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가난을 이웃한 나의 고학 시절

 

                                                       재건국민운동 하동군지부
                                                                 향토교육원    교 수   윤  한  채

 

   굴욕과 가난을 벗한 자기의 과거를 들춘다는 것은 불유쾌한 일이다. 그러나 향우 제군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찌 주저 할까부야.
  더욱이 제군들과 꼭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내라면…….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고학 시절의 추억들……그 토록 사랑을 주시던 어머님을 여이고 초등학교5학년 시절부터 혈혈단신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 고학의 길을 떠나야만 했던 것이다. 때로는 고아원에서 혹은 이름모를 처마밑에서 팔베개를 의지하여 잠을 첨함이 그 몇 번이었던고…….

  외로움과 슬픔이 뼈 속에 사모칠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리웠고 그럴 때마다 진달래며 할미꽃등 속을 따라가는 먼길을 걸어 어머님 산소를 찾던 일…….

   낡은 옷자락에 해멀쑥한 얼굴을 하고는 어머님 묘지에 엎디어 목놓아 울었던 일……. 이제는 한갖 추억에 지나지 않지만, 그럴 때마다 입술을 깨물고 훌륭하게 될 것을 스스로 다짐 하였던 것이다.

   아기자기한 부모님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주제에 그래도 꿈만은 오월 훈풍에 부풀어 오르는 푸라타나스처럼 지대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초등학교 5학년 시절부터 구두닦기, 신문배달, 하우스보이(HOUSE BOY), 사과장수, 간판사, 사진사, 제과공, 운전수, 통역, 푸린트공 등 각종직업에 전전하면서 대학과정을 마쳤던 것이다. 그간의 애로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격노한 투우와 번득이는 컬과의 대결이었다고나 할까…….

  억수로 쏟아지는 밤길을 야학으로부터 돌아오면서 옷을 적시던 일, 잠자는 시간을 절약하여 공부하겠다는 의도에서 새벽까지 공부하다가 잠이 올때는 졸음을 쫏기 위하여 식칼을 입에 물고 눈물짓던일들…….

   장차 훌륭하게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일일이식(一日二食), 그나마도 간장과 보리밥으로 쓸어져가는 두옥(斗屋)에서 눈물을 되씹고 고독을 벗하면서 한사코 공부에 전념하던 일들이 지금에도 영상처럼 떠오를 때는 나도 몰래 눈물이 앞을 가리곤 한다.

   쪼들리는 가난! 젊음에의 유혹! 엄습하여오는 졸음 이모두가 나를 괴롭히는 적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굽히지 않고 책상 맞은 벽에 "비굴한 삶보다 의지의 죽음을 택한다"는 좌우명을 손가락을 깨물어 형서를 써 붙이고는 북바쳐 오는 슬픔을 못참아 목놓아 울었던 것이다.

   지금도 조각달이 새벽 하늘을 수 놓아 갈 때면 나는 파노라마처럼 떠오르는 지난 날의 값진 보람을 새삼 느끼면서 책을 이웃하게 된다.

   "내일의 보다큰 이익을 위해 오늘을 탐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