士林通山天齋文

右文爲通諭事伏惟我南冥老先生博約之工敬義之學上接洙泗旁達洛閩直可以爲百世師而東土之衣儒冠儒者孰無家尸而戶祝之念哉顧先王制禮春秋釋菜自有常所又遭挽近邦禁之會本院與列郡腏享之祠次第見撤俎享無虔奉之所士林失依仰之地倀倀然如窮人之無歸何幸敬義堂重建之議倡自有志殆至竣功依歸之常所己定培山尊奉之論發自彛衷如水注東必達其的而後已則鄙等敢不竭蹶從事奉以周旋哉第念培山者故鄕先輩淸香堂李先生及松堂竹閣兩先生長之地也老先生於香翁許爲四同之友而有擬我曾於鐘子期之句則兩先生交誼之篤無容更議且松堂竹閣嘗及老先生之門而竹閣先生之於老先生易簀時將命建院時殫誠無所不用其極則一門之師友原委不啻若朱先生於龍峯之二劉先生也且老先生之於退陶先生居同省而年同庚訂爲百年神交後學之尊仰若天之有南北兩極然在當日則有違面含恨之事於後世則無同堂合奉之擧此吾嶺三百年後學之所不能無憾者也謹據退陶先生遺集則所與淸香堂書爲十數暴而動問冥翁起止詩集則有曰三人初度有誰知先甲三年酉是期邈阻頭流與培養可無相憶遞傳詩退翁自題語曰南冥曺君楗仲溪香堂李君君浩與皆生於辛酉(止)次韻寄李君兼示南冥云盖用四同元不在新知之韻也有曰同庚霜雪滿頭吹共歲今方百九奇安得孟韓俱變化雲龍相逐不相離盖三先生於是年甲子爲六十四勢則共合爲一百九十有二其願如孟韓之爲雲爲龍相逐而不相離則三先生難捨之日也嗟乎冥退兩先生合奉之事實吾嶺百世之盛擧而培山爲兩先生杖屨之所香翁爲兩先生介紹之主則鄙等之設此擧也舍培山將何以哉所以鄙等已知會于陶山而謹摭前後事情奉告于僉君子伏乞僉君子諒此愚衷左提右挈共竣斯文之大役千萬幸甚
己未二月    日   丹城鄕校會中 直員 朴熙道  會員 幼學 李亮洙  參奉 金永采  幼學 權德容  都錫中  權相彬  金基堯  權相貞  金在洵  權宗賁  柳絢秀  參奉 李鎭東  幼學 沈機澤  李志松  朴悳和  李麟夏  鄭炳錫  權玖容  郭  濩  柳聲秀  權相政  金在植  鄭泰馨  進士  李鎭薰  幼學 權載東  李鳳洙 權秉淳  李志煥  李敎宇  權載浩  李敎冕  朴道和  李炳洪  等

사림이 산천재에 부내는 통문

우문을 통유하는 일은 복유 아 남명 노선생 박략(博約)1)의 공부와 경의(敬義)2)의 학문이 위로는 수사(洙泗)3)를 접촉하고 곁으로는 낙민(洛閩)4)에 통달하사 가히 백세의 스승이 되심에 동방의 선비의 의관을 입은자 누구가 집집이 모시고 호호이 축제할 생각이 없으리요. 생각건대 선왕이 예전을 만들어 춘추로 석채하는 것이 스스로 일전한 곳이 있드니 또 근래에 방금(邦禁)5)지회를 만나서 본원과 열군의 철향하든 사당이 차례로 훼철되어 근봉할 곳이 없어서 살마들이 추앙할 땅이 없어 창창하게 곤궁한 사람이 도라갈 곳이 없는 것 같더니 어찌 다행이 경의당을 중건할 의논을 유지(有志)들이 주장하여 거의 준공에 도달하니 의지하고 돌아갈 곳이 이미 결정 되었는지라 배산에 존봉할 의논은 이충(彛衷)으로부터 발단되어 물이 동쪽으로 흐름과 같으니 반드시 그 목적을 달성하고야 말 것이며 비등이 감히 종사에 궐기하여 주선하지 않이 하오릿가. 생각컨대 배산은 고향선배 청향당 이선생 및 송당 죽각 양선생의 생장히신 고장이라 노선생이 향옹에게 사동의 벗을 허락하여 일찍 종자기에 비교했다는 글귀가 있으니 양선생의 정의가 독실한 것은 다시 의논할 것도 없압고 또 송당과 죽각이 일찍 노선생의 문하에 다니셨고 죽각선생은 노선생이 역책6)하실떼에 유명을 받드럿고 서원을 세울 때에 정성을 다하여 어느 곳에 그 지극함을 다하지 않이함이 없아온즉 한 문중의 사우(師友)의 본말이 주 선생이 용봉의 두 유선생과 같을뿐만 아닙니다. 또 노선생이 퇴도선생에게 거주가 동성아요 나이가 동갑으로 백년의 신교가 되여서 후학의 존앙함이 하늘 남북 양 태극이 있는 것과 같나이다. 그러나 생전에는 낯을 어기여(相面치 못한 뜻) 한됨을 먹음은 일이 있고 후세에는 사당을 같이 하여 합봉하는 일이 없아오니 이것이 우리 영남 삼백년 후학들의 유감이 없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삼가 퇴도선생의 유집에 의거하면 청향당에게 주신 글이 수십폭이 되는데 움직이면 명옹의 안부를 물으시고 시집에 삼인 초도 유수지요 선갑 삼년 유시기라 막조 두류 여배양하니 가무 상억 체전시라는 글귀가 있고 퇴웅이 자기가 쓰신 말에 남명 조군 건중과 청향당 이군 군호가 나로 더불어 모두 신유년에 났다하시고 차운하여 이군에게 부치고 겸해 남명에게 보이라 한 것은 대개 사동 원불 재신지의 운을 쓴 것인데 말하되 동경 상설이 만두최하니 공세 금방 백구기라 안득 맹한 구변화하여 운룡 상축불상리라 하였으니 대개 삼선생이 이해 갑자에 육심 사세가 되어 합하면 일백 구십이세가 되니 그 소원이 맹한의 구름이 되고 용이 되어 서로 따르고 서로 떠나지 아니한즉 삼선생 놓기 어려운 정이 비록 백세라도 가히 잊지 못할지라. 그러므로 배산에 합향(合享)하자는 의논이 벌서 삼백오십육년 전 시를 부치는 날에 증조가 되였다 하겠습니다. 슬프다 남명과 퇴계 양선생의 합봉(合奉)하는 일은 실상 우리영남 백세의 성대한 일이요 배산은 양선생의 장구지소가 되고 향옹은 양선생을 소개하는 주인이 된 것인즉 비등이 이일을 거행하는 것을 배산을 버리고 장차 어디에 하리요. 소이로 비등이 이미 도산에 회의가 있음을 알고 삼가 전후의 사정을 모아서 첨군자에게 봉고하오니 복걸첨군자는 이 같은 정성을 알으시고 죄우로 이끌어서 같이 사문의 대사를 마치면 천만번 다행합니다.

1)博約은 논어 안연 문답에 博我以文 하시고  約我以禮의 준말이니 글을 널리 배워서 예문에 약속하라는말임
2)敬義는 주역 곤꽤의 계사에 敬以直內하고 義以方外라는 준말임
3)洙泗는 산동성 노나라 태산 밑에 있는 물이니 공자의 연원을 말함
4)洛
閩은 하남성 낙수와 복건성 민중을 말함 이는 程子와 朱子의 연원을 말함
5)邦禁은 이조 대원군의 서원철폐명령을 말함
6)易簀은 曾子에게 노나라 대부 季孫이 주는 대자리니 증자가 별세하실때 누어 계시던 이 대자리를 빼여내고 운명 하였기로 후세에 문인들이 선생의 별세함을 일러 역책이라고 한다.

기미 이월   일 단성 향교 회중 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