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템즈강과 영국노조

 

      국민소득 만 불의 원년이었던 병자년이 무역수지적자의 책임만 만신창이가 된 쇠등에 실어둔 채 새해를 맞았다. 불난 집에 부채 들고 온다는 꼴로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과 국제노동기구 간부 4명이 한국에 들어와 파업노동자를 편력해 주권을 무시한 도전행위라는 경고를 받았다는 보도를 보고 허울 좋은 ITF(국제무역해운노조연맹)에 시달렸던 우리의 과거가 생각나기도 했다.

  해가 바뀔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고 여행을 하거나 컴퓨터게임을 하는 것 같이 봉건시대와 첨단의 현대가 뒤섞인 시간의 교차는 전주지방의 명물비빔밥 같은 혼돈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허울뿐인 개혁의 옆구리만 갉아먹고 저만 잘살면 그만 이라는 한국의 고질적 풍토병환자가 태반인 행정지도자들이 아직도 기득권의 칼을 휘두르며 힘없는 소시민들만 뇌쇄 시키고 있다.

 기득권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국민들 보며 ITF에 시달린 20년전 일 생각나 책상서랍 구석에 30년 전의 색 바랜 선원수첩을 보며 목숨을 건 dollar maker들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당시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가 되어 스친다. 그 시절, 월급 없이 수당25$로 3년의 강제노역과 같은 의무승선계약을 해가면서까지 해기사 양성을 위한 실습을 시키며 어렵게 외화를 벌어들이던 대한민국정부가 2만$의 국민소득을 향해나가려고 한다.

  그러나 벼락졸부의 삼대독자 같은 일부지도층의 젊은 세대들은 과거답습과 모방을 무기로 하면서도 개혁의 이름을 빌어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기 위해 반대의견을 타도하려는 투쟁적이고 선동적 언동은 사회계층과 사고를 이질적으로 분리시키는 형국을 조성하는 것 같아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모든 권리는 의무가 선행되었을 때만 존재하여야 한다. 기득권계층이 누락한 공동의 의무들이 약자의 몫이 되어 온 것은 역사가 증명했듯이 지금도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다. 개혁과 혁명은 이러한 기득권의 존폐를 위해 생겨났던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청년시절에는 조국의 경제를 위해 일익 하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자긍심으로 기득권을 비판했었지만 지금은 서글픈 기억들의 넋두리로 여겨질 뿐이다. 미래는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기득권의 본질대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1975년쯤의 일이다. 서너 시간의 하역작업이면 끝날 수 있는 철재화물을 선창의 맨 위에 싣고 런던근교의 리버풀 항에 입항했었다. pilot station에 정박시켜 둔 채 이틀쯤 지났는데 해운노조의 하역거부로 출항계획마저 알 수 없게 되었으니 런던 관광계획이나 세워 두는 게 좋을 거라는 Agent의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빚에 쪼들린다는 영국이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 노조까지 합세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러나 사실은 편의치적선이라는 이유로 ITF(International Trade labors union Federation)노조에서 하역작업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나는 영국해운노조의 야비한 술수가 역겨운 식민사관의 내선일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ITF란 영국의 해운노조가 중심으로 결성된 국제무역해운노조연맹으로 백인해원들이 개도국의 해양진출을 저지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의도로 결성된 백인노조행동 조직이다. 허울 좋은 그들의 이데올로기적 구호가 마치 공산사회주의의 평등과 같았다. 나 역시 관리자 지위의 노조원으로써 그들의 야비한 술수에 현혹되지 않도록 설득하며 우리의 선원들을 관리하는데 부심 했던 때가 참 많았다. 그 당시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유능한 해원을 양성하여 해양진출에 의한 경제부흥을 획책한데 반하여 구미 선진국과 일본의 해운회사들은 승선기피를 보상하기 위한 고 임금으로 자국의 고급인력을 고용함으로 인하여 경영적자가 증폭되었고 두 번의 오일쇼크에 의한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은 해운불황으로 이어져 저임금 고급노동을 창출하는 개도국의 해원들을 선호할 수밖에 없었다.

  선진 해운 국들은「자국적 국민만이 자국적 선박 항공기의 승무원이 될 수 있다」는 자가당착의 자국법을 피탈할 수단으로 편의치적선(편의상 외국인 승무원고용이 허락된 국가의 선적항에 등록하여 그 나라의 국기를 게양하도록 허락 받은 선박)제도를 만들어 경쟁하듯 타 국적 고급 해원을 저임금으로 고용하게 되자, 해운회사와 백인해운노조간의 고래싸움에 개도국의 우리 해원들은 등터지는 새우 꼴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Green Global이니 HiTech Consortium같은 국가분업결합이나 합작 또는 지구환경과 산업에 대한 말들은 미래를 포장하는 공상적 용어에 불과했고, 콧대 높은 선진국들은 배불러 제 먹기는 싫고 남들이 먹는 것은 아까운 그들만의 기득권옹호정책으로 일관해 왔고 그 정책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러한 세계정세는 망둥이가 뛰니 꼴뚜기도 따라 뛰듯이 백인노조마저 ITF를 만들어 편의치적선의 개도국 해원들도 백인의 동일직급의 직무를 수행할 경우 백인과 동등한 처우를 하도록 보호해준다고 하면서 조합비까지 착취하며 기생하기 시작했었다. 더구나 그들은 ITF의 요구에 불응하는 해운회사의 편의치적선은 해상운송작업을 비토 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한 직후여서 등터진 새우 꼴로 본의 아니게 2주 동안의 런던관광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노동조합도 영국에서 캐나다 미국 일본을 거쳐 수입된 것으로 ITF를 닮은 노조가 관료적 기득권까지 더해진 것도 상당수 건재하고 있다. 다만 대처 수상과 같은 위인이 함께 수입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처수상에게 쫓겨난 영국의 노조원들이 유대에서 쫓겨난 예수의 12사도처럼 뿔뿔이 흩어져 미국 캐나다 일본 및 영 연방국들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수입되어 각 국의 노동계와 산업형태를 뒤흔들어 놓았다. 이제 겨우 밥술 좀 뜰만한 한국에도 뒤늦게 상륙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런던에 갔을 때는 영국노조의 전성기였고 이와 반대로 국운은 태양이 안개 속으로 지기 시작한 영국이라는 이름이 불려 지기 시작한 때였다. 런던브리지 아래서 면장갑을 끼고 강물에 손을 넣어 저으면 회색 망사장갑을 낀 것 같이 검푸르게 변하던 템즈강 물이 노동조합이 없어진 요즈음은 퍼마실 수 있을 만큼 맑아진 강물에 낚싯대를 담근 노인들의 웃음소리가 옛 대영제국의 영화를 되찾은 듯하다. 영국의 자존심으로 알려진 국제보험금융의 대부인 로이드사가 망할 뻔했던 것도 영국의 노조가 일조 한 셈이 된다.

  세 시간이면 끝낼 수 있는 하역작업을 2주 동안이나 버티며 거절하다가, 다른 나라들의 운송방해에 대한 성화같은 손해보상청구가 쇄도하자 부득이 영국을 출항하여 그 다음 화주의 화물부터 하역을 하게 되니 선창의 제일 위에 실린 영국화물을 들어낸 후 다른 나라의 화물을 하역하고 다시 영국화물을 재 선적하는 운송작업을 일곱 번이나 되풀이하며 지중해를 일주하고 되돌아 영국으로 왔으니 그 많은 하역임금과 화물손상보상금, 운송연체보상금 등 모두가 영국정부나 로이드가 변상을 해주어야 할 몫이었다. 20여 일이 지나 맨 나중에 영국으로 되돌아 왔을 때는 2시간도 되지 않아 하역을 마쳐주었다. 이것이 영국의 선진해운노조의 기득권이라는 ITF의 실체인 것이다.

  영국을 떠나면서 그들에게 삼대 거지와 부자가 없다는 우리의 속담을 말해주며, 영국의 신사도도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고 서툰 영어로 손 발짓을 하는 나를 원숭이 재주 보듯 하며 큰 코를 만지며 웃어주는 Agent Manager한테 한 달 봉급을 송두리째 런던 관광여비로 날려버린 억울한 화풀이를 해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올바른 가치구분을 못하는 기득권의 옹호 때문에 이데올로기로 신봉했던 공산사회주의가 몰락했다. 자본주의 역시 가치가 전도된 기득권의 옹호 때문에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아 갈등의 세월을 보내는 나라가 너무나도 많다. 우리나라도 그 중의 하나다. 기득권의 고수를 위하여 지도자들 스스로가 가치전도를 조장하며 변명으로 일관했던 중남미국가들이 지금의 우리와 너무나도 닮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은 선진국들의 기득권을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합리화하려는 오류를 범하여 내재된 의식개혁을 도외시하고 주변 선진국의 소외를 스스로 조장하여 경제하강의 늪에 빠져버렸던 과거를 잘 알면서도 우리도 이를 답습하고 있다. 한때는 우리가 그들을 일깨워 주는 듯도 하였으나, 행정부패의 자가당착은 그 차원이 더욱 고도화되어 전직대통령들이 구속되는 부정부패천국의 도둑소굴과 같은 관료정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선진대열에 진입하려는 의욕으로 OECD까지 가입하고서도 갈가리 찢어진 보자기 쌈지까지 기워 쓸 줄도 모르는 한말의 정치인들 같은 한 많은 망부석의 꼴 모양을 또 볼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