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영국인 스콧티 노인의 특강

 

      1981년경인가 휴가를 얻어 암스테르담에서 일본을 경유하여 귀국할 때 있었던 부끄러운 기억이다.
「손님께서 콜링한 6십니다. 일어나십시오!」 머리맡의 전화 소리다.
<예 감사 합니다>전화를 받는 둥 누어서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눈을 다시 감았다.
「7십니다! 식사를 완료하여 주십시오!」 반복하여 부른다.
<예 감사 합니다>벌써 한 시간이 지났나? 하며 또 눈을 깜빡 감았다.
「손님 일어나세요! 청소하겠습니다.」
「뭣! 지금 몇 시요?」하고 물으니 퉁명스럽게 <10시 반!>
<어이쿠 큰일 났다!>
허둥지둥 봇짐을 챙겨 공항으로 달려갔다. 11시 반이 넘었다. 나의 비행기는 탑승마감을 하고 이륙준비에 들어갔다. 영락없이 불법체류자가 되어 버렸다.

 탑승구에는 다음비행기 손님을 checking하고 있었다. 각 국의 항공사를 차례로 돌아다니며 두 번 세 번 애걸구걸 하였더니 예약된 KAL보다 2시간 뒤의 JAL기를 출항 직전 비상탑승구를 이용하여 태워 주기에 밀입국자로 붙들리지 않고 서울로 온 얼빠진 일이 있었다.

  헐레벌떡 맨 뒤에 내가 탑승하자마자 활주로에 진입대기 하고 있던 비행기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하늘을 치솟아 오사카를 벗어나니 이젠 <살았다> 싶었다.

  겨우 응급구제를 받고 난 주제에 내 잘못은 접어둔 채, 바로 앞에 출항한 우리나라 KAL기에 빈자석이 분명히 있었다는 JAL의 일본인 안내아가씨의 갸우뚱하는 고개 짓과 비웃음 띤 설명을 곰곰이 되새기며, 좀 귀찮더라도 동족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개척자의 정신으로 해외취업을 하여 고생하고 돌아오는 근로자들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대한항공사의 행위가 원망스럽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옆자리의 영국손님이 인사를 하는 바람에 정신이 들었다.

  스코트랜드가 고향이며 별명이<스콧티 부부>라고 한다며 다정하게 통성명을 하면서 서울에 2-3일 묵었다가 홍콩을 거쳐 한 달 후에나 영국으로 되돌아가실 거라는 여행계획을 말해 주는 영국인 노부부가 불안했던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같아 고마웠다.

  그분들에게 대화 할 말도 궁하여 웃음거리 삼아 이야기 해 볼 생각으로 오늘 아침 나의 나태함 때문에 이 비행기를 늦게 타게 되었고, 서로 만나는 인연이 되어 기쁘다고 애써 말을 하였더니 이게 웬 낭패란 말인가?!

― 부인이 남편을 설득하여 그만 하시게 될 때까지의 스콧티 어른의 훈계를 기억 해 두려고 이 글을 써 보는 것이다 ―

「젊은 친구가 농담이 너무 심하군.」
그토록 다정했던 영국노인의 얼굴을 벌겋게 흥분하면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도리질하신다. 그러고 잠시 후에 가만있던 어른이 갑자기 큰 소리로
「자네 정신은 있는 사람인가?」하시며 멍청한 나를 보고 한참 있다가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신은 가졌는가?」라고 다시 물으신다.
<예>하고 엉겁결에 대답했다. 노인의 얼굴에 경련이 일면서 분통을 꾹 참는 것 같았다.
스콧티 노인이 그토록 화를 낸 이유를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네가 한국의 엘리트 중의 한사람인가?」<아, 아닙니다.> 했더니
「<예>라고 대답해야 내 말을 이해 할 텐데…」하며 큰 숨을 쉬신다.
「비행기 탈 자격도 없는 자네가 내 말을 이해하겠나?」하시고 한참 있다가
「너 한국전쟁을 잘 기억하느냐?」하시며 쳐다보지도 않으신다.
「예, 초등학교 4학년 땝니다」했다.

「나는 전시는 물론, 휴전 직후부터 한국을 가끔 방문했는데 올 때마다 달라진 한국이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이 착각할 정도로 새로워서 아예10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정기적인 한국방문계획을 세웠지.」라고 하시면서.
「자네가 배를 탄다고 했지? 그럼 ITF를 잘 알겠구나.」하시며 심각하게 묻기에 <예>라고 대답했다.
「그 노조원을 닮은 자네가 돈을 벌어도 나라가 발전하는 것이 이상하고 못 마땅해!」
  하시면서 엄지로 땅바닥을 가르치는 모습이 당장이라도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자살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의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하는 분위기였다. 영국노인이 너무나도 지나쳐 은근히 마음속에 울분이 일 정도였다.
안절부절 하는 나를 보고 가만히 듣고만 계시던 할머니가 민망한 표정으로 남편을 살피며
「앞으로 잘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하시며 친자식 타이르듯 지당한 꾸지람이라고 남편의 뜻을 지지하면서 나를 용서해 주라고 설득하신다.

 모든 이국인들이 보는데서 한국 사람이 망신당하는 꼴을 보여주는 것 같아 무섭기까지 했다. 어찌 이렇게도 모든 나라의 부모님은 똑같 엄한 훈계를 하는 것일까? 꼭 부모님 같다.
스콧티 노인이 잠시 참았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한국의 인구가 얼마냐?」하시기에 <약 4천만이 됩니다.> 라고 했다
「자네 같은 잘못을 한국국민에게 각자 한 번씩 용서한다면 4천만번을 되풀이해야 할 것이다.」

「계약만료 하면 국가를 위해서라도 재취업을 하지 말아야 한다!」
명령하듯 말하고 계속하여
「너 자신과 한국을 위하여 나와 약속을 해라.」 하시며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하여
「너처럼 형벌을 받지 않는 죄인들이 많을수록 나라가 쉽게 망한다.」하시며

「그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라고 하셨다.
내 얼굴은 홍당무처럼 굳어져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였다.

 예약된 KAL 비행기로 먼저 도착한 화물을 찾고 있는 내 앞에 스콧티 부부가 조용히 다가서며 냉정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 군! 하고 부르시며
「지금부터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취업으로 서로 만나지 않기 바란다.」하시며 손도 잡아 주시지 않고 먼 산을 보시며 숙연히 공항을 먼저 나가셨다. 나도 그 후부터 사실상 해외취업을 포기하고 말았다.
  시간을 표현하는 말들은 모순을 함축하고 있기에 사람들이 아전인수의 삶을 살면서도 벌을 받아야 할 잘못을 핑계로 자신을 합리화 하려든다. 나와 같이 시간이 낭비된 무서운 결과를 변명하려는 것이다.
  아름다운 시간의 말은 낭비란 있을 수 없다고 전제한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 밀밭이 되고, 낙엽이 썩어 풍성한 과일을 열리게 하는 것은 시간 말의 아름다운 표현이며 정직한 배려의 진리다. 시간은 인간이 바라는 것을 낭비 없이 순수하고 완성된 결과만 선물해 주는 진실한 신의은혜다.
  그런데 신이 인간들에만 준 특권(거짓말과 변명)으로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부패>란 시간 말이다.
  역사가 가르쳐 준 것 중에서 낭비된 시간의 결과를 몇 가지만 써 본다.
  종교가 부패하면 자금처럼 전쟁이 나고
  무력이 부패하면 독재 권력만 남는다.
  교육이 부패하면 다른 나라의 식민지가 되고
  국가(정부)가 부패하면 혁명이 일어나며
  국민의 사고가 부패하면 나라를 잃게 된다.

  스콧티 노인이 설명해준 한 시간의 특강이었다. 아버지가 동란 때 땅굴 속에서 어린 우리형제에게 야담을 섞어 가르쳐 주었던 똑같은 설명이었다.
그때는 억울한 잔소리로만 들렸었고, 부끄럽고 긴 한 시간의 고문이었다.
그때의 값진 의미가 한국병의 치료 예방백신인줄을 이제야 깨달았다.
<시간이 해결 해 줄 거야> 언제나 내일로 미루어 버리는 대한민국 국가의 민원처리 모습들이다.
전가된 책임이 누적되다 못해, 썩어 곪아서 이름 모를 종양이 되어 IMF의 수술을 받고서도 낫지 않는 한국병 환자들이 아직도 많은 공무원들의 조직이 앞으로 얼마나 무서운 재앙을 부를지도 모른다.

  신이 잘 못 생각하여 실수할 수 있는 특권을 한국 사람들 중에서도 벼슬자리로 생각하고 있는 한국정부의 일부 공무원들에게만 유달리 많이 부여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신이 준 인간의 특권을 하루빨리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전근대적 사고를 지금도 가지고 있는 한국정부의 진부한 사고의 그 표현은 언제나 <시간이 해결 해줄 거야!>를 반복하는 복지부동이다.
이제 <낭비하는 시간이 우리를 죽일 거야!>로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