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香堂 先生 (李 源)

韓朝燕山君7年(明弘治14年)辛酉十日淸香堂李先生(源)生于培山(卽培養)里第據縣誌則曰李先生道德言行大爲一世所推與退溪南冥兩先生交誼甚篤云
按 中宗大王十六年辛巳春先生
徃宜春嘉禮村見退溪李先生是歲退溪先生聘于許氏家先生聘家亦在同里一見如舊竦然相敬回結爲同庚道義之交二十一年丙戌春退溪先生自宜春亦來訪先生于培山先生欣然奉唔回與謂討臨別以詩贈之自是互相往來麗澤之工甚多安先生與南冥曺先生同庚而志意相孚自弱年互相往來講討南冥先生嘗稱先生曰若人吾四同之友 中廟三十二年丁酉淸香精舍成三月南冥先生來訪仍題精舍八詠

청향당 선생(李 源)

한조 연산군4) 7년 (명나라 총치 13년 신유)5) 시월 초십일에 청향당 이선생 원(源)이 배산 즉 배양에서 출생하셨다. 현지를 상고하면 선생의 도덕과 언행이 크게 추앙함이 되어 퇴계와 남명 두 선행과 같이 친교를 정의가 매우 독실하다고했다.
안찰컨대 중종대왕 16년 신사년 봄에 선생이 의춘(宜春)
6) 가례촌에 가서 퇴계 이선생을 뵈오니 이해에 퇴계 선생이 허씨 집에 장가오니 처가가 역시 한 마을에 있었다. 한번 보고 친구와 같아서 서로 공경하고 인해 동경(同庚)7)도의(道義)의 친교를 맺었고 이십일년 병술년 봄에 퇴계 선생이 의춘으로부터 배산에 와서 선생을 찾으니 선생이 혼연히 영접하고 글을 강론하였으며 작별할 적에 시를 지어 주었으니 이로 부터 서로 왕래하며 이택(麗澤)8)하는 공부가 많았다.
안찰컨대 선생이 남명 조선생과 더부러 동경이고 뜻이 서로 맞아 젊어서부터 서로 왕래하며 그를 강논하니 남명 선생이 일찍 선생을 칭하되 이 선생은 나의 사동(四同)의 벗이라 하였다. 중종 삼십 이년 정유에 청향정사를 낙성했으니 삼월달에 남명선생이 와서보고 정자 팔경시를 지으셨다.

4)연산군은 이조 십대의 임군이다.
5)홍치(弘治)는 중국의 연호.
6)의춘은 의령의 고호이다.  
7)동경은 동갑의 별칭이다.
8)이택은 주역 태(兌)괘의 대상에서 나온 문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