壬辰(2012)時享 隨想

웅암 이진원    

   정직한 기록은 바른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향제 때마다 각자의 마음을 내 비치는 언행의 형상이 다르게 느껴진다. 문중의 책임을 맡은 회장의 정직한 소견은 상호 관념의 차이를 분별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 금년의 향제록을 생가나는 대로 쓴다.

 금년 제수(祭需)를 준비하는 하동(영규) 아우로부터 9시에 도착 하겠다는 전화가 왔다. 제수가 도착하기 전에 제단과 주변을 청결 정돈 한 후 추원당에 향제를 올리는 날임을 소고드려야 한다. 그리고 정결한 마음으로 제수를 맞는 영례를 행해야 한다. 운복을 받는 첫 통과 의례다. 내 혼자라도 영례를 드려야 하기에 4시반 모닝콜이 울리자 새벽 묵념후 식사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새벽 시동의 굉음이 몹시 크다. 자동차 디지털 시계가 6시 반이었다.

  추운 날씨라 엔진 소리도 내 목소리처럼 갈갈 그리며 크다. 엔진 소리가 좀 조용해 지자 천천히 나섰다. 시내 나동을 벗어나자 차창이 뿌옇게 빗방울로 덮인다. 와이퍼를 느린속도에 맛추고자동차 속도도 줄였다. 새벽녘의 4차선 산업도로가 어두운 밤처럼 좁아보였다. 종윤이 집에 도착하니 이제 기침을 하는 것 같았다. 음용수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고 나도 제각에 들러 세통의 물을 더 준비해 자동차에 실었다.

  철사를 사다 얽어매어 놓은 봉안당 출입문은 혼자 열기가 힘이 들었다. 빗줄기가 질척일 정도로 내린다. 오늘 시제는 봉안당 실내에서 올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대리석 바닥에 질펀하게 깔린 빗물은 제단과 주위를 깨끗이 청소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 시간여 동안 쓸고 닦으니 빗방울도 작아지고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안팍의 대리석 바닥이 윤기가 난다. 가는 비가 그치니 봉안당이 너무나 깨끗하게 느껴졌다.

   10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 제수가 도착했다. 비 때문에 늦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준비할 시간에 맞추어 알맞게 도착했다고 인사를 받았다. 마음속으로 혼자만의 영례를 드리며 제수를 공손하게 받았다. 종윤부부가 두 통의 음용수를 실고 도착했다. 좌실 벽쪽에 제단을 마련하고 우실은 제물을 관리하기로 했다. 각지에서 각 가문의 자손들이 모여들었다. 밖에서 제례를 올릴때보다 포근하고 운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제 삼제를 올릴때까지 대평가문의 자손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종희>의 부산 가문은 헌납위토의 소유권을 복권하려다가 거절당한 후부터 향제에 불참하고 있다. 어언 6년이 지난 것 같다. 연속 3년을 무단 불참하면 종신록에서 삭제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기다리며 종신록 삭제를 미루어 왔다.
  임진년을 기하여 정관대로 삭제하고 세습 되어온 문중의 계훈을 바로 세울 결심이다. 대평가문의 <종호>는 가문향제까지 종중에 위탁하고, 선조를 모두 추원당에 봉안하여 종중의 사업목적에 호응했었다.

   비가 그치고 청량한 햇빛이 대리석에 눈부시게 빛난다. 하늘처럼 파란 재첩국밥이 화기애애한 운감으로 베풀어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내가 고함을 지르지 않는 날이 되기를 조상님께 빌었다. 그러나 식사도 마치기 전에 부산 <종시>가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종자(鍾字35세)들이 헌납 할 용의가 있는데 회장이 종중 돈을 마음대로 쓰고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헌금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분수를 넘는다.

  덩달아 <상학>이도 무상으로 봉안을 해 주면 자진해서 지원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회장의 답변은 들을 필요도 없는듯이 말을 막고,  심지어 전임 회장인 <형규>의 불참도 나의 탓으로 힐난한다. 20년 동안 보아온 종자들의 거짓변명으로 가득찬 언행이 나의 성정을 이렇게 만드는 것 같다. <종윤>에게 총무를 맡긴 것도 환수되지 않은 종중위토를 많이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고, 금융내역의 공개를 일시 중단한 것도 종윤이가 유용한 공금을 변제 할 때까지 보류해 달라는 말을 믿어 주었던 것이다.

   종중 재산의 등기내역 중 복수차명으로 등기된 것은 80%가 관리되고 있으나. 일인차명등기된 종중재산은 30%정도밖에 환수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 산청<하규>명의는 <종록35>이가 제향귀진 건립기금으로 매입하여 정리가 되었고, 종엽 명의는 극히 일부만 제향귀진에 편입되었다. <차백>, <의문>, <학조>, <남조>, <재규>의 명의로 된 토지와 종중 기금의 유용에 대한 변제는 지금도 이행하지 않고 있다. 종자들이 헌금따위를 입에 올리기 전에 종중재산을 정직하게 자발적으로 변제하는 것이 선결사안인 것이다.

   문중일을 법정 타툼하여 척을 두지 않으려고 기다려주면 종자들이 먼저 정직하게 종중일을 도와야 한다. 종자 중에 믿음성이 있던 <종호>의 요절은 나의 의지를 절망속으로 빠지게 했다. 사업은 그만두고 건강관리를 하라고 여러번 부탁을 했었는데 나의 말을 가볍게 여긴 것 같다. 내가 종중일에 관여하게 된 83년이래 지금까지 鍾字가 약속을 지킨 사람은 종호 외에 없었다.     5년전에 종자들이 자진 약속한 윤번제(종현, 종록, 종호, 종태, 영규)로 제수를 준비하겠다고 했다. 지원자가 불어나도록 본을 보이면 기간이 더 길어질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 <종현>차례가 되었다고 했더니 2년 전에 했다며 안한 사람을 시키라 한다. 그래서 "종자"는 종을 친사람들이라고 말한 것이다.

   태풍으로 쓸어지는 <추원재>의 보수 시에 부족한 예산은 종자들이 헌납할 것이라고 하는 바람에 기둥 4개를 갈아넣고 지붕과 방풍창을 넣고 수도와 전기를 넣어 사람이 쉬는 곳으로 꾸미면서 일천백50만의 예산이 들었다. 종중기금 500만원으로 착공 계약을 하고 완공 후에 지불할 잔액 6백50만은 부산 누님에게 빌렸던 것이다. <종호>가문의 제례위탁과 24위를 봉안하고 입금한 1000만원에서 차입금 600만원을 누님의 입원비로 돌려드리려 했으나, 종윤이가 300여만원을 유용하는 바람에 400만원만 우선 돌려드렸던 것이다. 그러나 누님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그 400만원을 내가 쓴 것처럼 공석에서 모략한 <종시>와 <종윤>의 언행은 명예훼손과 배임 횡령에 해당하는 죄가 될 수도 있다. 현재 통장에 남아 있는 잔액도 차입금이다. 종중기금은 종윤이가 제멋대로 유용하고 아직도 변제를 하지 않고 있다. 종윤이는 통장의 잔고가 바닥나자 종회원 전원이 모인 향례 제단 앞에서 나를 능멸하듯 내동댕이 치고 총무를 그 만둔다며 공개선언을 했었다. 동리사람들은 나를 만날 때마다 종윤이가 총무라면서 제각이나 봉안당을 둘러보는 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빈정거리는 것은 나를 측은하게 보는 탓이었다.

  다행히 내가 매월 한 두 번 둘러보는 것으로 지금까지 현상유지되어 왔으나, 앞으로 매주 한 두 번 종중의 재산을 관리하고 복원하여 사업을 확장할 것이다. 선조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정직한 일족의 행복을 만들어주는 종중이 되도록 능력을 키울고 말 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쓰레기나 같은 것이다. 처자식들도 약속 지키기를 두려워 했기에 나를 떠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리석은 종회원들과 처자식을 조금도 미워하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약속을 번복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을 용서하지 못할 뿐이다. 생각을 바꾸어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랄뿐이다.

    내가 행복했던 부산을 떠나 83년 진주로 돌아와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겪은 것도, 종중 일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할 수록 더 깊이 빠져들었던 것도, 불가사의한 일들이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도 선조님들의 감응으로 믿는다. 기적이란 누구에게나 오는 것이다. 간절하고, 정직하고, 고결한 마음을 가졌을 때는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를 종교체험이라고도 한다.

   파도가 갑판에 넘친대로 얼어붙는 태평양 알류샨열도의 테풍 속에서 같은 회사의 두 원목선 중 하나가 나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고장난 나의 배도 파도가 삼킬때까지 기도밖에 할 일이 없었다.
  선장과 기관장은 선교에서 표류하는 선박의 기관을 고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깜박 지친 꿈결에 아버지와 병철아재가 백발노인들을 대동하고 다가와 종중을 일으키면 살려보겠다고 하기에 무작정 약속을 하고 눈을 떴다. 싸늘했던 나의 가슴이 갑자기 뜨거워졌다.

  나는 선교로 올라가 선장과 기관장에게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엔진을 고치자고 말했다. 선장은 뜻밖에 기관수리를 완료할 때까지 선원의 지휘권을 1기사에게 위임하겠으니 자네 뜻대로 엔진을 고쳐보라고 했다. 전 선원이 똘똘뭉쳐 일사불난 밤을 지새며 기관 수리를 도왔다. 태풍의 눈속에서 엔진수리를 끝내고 기관이 돌아가기시작하자 선원들은 '살았다, 만세!'를 외치며 울었다. 우리의 생명은 나의 조상님이 구해주셨다고 미친 듯이 큰 소리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아무도 부인하지 않았다.

會 長 江陽君34世  龍奎(進元) 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