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안시사(新安 時祀)에 참례하고
죽각12세손 이병수
오늘은 우리문중의 큰 시사인 신안 시향 날이다. 하루 앞날에 와서 생비량면 실매동 종제집에서 자고, 일찍 원지로 와서 신안리 묘지 입구에 당도하였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여 손이 시려서 가져온 흰장갑을 끼고 산으로 올랐다.
함양, 하동, 진주 등지에서 온 일족들이 몇 사람씩 모여 들었다. 제물을 차리기로 작정돼 있는 분들이 준비된 제물을 가지고 와 묘소 앞까지 들어다 인계를 해 준다. 10시반쯤부터 제사를 시작하였는데 각처에서 모여든 제관은 약60명 정도였다.
맨처음 강양군 15세인 참봉 承文공의 묘소 앞에 둘러 서서 제사를 모시었다. 병갑 종손이 언제나 초헌관으로 첫잔을 올리게 되는데, 제관의 분의 1쯤은 제복을 준비해 와서 입고 지내며, 절반 이상은 그냥 양복을 입은채로 지낸다. 그 중에는 그래도 유건만은 쓰고 지내는 이가 있으니, 이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마무래야 할 것인지, 그나마 조금은 성의가 있다고 해야 할런지.
다음에 강양군 청향당 할아버지에 이어, 참봉 잠자 할아버지, 그리고 22세인 죽각 광우 할아버지 순으로 차례로 내려가면서 시제를 모시고는 다시 한자리에 모여서 제사에 써던 술과 떡, 음식을 모아 함게 음복을 하면서 환담도 하고, 문중회의를 갖기도 하였다. 문중회의 때에 흔히 거론되는 이야기가 시사날짜를 일요일로 바꾸어서 지내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좀체로 합의가 잘 안되고 인ㅆ는 실정이다. 합의가 안되는 것은 시사 지내는 곳이 여러군데이기 때문에 의견 모우기가 힘드는데 있는 것 같다.
시사(제)는 원래 유교에서 父, 祖, 曾祖, 高祖까지는 집에서 제사를 모시고, 5대조 이상은 묘소에서 지내기로 된 풍습인 바, 時祀 또는 묘사, 묘제라고도 불려운다. 그런데 30년 전 제례 간소화 바람이 불어 '가정의례 준칙'이 생겨 제사는 조부모까지만 지내기로 정해집에 따라 증조, 고조도 시사를 지내는 문중이 생겨났다.
우리가 제사는 무엇 때문에 지내는 것일까하는 것을생각해 보고 싶어진다. 만약에 나의 선조가 없었더라면, 내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는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선조는 얼마나 고마우신 존재인가. 나는 이날 선조의 영혼 앞에서 나를 있게 해 주신데 대해 먼저 감사를 드리며, 조상님에게 부끄럼없는 후손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저승에서 조상님의 명복을 빌면서 소찬을 차려놓고 의식을 올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절을 하였다. 그리고 일족들에게도 그런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주었으면 하는 소망도 가져 보았다.
오늘날 금격한 시대 변천으로 물질만능의 풍조에 밀려 정신문화가 경시됨으로써, 도덕성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효(孝)사상은 인도 詩聖타고르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대가족제도와 효정신의 실천국인 코리어가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리라."고 할 만큼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미풍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점점 스러져가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유교에서의 삼강오륜에는 물론 현시대 상황에 맞지 않는 면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군신유의란 한 덕목만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자간에 친함이 있어야하고 부부간에 구별이 있어야하며, 어른과 아이 사이에 질서가 있어야 한다는 제 항복은 그대로 오늘날에도 통용될 수 있는 사람의 도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세상에 부모 없는 자식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진대, 자식이 부모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섬겨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가 아니가. 그렇다면 그 부모를 낳아준 조부모 또한 나의 뿌리가 아닌가. 나무에 뿌리가 있어 줄기와 잎이 돋아나듯이, 사람에게도 선조란 뿌리리가 있었기에 자손된 우리가 태어난 것이라면, 우리는 곧 가지요 잎이 아닌가. 따라서 조상 섬기고 제사지내는 것은 부모를 섬기는 효정신에 통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시사에 참례한 일족들에게 "나무의 뿌리를 가꾸면 줄기가 튼튼해지고 가지와 잎이 무성해지듯, 사람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선조에게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면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런 이치가 아닌가."하고 "앞으로 우리는 자기 '부모 모시기'와 '선조제사 지내기'에 정성을 다해 나가자"고 하였는데, 이것이 젊은 일족들에게 얼마나 먹혀 들어 갔는지는 알 수 없다.
최근에 와서 우리 사회에서 각문중마다에 시사(묘사)를 지내는 품습이 점차 살아나고 있음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다만, 산소(묘)에까지 직접 가지 않고 묘소가 너무 먼곳은 재실에서 지내고, 또 흩어져 있는 각묘소의 영혼을 하루에 모아 재실에다 초혼하여 차례로 지내는 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시대 상황에 적응하려는 현대화 조치라는 생각도 든다. 믄제는 조상 섬기는 숭조정신에 있다고 할 것인즉, 낡은 형식에 얽매이기 보다는 정성을 더 소중시하여야 할 것으로 믿어진다.
논어에'효행은 모든 행동의 근원이딘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효자 중에 빗나간 인간없다'는 말도 있다. 나는 이 날 시사에 참례하고 나니 흐뭇하고 보람도 느끼고, 행복감에 젖어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어쩐지 가벼웠다.(수필가 전부산개금고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