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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우」가 행복을 알게 했다
웅암 이 진 원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고마운 향우동문! 지난 10월 초순경, 뜻밖에 천안에 살고 있는 김동철 부부가 임재기와 함께, 혼자 기거하는 나의 집을 찾아 왔다. 「향우학원과 나」라는 자전엣세이를 인터넷에서 읽어 보고 많은 선물을 큰 승용차에 가득실고 찾아 온 것이다. 아마 6~7년 전에 부산에서 정수열 부부가 MBC 라디오 방송을 통 해, 무거운 한우갈비 한 상자를 들고, 평안동을 찾아 준 고마운 일도 있었다. 그때는 라디오 방송까지 들으며, 가족들 앞에서 우쭐 대며 기뻐한 일도 있었다. 이것이 아내가 검정고시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방송통신대학을 함께 다닌 계기도 되었다. 또 성기순 이란 향우동문이 나의 업소(서울광학)를 찾아와, 은사의 고마운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부산에 살고 있을 때, 버스 안에서 향우동문이라며, 두 아이를 데리고 앉아있던 좌석을 나에게 양보해 주는 부인이 있었으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 지난 10월 26일 오후 3시경에, 향우동문회장단 김 석과 황삼순의 초청장을 받고, 하동 송림공원으로 갔다. 김동철 부부와 향우동문(김석, 안기환, 김영준, 구삼용, 황삼순, 전숙자, 박일선)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남자향우는 童顔이 남아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향우의 얼굴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과팍스럽게도 그 때의 향우시절에도 여학생들은 출석부의 이름은 잘 챙겨 기억하면서도, 모두 같은 얼굴의 서양사람처럼 잘 구별되지가 않았다. 여학생을 지적하면서 다른 학생의 이름을 부를 때가 많았던 기억이 난다. 아름다운 섬진강의 노을을 바라보는 회식집에서, 점쟁이처럼 내가 좋아하는 선물을 한 아름 안겨주는 옛 친구들의 정직한 우정. 韓國敎育史 上, 어느 선생이 이처럼 행복한 노년을 알게 해 준 弟子를 가져봤는지 자만하며 묻는다. 향우! 해병대 복무시 배운 필경 솜씨로 만든 『향우』교지, 처음이자 마지막인 「창간호」를 동문회장이 전체를 향우동문 주소록과 함께 통째로 복사해 나누어 주었다. 나는 인터넷에 띄워, 모든 향우를 찾아 보자고 했다. 향우동문도 4050시대다. 인터넷을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김동철 부부처럼 자식들이 아름다운 부모님의 과거를 볼 것이다. 인생 황혼기에 되돌아 보는『향우』의 글. 이렇게 정직한 마음의 글을 문학잡지나 동인지에서도 보지 못할 것이다. 글이란 신이 믿어주는 정직한「邪無思」의 마음이라 한 것이 이곳에 있었다. 갈라진 뱀의 혀가 꾸민 현대문학의 미사려구 없는 정직한 글이다. 더러 빛 바래져, 2중의 돋보기로도 형체를 알 수 없는 글자가 많았다. 그렇지만, 그때의 정직한 염력으로 돌아가 내가 읽어가는 대로 문맥을 이었다. 이 글을 옮겨 쓰는 동안에도 가슴이 북바쳐 눈물지웠다. 나의 능력대로 <향우의 노래>도 연주하여, 악보의 배경음악으로 띄워서, 함께 합창하고, 협주하는 노년의 향우를 만들어 보고 싶다.
2011.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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