培山儒會致闕里行公府書

敬啓者敝會之刱設培山書堂也不囿於尊賢親親之閑而窃寓獨尊敎祖之義以迎請

聖象事曾己仰稟于

貴邸而緣伊時模畵甚難敝處事役未完未得遂志而歸爾來 文廟己成設備漸完故更波李君炳憲再伸奉 像歸東之意伏乞 閤下念此情勢圖眞像交李君俾遂積年慕仰之忱耳且敝會區區之意實非形迹上講求也將欲圖 眞像而發念講眞經而講眞理撥去二千年虛僞之習而酬酢今日世界之大勢矣自餘所陳留在之李君口述敬頌

公府一體大安   癸亥正月十九日 李忠鎬 等


배산 유회에서 궐리 연성공에게 보내는 편지

경계자 폐회가 배산서당을 창설함은 존현과 친친하는 법위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감이니 교조를 독특하게 높이는 대의를 부쳐서 聖像을 영청한 일은 일찍 귀저에 앙품했으되 이때에 화상을 그리기가 심히 어려웠고 폐처의 사역이 미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 왔드니 그래에 문모를 이미 이루어 설비가 점점 완전한고로 다시 이군 炳憲을 파견하여 성상을 모기고 동방으로 돌아올 뜻을 재신하오니 복걸합하는 이러한 정세를 생각하시와 진상을 그려서 이군에게 교부하여 적년간의 모앙하던 정성을 이루게 하소서. 또 폐회의 구구한 뜻이 실로 형적상에만 강구하지 않고 장차 진상에서 발하여 진경을 강마하고 진리를 강논하여 이천년 허위의 습관을 빼어 버리고 금일 세계의 대세를 수작하고져 합니다. 나머지 진달할 바는 머물은 이군의 구술에 두옵고  공부 일체 대안하심을 경송합니다.

계해 정월 십구일 이충호 등


致康公書

南海先生鑒數年以前培山書堂刱設事嘗巳仰干于先生獲承扁額之心晝及平日手著三種經說奉琓 尊閣又得今文眞理之書目始悟從前二千年豊蔀之故謹因李君子明敢請今文經之公布而繼陳敝會區區之意窃謂二千年懷居偏安尊君專制之習決非 至聖先師之本旨而世人之以此欲勤成 先師之罪 者不亦過乎今奉 名敎可作米途之指南然東方儒道之近例徒知尊祖而知尊賢之義者幾希烏可望其能知尊 敎之大義乎今夫培山儒會之始刱也初亦因李門親親之擧而顧念國粹所在以寓尙賢之情斟酌世界大勢以闡敎之義其進行節度則依然若循春秋三世之軌途而入也語短意長惟糞與李君從長計議 俯賜便宜之方焉餘只祝海天萬里

自愛自重            癸亥正月十九日


    강공에게 보내는 편지

남해선생은 조감하소서 수년전에 배산서당의 창설하는 일로써 선생에게 앙간하여 액자의 심혁과 및 평일에 저작한 삼종경설을 얻어서 존각에 봉완하옵고 또 금문 진리의 서목(書目)을 얻어서 비로소 종전 이천년 풍부(豊篰)1)의 연고를 깨달았습니다. 삼가 이군 자명으로 하여금 今文經의 공포를 감히 청하옵고 계속하여 폐회 구구한 뜻을 진달합니다. 가만히 말하건데 이천년동안 편안한데 거주하는 것을 생각하고 인군의 전제를 찬양하는 습관이 결단코 至聖先師의 본래 뜻이 아니로되 이것으로써 세상 사람들 선사에 죄를 이루고져 하는자는 또한 지나친 것이 아닌가. 이제 명교를 받드니 가히 어두운 길에 지남2)을 만낫나이다. 그러나 동방 유도의 근례가 한갗 조상만 높일줄 알고 존현하는 대의를 아는자는 거의 드무니 어찌 능히 종교의 대의를 안다고 하리오. 지금 배산 유회를 창설할적에 또한 李門 親親의 거사로 인해서 國粹가 있는 곳을 생각하여 상현하는 정을 부치고 세계 대세를 침작하여써 존교의 대의를 천명하며 그 진행하는 절도는 의연이 春秋3)삼세의 괴도를 따라서 출입할 것입니다. 말은 짧고 뜻은 기니 오직 이군으로 더불어 길게 의논하여 굽어 편리한 방법을 주시기 바라옵고 나머지는 다만 해천 만리에 자애 자중하시기 앙축합니다.

           계해 정월 십구일

 

1)豊篰는 豐卦 九四爻의 효사인데 부당하고 부중 부정하다는 뜻임

2)指南은 文王이 만드신 지남이거니 남북을 가리키는 나침펀이다.

3)春秋는 공자가 저술하신 노나라역사 이름이니 역사에는 춘하추동 사시는 모두 쓰는 것이니 사시를 준말로 춘추라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