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지를 인터넷에 띄우며

 

 

  잊을 수 없는 향우의 벗들아!

  "눈 비바람 치던 밤을 산 넘고 물 건너……" 하면서 지내던 그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러 다들 백발이 성성해 버렸구나.

  향우 출신들이 향우지를 기억이나 하겠나 싶었는데……, 그래도 지난 날의 향우지를 그리워 하는 것을 볼 때, 그래 어딘가에 잘 모셔두었을 터인데…….

  찾아보자 나도 그동안 너무 무심하여 외면하였던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고, 알아주지 않던 보잘 것 없는 향우지 1963년 9월 벌써 46년.  책은 색갈이 바래서 만지기가 무섭게 바삭 바삭 부서지고, 그나마 뒷장 몇 장은 없어져 버리고, 그렇게 크게 보였던 글씨도 잘 보이지도 않고…….

  그당시 아주 최 하위 종이(갱지)로 인쇄된 향우지 글자를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희미해 졌지만, 벗들을 생각 하면서 복사기에 복사를 해본다.

  회장(김 석)이 재생을 한번 해 보겠다고 하기에, 큰 마음을 먹으면서 그 옛날이 생각난다. 인쇄소에 있을 때다. 웅보 선생이랑 동명이랑 나랑 석권이 넷이서 "우리 같이 배우지 못한 자들이 하동에 너무도 많은데, 많이 배운 사람들이 좀 가르쳐주면 안되요?" 하고 시작이 된 향우학원.

  그때 그 꼬막 손으로 썼던 향우동문들의 향우지를 보면서 "우리 향우의 벗들이 이렇게 머리 좋은 문학 소년 소녀 들이었던가!" 하면서 하나 하나 살펴보니 잊었던 친구들이 아렴푸시 떠오른다. 세상을 떠난 친구들도 그리워 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새러워 지면서, 웅보 선생님의 글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 향우는 아름 다운 것이다. 그대들 향우가 진실되게 자라나는 날 이고장 내 향토에 서광이 비칠 것이니, 꿈에라도 분투할 지어다. 진실 되게 자랄 지어다."라고 쓴 그 말.

  정말 향우가 있었기에 지역 사회에 큰 일꾼들이 생겼으며, 향우가 있었기에 대통령 앞에 나아가 교장의 임명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자식들 만큼은 자신들과 같은 인생길을 걷게 하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려 박사로 사업가로 직장인으로 모두들 다음 세대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을 돌아볼 줄 아는 자들이 된 것이다.

  그런 향우를 우리는 먼 옛날 추억으로 생각하며 잊고 살아 왔다.  향우의 벗들이여, 잊지 말자. 저 세상 갈 때 까지 잊지 말자.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벗들아 향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랑하여라.

                                     2009. 11. (좋은 날)

                                                                   김 영 준  동문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