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뿌리 가꾸어야 가지 무성하리

   오늘은 음력 10월 초하루, 우리 합천이씨 시조 강양군 묘사날이다. 금년에는 부산 종친회에서 제수를 차리기로 되었기에 책임도 있고, 따라서 참여 제관 수도 많았다. 어제 이미 합천 화수회원들과의 사전 준비를 위해 제1진이 봉고차에 합승해 출발하였으며, 오늘도 봉고차 한 대가 모자라 개인 승용차를 보태어 20명이 함께 아침 7시 정각에 영광도서 앞에서 출발하였다.

   묘사철인지라, 약간 교통체증이 있었으나, 이내 곧 풀리었다. 단풍이 한창인 경관 속을 누비면서 3시간 가까이 달려 10시전에 묘소에 당도 하엿다. 서울, 충청, 전라도 등 전국에서 모여든 약 300명여명의 제관들이 침례하였다. 두리마기, 유건 등 제복 차람을 갖춘 제관은 5명에 하나정도이고, 마머지는 양복 차람으로 참석했다.

   위쪽의 시조 할아버지 묘소와 아래쪽의 할머니(군부인)묘소를 각각 둘러싸고 서서 마이크를 잡은 집례의 낭랑한 구령에 따라 진행에 되었다. 약 한시간 반이 소요되었으며, 마치고서는 일족들이 끼리끼리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며 음복하는 시간도 뜻이 있었다.

  대체 묘사는 무엇 때문에 지내는 것일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선조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할 때, 선조는 얼마나 고마우신 존재인가? 나는 이날 선조의 영혼 앞에서 나를 있게 해 주신데 대해 먼저 감사드리고, 조상님께 부끄럼 없는 후손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 저승에서의 조상님의 명복을 빌면서 제물을 차려놓고 의식을 올리는 자리에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였다. 아마 동참한 일족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오늘날 급격한 시대 변천으로 물질만능의 푼조에 밀려 정신문화가 경시됨으로써 도덕성이 하물어지고 있어 우려의 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효사상은 인도 시성 타고르도 "유규한 영사와 전통을 지닌 대 가족제도와 효정신의 실천국인 코리어가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미풍이었는데, 효사상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니 아타까운 일이다.

 유교에서의 삼강오륜에는 물론 현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면이 없지는않다. 그러나 君臣有義란 한 덕목만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자지간에 친함이 있어야[父子有親]하고 부부간에 구별이 있어야[夫婦有別] 하며, 어른과 아이사이에 질서가 있어야[長幼有序]하고 벗과 벗은 믿음이 있어야[朋友有信]한다는, 제 항목은 그대로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사람의 도리가 아닌가?

  세상에 부모없는 자식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진대,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섬기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도리다. 그렇다면 그 부모를 낳아준 조부모 또한 나의 뿌리가 아닌가? 나무에 뿌리가 있어 줄기와 잎이 돋아나듯이, 사람에게도 선조란 뿌리가 있었기에 자손된 우리가 태어난 것이라면, 우리는 곧 가지요 잎이 아닌가? 따라서 조상 섬기고 제사 지내는 것은 追孝로서, 부모를 섬기는 효 정신에 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묘사에 참여한 젊은 일족들에게 "나무의 뿌리를 가꾸면 줄기가 튼튼해지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듯,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선조에게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면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이치가 아닌가?"하고 "앞으로 우리는 자기 부모 모시기와 선조 제사 지내기를 동일시하고 정성을 다햐 지내자"고 하였는데, 이것이 일족들에게 얼마나 먹혀 들어갈는지?

  최근에 와서 그나마 우리 사회에 각 문중마다 묘사를 정신들여 지내는 풍습이 되살아나고 잇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라 생각된다. 논어에 '효행은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효자 중에 빗나간 인간 없다'는 말도 있다. 뿌리를 가꾸어야 가지 무성해지리.
  이날 나는 시조 묘사에 참례하고 나니 즐겁고 흐문하고 보람도 느껴, 행복감에 젖어있었기에 나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내년에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