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기말소청구의 전말

 

  1. 가처분신청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총무 종윤은 신탁된 종중선산을 본인 이름으로 이전등기하여 선산 관리자(정학래)에게 헐값으로 팔아 넘기려 하였다. 정학래는 오두재를 관리하는 십수년 동안 매년 20만원의 제례비를 총무에게 주었다고 했다. 또 <종현>도 매년 성묘비20만원을 주었나 종윤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고 총회에 보고도 하지 않았고 종중돈 300만원을 횡령하였다.

    종중의 시향제원인 위토 3필지를 <병태>의 자손들이 분할이전등기하였고, <병길>의 자 <동규>는 위토 임차료(제례비용, 년 금100원)을 가로채고 있다. 회장은 이들을 오랫동안 설득하여 화목을 바랬으나 종윤 종인 형제들과 동규가 담합하여 종중을 파산지경으로 몰아가고 있다. 회장은 부득이 이들의 과오를 중단 시키기 위해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이 처분에 수반된 등기말소청구를 했었다.

 

2. 등기말소청구가 각하 된 이유

   법원은 종중토지가 인정되나 총의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등기말소청구를 각하하였다. 총의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종윤 형제와 그의 사촌들이 동규와 담합을 하여 법정에서 하극상을 일으켜 소동을 벌인 행위를 녹취하여 위증을 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어디 종중재산을 찾아가 보라고 하면서 다른 일족들을 경멸하면서 화목운운하고 있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이들의 하극상이 저지른 무고, 횡령, 배임죄를 어떻게 처리했으면 좋을지 모든 종원은 정직하게 의사표현을 해주어야 한다.

 

3. 종중의 해결 과제

     나는 1983년 가을 정기총회 때부터 종중재산을 통합관리하는 책임을 맡기로 병철(백만)숙부의 제의를 가문의 원로들이 지지한 엄중한 권고를 받아들여 종중재산을 정리하고 종중이 직접관리할 수 있는 형식적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때까지 선산과 위토를 신탁관리해온 일족들이 요구한 적자를 제각선산의 절반을 팔아 천만원이 넘었던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정관이 제정되고 위토와 선산을 정리하여 봉안당을 설립하여 서부경남 일원에 산재한 청(강양군 21세)이하의 모든 선조의 묘소를 봉안당으로 이장하게 되었다.

     제각과 봉안당 보수관리와 시향제례를 존속하기 위해 소요 되는 경상비 3~4백여 만원의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유적이 없는 모든 종중재산을 매각하여 태양광발전시설을 하기로 총의를 얻어 결의가 되었었다. 아직도 위토 중에 구정에 두 필지 600여평과 남조와 학조 등이 종중돈을 횡령하여 제례를 치를 수 없게 되자  덕순 누님이 종엽의 집앞에 있는 논을 매입하여 종엽에게 신탁관리한 것 등 3필지가 더 있으나 아직까지 반환을 하지 않고 있다. <종중회장 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