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1 <제향귀진 기>
(종영 형제와 총회원에게 알리는 글)

    금년 시향에 35세손 종영·종태 형제와 36세손 인제·동제 형제가 십수년만에 참석했다. 종영·종태는 종중을 개혁하신 34세손 정규 씨의 자제고, 인제·동제는 35세손 종태 씨의 자제다. 부친을 닮은 종영을 보니 생전의 형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소종중재산이 통합관리하게된 내역과 종중이 아버지를 고소한 내력을 말해달라하였다.

   종영의 물음은 종중정관 및 시행규칙의 제정 연역이나 같다. 총회원이 함께 알아야 할 덕목이며 종중의 중요한 사료라 여겨 간추려 본다. 정규 형님은 퇴임 후 종중개혁을 주도 하셨다. 종중재산을 관리해 오시던 33세손 병철 숙부와 함께 산청, 횡천, 적량, 고전 등 서부경남에 산재한 종중재산 소재와 위탁관리자를 만나 추원당 건설 후 묘소의 이장과 선산 및 위토의 인수를 협의하였다.

  정간을 초안하고 각 가문 원로의 동의와 총회원의 찬동을 얻어 종중정관이 확정되었다. 시향을 모시는 선영의 묘소를 추원당에 이장 봉안함에 따라 소문중별로 선산을 관리할 일이 없어짐에따라 소문중재산이 모두 종중에 귀속되었다. 이를 기념하는 종중가첩을 발행(1999. 6.)하고 종중정관을 수록하였다.

   광범위한 종중정관의 내용을 분리하여 시행세칙(이사회규약, 종중재산관리규칙, 봉안당관리규칙)으로 만들어 원로들은 초대 회장에 33세손 병길을 지명하고 종중운영을 위임하였다. 초대 회장은 부회장에 34세손 정규를 지명하고 제향귀진 건설책임을 맡게하였다. 34세손 진원을 감사, 35세손 종윤을 총무로 지명하여 회장단을 구성하고 이사는 원로들이 맡기로 하였다.

   정규 형님은 제향귀진 건축허가가 취소되지 않도록 시공자를 선정하고 위탁관리자들이 선산을 인수해준 공사대금 절반의 재원으로 착공하여 준공을 마친 후 잔금을 지불하는 특약을 하였다. 나머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몫이 큰 소문중의 위토를 처분하자고 하였다. 회장 병길과 종엽은 생계난을 이유로 인수를 미루었고, 의문은 봉안당 건설을 반대하며 위토는 물론 소문중의 금융재산반환도 거부하였다.

   계약 시공자는 기초와 지붕까지 연결된 일체형의 철골조 거푸집을 세운 후 레미콘대금을 중도금 조로 요구하였다. 중도금800만 원을 지급해주자 제향귀진과 사무동의 콩크리트타설을 완료한후 시공자(민영철)는 공사를 계속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유는 종중총무(종윤)가 공사대금이 부족하면 요청을 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총무는 현장에서 자기가 해줄것처럼 이말을 자주했다는 것이다.

  중단한 공사는 다른 사람이 승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악용한 것이다. 정규형님은 공사를 계속하려면 처분이 쉬운 위토부터 처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자 병길 회장은 생계까지 어려움을 당하며 위토를 팔 수 없다고 하며 회장직을 사퇴하면서 34세손 형규에게 회장직을 위임하였다. 정규형님은 원양위토가 본인 명의이고 몫이 커 재원확보에 유리했기때문에 먼저 처분하려 했던 것이다.

  이마저 부족하면 강남 집을 팔아서라도 제향귀진을 완공하겠다고 하셨다. 공사를 승계할 새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라도 법원의 판결을 먼저 받아야 하기에 새 회장에게 소송을 해달라고 권유를 하였다. 형규 형님은 소송에 절대 관여하지 않겠다며 회장직 사임을 일방 선언하고 시향은 물론 종중 일에는 지금도 기피하고 있다.

    병길 숙부는 부득이 정규형님을 다시 회장으로 지명하시고 봉안당을 준공 해보라 하셨다. 회장직을 맡은 정규 형님도 본인 명의로 소송하기를 거절하시며 법대를 나와 사법행정에 밝은 진원이가 책임을 맡으라는 것이다. 회장의 위임을 받은 나와 총무의 이름으로 조정신청을 하게되었다. 조정이 정식재판으로 넘어가자 인건비와 레미콘 값을 중복요구하던 시공자가 거푸집을 철거해 가버렸다.

  등급이 낮은 묽은 시멘트로 시공하여 철골조가 들어난 부실공사가 완연했다. 법원은 현장을 확인하고 민영철과 동업자 서씨에게 각각 중도금800만원씩을 종중에 반환하고 본계약을 파기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민영철은 도망을 가고 동업자 서씨만 중도금800만원을 반환하였다. 그후 병윤 숙부가 출자금200만원과 노아의 출자금100만원, 적량선산 인수금450만원 등의 재원확보로 공사가 재개되었다.

   봉안당 석물공사가 완공되어갈 무렵 정규 회장은 강남 집을 팔아 천안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본인이 유용한 종중돈 일부를 돌려주시며 나머지 400여만원은 준공 전에 입금해 줄 것이라 하였다. 시공자는 준공 즉시 잔금을 주지 않으면 봉안당을 저당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정규회장은 만약 준공 전에 돈을 보내주지 않으면 지급명령을 보내라고 하였다.

   지급명령을 받은 형수님은 돈을 즉시 입금해 주었으나 법원명령은 진행이 되어 종화가 진주법원에 오게된 것이다. 제향귀진이 2004년 4월에 준공되고 기념식을 할 때에 정작 기쁨을 나누어야 할 정규 회장은 몸이 불편하여 참석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정규형님의 집념이 없었다면 합천이씨봉안당(제향귀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종중일을 하면서 느낀 정직한 징크스다. 종중재산을 탐하는 사람은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다. 동란 직후 종중이 파산했을 때도 그랬고, 문중 위토에말썽을 부린 일가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종중재산을 정직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나의 천수도 누리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든다.

     2016. 12.  12.

    합천이씨정언공파종중 대표

    회장  진   원  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