愚公의 移山
<族譜의 電算化>

 

웅암 이진원    

 

   합천이씨 전서공파보를 완성한지 십이지가 지났다. 경진년 환갑기념으로 완성한 사직공보의 전산화작업은 중국설화 <우공이산>을 본받은 결실이다.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글자를 찍어보던 내가 대동보를 전산화하여 가족법 개정으로 해체된 본관의 족계를 지켜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의지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게했다. 처음 시작해 본 정언공종중의 가첩을 만들면서 한문실력부족으로 대동보전산화는 힘들 것 같아 방송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학하였다.

  중문학과에서 배우는 한문과 족보의 한자는 다른 글임을 알았다. 중문학과의 한자는 중국고전한문이었고, 내가 찾지 못하는 대동보의 한자는 한국유교가 만들어낸 토산품 한자였던 것이다. 한자가 이렇게 다른 것을 알게 된 자체가 큰 소득이었다. 중문학의 백화문은 간체자라 족보를 전산화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번(원)자체의 고전한문 대사전도 토산품 한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한문구조를 이해하거나 글자가 만들어진 순리를 깨달은 것이다.

   중국우화인 <우공이산>이 계시처럼 나의 신념을 자극했던 것이다. 하루 한 쪽, 1년에 365페이지를 입력한다면 1년에 1권씩을 데이터베이스화 할 수가 있겠다 싶었다. 중문학과 입학과 동시에 시작한 전서공파보<계해보(전4권)>를 중문학과 졸업과 동시에 완성했던 것이다. 의욕이 넘치던 그때 다른 파보의 자료를 제공 받았다면 대동보는 이미 완성되고 남은 시간이다.

  중앙종친회, 부산종친회, 중앙화수회란 조직이 가진 기득권이 대동보전산화로 유명무실하게 될까 위기감을 느낀 탓이란 후문이었다. 종친회란 일족의 후손을 위한 봉사가 우선되어야 한다. 기득권만 지키려는 전통유교의 고질적 병폐를 버려야 한다. <전서공파보>를 전산화한 우리도 기득권의 반대로 하동의 작은 문중이 독자 완성했던 것이다. 앞으로 <전서공파보>나마 정직하게 보존할 근간을 마련해야 할 일이다.

    지금도 이 족보의 관리를 맡을 후의를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동보의 전산화는 젊은이가 봉사정신으로 도전하면서 코치를 받는다면 쉬운 일이다. 그렇다고 무임승차의 고질적 사고관념으로 젊은이의 봉사를 강요할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를 이어 <우공이산>과 같은 단결은 공동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 대동보란 정직한 정보를 각 문파에서 제공받을 때만 신뢰할 수 있다.

  객관성과 신뢰를 갖는 대동보의 전산화는 모든 문파의 참여없이 불가능하다. 믿음이 없는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 대동보의 전산화는 신을 섬기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한국의 종교는 신을 파는 기업이 된지 이미 오래다. 족보를 기득권 조직의 유지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은 면죄부를 파는 종교나 같다. 정직한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을 가질때만 신이 존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