도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농촌 생활에서 또 하나의 보람을 느끼는 것은 선조의 선산을 돌보며 지낸다는 것이다. 선조가 있었기에 내가 태어났으며, 또 후손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우리의 뿌리인 선대의 묘소와 재실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은 보람이 있는 일이라 생각되며, 이 세상 떠나는 그날까지 나는 지킴이 노릇을 마다않고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