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파탄 (2)

 

       서대신동에서 동리 사람들의 인사가 부끄러운 듯 환송을 피하며 법원 뒤편 부민동의 아담한 독립가옥으로 이사를 했다. 어머님과 노아 셋이서 두 번째 여유 있는 휴가를 보내고 있을 때, 막내 자형이 집안의 조카딸을 소개하며 선을 보라고 권한다. 부산 테레사 여고를 졸업했는데 마음이 착하고 정직하다고 하였다.

  나는 선원생활을 계속할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결혼 할 생각이 없다고 거절 말했는데 어머니와 자형은 노모와 철없는 노아만 두고 배를 탄다는 것이 더 불안하다고 꼭 선을 보라고 강권을 하신다. 선을 보고 좋으면 이번 휴가 때 아예 재혼을 하고 해외로 나가라고 우기신다. 이혼한지 삼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검소하게 살림을 맡아선지 옛날의 십년보다 더 안정되고 풍요로웠다.  해대 전수과 동기생들은 서면에 빌딩을 짓고 부동산에 투자하여 거부가 된 사람도 있고 선박회사를 차려 거부가 된 사람도 많았다. 이들 모두 집안에서 살림을 잘 꾸리고 여가생활을 겸한 부업으로 생활비를 벌어 쓰면서 남편의 급여는 송두리째 단기투자금융에 쏟아 부었던 것이다. 모두가 현명한 아내들로서 많이 배운 여자들이었다. 선원 생활 10년을 넘기기도 전에 거부가 되게 하였고, 남편을 뭍으로 불러들이려는 훌륭한 아내들의 성공담 이였다. 그러나 나와는 반대로 남편들이 육지에서 안일하게 설치다가다 다시 배를 타러 나온 친구도 더러 있었다.

  어느 날 막내누님이 주선한 법원 앞 다방에 나가 선을 보았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 휴가를 연장하고 재혼을 서둘렀다. 작은 사진관에서 두 집 가족들의 축복을 받으며 남 보기 부끄러운 듯 도둑결혼같이 해치우고 다시 출국하였다.


  부산대학 후문 근처의 장전동에 있는 두 채의 집을 사서 이사한지가 3년이 넘었고 노아도 동래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노아는 친구들과 어울려 항상 부족한 용돈 때문에 새엄마와 다툼이 잦았고, 어머님의 용돈까지 챙겨 쓰면서도 아버지의 많은 월급을 다 차지하는 새엄마가 불만인 것이다. 아마도 친모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그녀의 시새움을 아들 노아에게 암시하여 새엄마를 저주토록 한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또 다시 나의 선원 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특별휴가를 얻어 부푼 마음으로 귀국한 어느 날, 집에는 아내가 없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선물하여 마음을 풀어 주려고 사가지고 온 전자 키보드를 피아노 곁에 내려두고 먼지가 뽀얗게 쌓인 피아노를 손으로 훔쳐보았다. 넓은 응접실에 쓸쓸히 혼자 앉아 나의 휴가를 반겨주지 못하는 연만하신 어머니의 표정은 10년 전의 악몽을 재현하는 듯이 너무나 안쓰럽게 보였다. 점심 식사를 지어 반찬도 없는 밥상을 손수 차려주신다.

  아내가 없는 집안은 빈집 같았다. 중학교 2학년이 된 노아도 학교를 마친 시간이 넘었는데도 일찍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내가 집을 비운지 보름이 넘었는데 어디 있는지 친정에서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노아의 등살에 견딜 수 없어 함께는 살수 없다고 집을 비운지가 여러 번이며, 노아도 새엄마와는 함께 살 수 없다며, 하숙을 시켜달라고 우겼다. 말로 표현할 수없는 노아와 아내의 갈등이 지나쳐, 아내는 생활비도 챙겨두지 않고, 어머니와 노아의 용돈도 주지 않은 채 잠적하여, 기어이 나를 회사로부터 특별휴가로 불러들인 것이다. 회사에서 가정파탄을 정리하기 위한 두 번째 특별휴가를 얻은 셈이다.


  어느 날 처가에 들러 아내의 연락이 있는지 물어 보았다. 아무런 소식이 없다고 했다.

 처가식구들은 노아를 차라리 하숙을 시켜주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의중을 떠보기도 하였다. 어머니는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 아이가 철없어 저지르는 일을 어미가 다정하게 용서하고 보살펴주어야지 아이를 내쫓고 자기만 편안히 살겠다는 마음가짐은 어머니의 태도가 아니라고 하시며 아무래도 함께 살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씀 하셨다.

  아직도 아내가 내가 특별휴가를 왔는지 모르고 있는 듯 했다. 집안의 소식을 알아보려고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소원하고 한적하여 전자키보드를 피아노위에 설치하고 조용하게 연주를 해보았다. 가슴이 터질 듯이 원망스럽고 억울했다. 한 여자가 들어 나를 이렇게 괴롭힐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 한 여자 때문일 것이다!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인근의 노인요양소에서 수녀원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의 수련을 한다고 하였다. 집안의 노모는 보살피지 못하면서 남에게 극진한 봉사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고 했더니, 이것이 어머니와 노아에게 주는 복수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이라며 기어이 집으로 들어오지 않겠다고 우기는 아내를 설득 할 수가 없었다.

  처가에 이 사실을 알려 사촌 오빠들이 찾아와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어머님과 노아와 아내와 처남과 함께 서로 좋은 제안을 해보자고 했다. 노아는 끝까지 새엄마와 살고 싶지 않다고 우겼다. 아내도 노아와 살수 없으니 합의 이혼을 하자고 하였다. 결국 아들이 새엄마를 내 쫓는 형국이 되어 이혼 조건으로 집한 채를 양도하기로 하고 이혼을 결정하였다. 법원의 이혼승인 유예기간을 기다려 이혼신청서가 접수되고, 뒷집의 명의가 아내의 이름으로 권리이전 등기가 되었다. 다음날 처남과 함께 아내의 짐을 챙겨 나가는 날, 아내는 문밖에 나오자 잘 가라고 전송을 하는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오래토록 통곡을 하며 떠나기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재산을 갖고 싶은 마음은 인간의 본능 같은 욕구의 하나다. 그렇지만  집착하는 것만큼 불행해 진다는 사실을 두 번째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