培山書堂儒會設立趣旨書

惟我培山卽淸香堂及松堂竹閣三先生生長之地而退溪南冥兩先生咳唾所留之天也今者狙豆虔奉之議出於吾林固有之天而追遠極本乃有尊聖衛敎之論然世之論者謂培山書堂乃李門一家事也惑云兩先正不當與享或云先聖不當擅奉若究其實際而言則誠有所大不然者推尊祖之心而尊賢則其心漸公推尊賢之心而尊聖則其心公而漸大矣况奉先聖之眞像求 先聖之眞經以致眞尊 先聖之心特設文廟而復古儀以寓獨尊敎祖之意則實今日當行之急務而不刊之定論也至於退隱南冥兩夫子則爲門百世之師而東方之衣儒冠儒者所共尊也李門香松竹三先生之師友淵源於兩夫子與之躋享以普通公議而言則未필必不持難然兩夫子之遺躅必在培山祠廟之設又在培山且據中朝故事則程朱諸賢之立祠于各地也必以當地門人及有望者配之惟雙峰書院則用賢幷享例而楊龜山爲首廖剛次之朱文公次之考之典禮可據如彼叅諸事態勢又難已此實一時不易之正義也若中古校院之設則必以朝命爲重然今則民權漸盛敎堂之設專自敎中辨理况藉闕里公府之屬意辦 先聖之敎堂者乎今夫循李門親親之序而致吾林尊賢之義因吾林尊賢之義而發現世尊敎之念譬如舟行者溪澤而達江河自江河而放諸海也於以障狂瀾於東川存舊國之眞粹行將與滿天下仁志士以保斯文之陽脈則吾黨幸甚斯世幸甚


배산서당 유회 설립 취지서

유아 배산은 즉 청향당 및 송당 죽각 삼선생의 생장하신 곳이고 퇴계와 남명 양선생의 咳唾가 머무른 하늘이라. 지금 when 근봉하는 의논이 오림이 고유의 천성에서 나왔고 追遠1)하는 지극한 근본이라. 이에 존성 유ㅣ교하는 의논이 있으나 세상의 의논하는 자들이 말하되 배산 서당은 이 씨 문중 한 집안의 일이라 하고 혹자는 양 선정을 연향함이 부당하다하고 혹자는 선성을 마음다로 봉향하는 것이 부당하다하니 그 실제를 연구하여 말하면 진실로 크게 그렇지 않는 것이다. 조상을 추존하는 마음을 미루어서 현인을 추존하면 그 마음이 점점 공평하고 현인을 추존하는 마음을 미루어 성인을 추존하면 그 마음의 공평함이 점점 크거든 하물며 선성의 진상을 받들고 선성의 眞經을 구하여 선성을 참으로 추존하는 마음을 다하고 특별이 문모를 설립하여 예전 의례를 회복하여 홀로 敎祖를 추존하는 뜻을 부치면 실로 금일에 당행할 급무이고 깍지 못할 定論입니다. 퇴계 남명 양 부자에 이르러서는 유문에 백세의 스승이 되어서 아동방 선비들이 다같이 추존하는 바요 이씨 문중 청향 송당 죽각 삼 선생이 두 부자에 사우하고 연원이되니 같이 입향함을 보통 공의로써 말하면 반드시 어려운 것을 가지지 아니하지 못하나 그러나 양부자의 유촉이 반드시 배산에 있고 사당의 설립이 또 배산에 있으며 또 중국 고사를 의거하면 정자 주자 제현의 사당을 각지에 세우면 반드시 당지 문인과 및 유망한 자로써 배향하니 오직 쌍봉서원은 현인을 병향하는 줄례를 써서 양귀산이 수반이 되고 廖剛이 다음이고 朱文公이 다음이요 廖子晦가 다음된지라 전례를 참고하면 가히 증거 할 것이 저와 같고 여러 가지 사태에 참여해도 형세가 또 아니하기 어려우니 이것이 실로 한때의 바꾸지 못할 정의입니다. 중고에 교원을 설립한 것은 반드시 조정의 명령으로써 소중함을 삼았으나 그러나 지금인즉 민권이 점점 성하여 교당의 설립을 오로지 교중으로부터 판리하거든 하물며 권리공부의 촉탁하는 뜻을 병자하여 선생의 교당을 짓는 것일 진저 지금 이 씨 문중 친친하는 질서를 따라 우리 유림의 존현하는 대의를 다하고 유림의 존현하는 대의에 인하여 현대 존교하는 생각을 발명하면 비유컨대 배를 행하는자가 시내와 못을 따라 강과 하수에 도달하고 강과 하수로부터 바다에 도착하는 것과 같으니 여기서 어지러운 물결을 동천에 막고 옛 나라의 진수를 보존해서 장차 만천하 인인과 지사로 더불어 사문의 양맥을 보존하면 오당이 다행하고 세상이 다행합니다.

1)追遠은 선조와 선현을 추모하는 것인데 논어 증자 말씀에 愼終追遠이면 民德歸厚라 한데서 너온 문자임


進行事目

一. 勿論敎會與學會其成立也必順應乎大勢不違反乎法律然後能定完全之基礎夫儒敎之本在忠孝而聖人之語忠孝也有淺深大小之別溝瀆之諒婦寺之淺者小者商之比干爲百姓而諫死則聖人稱其忠而躋于仁始知爲君主而忠者忠之淺而小者也爲國民而忠者忠之深而大者也聖人有云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毀傷又曰父母在立不身遠遊遊必有揚方名此屬之淺以小者聖人有云殺身成仁又曰立身揚名以顯父母孝之終也此屬孝之深而大者也顧現世儒者狃於淺小之忠孝暗沮遊學之美風進抗世界之大勢今日靑年懲於淺小之忠孝誤解 先聖之本意打破倫常之眞理本會發起之主旨則欲調劑乎兩間順應今日之大勢不違敎育家法律以立宗敎之標本者也

一. 今日儒門切急之務在必得 先聖之眞意故如奉先聖必奉 先聖之眞像如讀聖經必讀 先聖之眞經將與江湖諸君子另當討議乎實際而先聖之微言大義與今日世界大勢相左右而逢原則不得不爲江湖諸位先寄一語也幸僉君子之留意焉

一. 現今自李氏門中先埍幾萬金巨欵幾千坪址外內(外指尼山內指陶山德山)之策應見己完定堂宇止肯搆見己突兀嗣後經紀之方針則惟文廟也祠宇也二座屋子必當經始以後進行節度可無礎也古今己選定人員爲保合修契之擧伏愉江湖 僉君子念此事狀隨意助力以敦大事則此實斯文之幸而其於文廟與祠宇兩大建築也及其維持之方如有擔夯其一功之費者則當自本所派定人員講究褒獎之方使內外國人知東方有衛道扶敎之名士矣幸 僉君子之留意焉

                  二千四百七十二年辛酉九月  日

培山書堂儒會發起人

    進士 河載華  晉州 幼學 金在洵  丹城 柳建佑  安東 權相瓚  丹城 李韶久  慶州 李忠鎬  禮安 曺庸相  趙顯珪  晉州 盧普鉉  咸陽 李炳元 權秉鐸 李炳瑢 丹城 等


   부

   진행 사목

교회와 학회를 물론하고 그 성립은 반드시 대세를 순응하여 법률을 위반치 아니한 연후에 능히 완전한 기초를 정하나니 대개 유교의 근본은 忠孝에 있나니 성인이 충효를 말씀함에 천심과 대소의 구별이 있으니 溝瀆1)에 빠져죽는 신실과 부인과 환시의 충성은 충성의 처소한 것이요 상나라의 比干2)은 백성을 위하여 간하여 죽어서 성인이 그 충성을 칭찬하여 인에 올리니 인군을 충성한 것은 충성의 얕고 작은 자요 국민을 위하여 충성한 자는 충성의 깊고 큰 것을 비로소 알았나이다. 성인이 말씀하되 신체와 발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헐고 상해하지 아니한다하고 또 말씀하되 부모가 계시거든 멀리 놀지 아니하고 놀면 반드시 방소를 둔다 하시니 이것은 효도의 얕고 작은자요 성인이 말씀하되 몸을 죽여서 이전 것을 이룬다 하시고 또 말씀하되 몸을 세우고 이름을 떨쳐서써 부모를 나타내는 것이 효도의 종점이라 하시니 이것은 효도의 깊고 큰 자이라. 돌아 보건데 현세에 선비가 얕고 작은 충효에 편안하여 遊學하는 美風을 막아서 세계의 대세를 거스려 항거하니 금일 청년의 淺小한 충효에 증습하여 선성의 본의를 오해하고 倫常의 진리를 타파하니 본회가 발기하는 주지는 두 가지를 조제하여 금일의 대세에 순응하며 교육과 법률을 어기지 않고 종교의 표본을 세울 것입니다.

금일 유문의 절급한 사무는 반드시 선성의 참뜻을 얻는데 있는 고로 선성을 받들면 반드시 선성의 진상을 받드러야 하고 만일 성경을 읽으면 반드시 선성의 진경을 읽어야 하나니 장차 강호 제군자로 더불어 힘써 실제를 토론할 것이요 선성의 작은 말씀과 큰 도의가 금일 세계 대세로 더불어 서로 좌우하고 逢原한즉 부득불 강호 제현을 위하여 먼저 한 말씀을 부치지 않을 수 없아오니 다행이 첨군자는 유의 하소서.

현금 이씨 문중으로부터 먼저 한 말씀을 부치지 않을 수 없아오니 다행이 첨군자는 유의 하소서. 현금 이씨 문중으로부터 먼저 한 말씀을 부치지 않을 수 없어오니 다행이 첨군자는 유의 하소서.
현금 이씨 문중으로부터 먼저 기만원 거금과 기천평 기지를 의연하고 밖과 안의(밖은 이산을 가리킴이요 안은 도산과 덕산을 가리킴)의 책응이 현재 벌서 완정 되었고 당우(堂宇)의 건축이 벌서 돌올하니 이 뒤의 경기할 방침은 오직 문모와 사당이니 이 두 짐을 경영한 뒤에 진행할 절도가 구애가 없을 것인 고로 지금 이미 인원을 선정하여 보합하여 수계할 일을 만들었어오니 복유 강호 첨군자는 이을 생각하시와 뜻을 따라 힘을 도와서 대사를 돈독케하시면 이것이 실상으로 사문의 다행이요 문모와 사당의 양대 건축 및 그 유지할 방법에 만일 일체의 비용을 부답할 자가 있으면 마땅히 본소로부터 인원을 파견하여 표창할 방법을 강구하며 내 외 국인으로 하여금 동방에 위도하고 부교하는 명사가 있음을 알릴 것이오니 다행이 첨군자는 유의하소서.

1)溝瀆之諒은 논어에서 나온 문자인데 소인들이 사리의 옳고 그름을 돌아보지 않고 인군을 위하여 죽는 것을 말함

2)比干은 상왕 紂의 아들임

     이천사백칠심이년 신유  구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