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초등학교 졸업여행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우리들의 세월은 어김없이 흘렀다. 대통령 이름, 문교부 장관, 등 각부장관의 이름을 반드시 외워야 하는 학습을 받았고, 교과서는 검푸른 선화지색깔에 오들 토들 하게 재생찌꺼기가 종이 속에 파묻힌 저질종이에 인쇄되어 한 학기를 채우기도 전에 재생찌꺼기가 빠진 자리의 글자가 없어져 버려 공부를 잘했던 학생도 일어서서 책을 읽다가 중단하는 때가 번번이 있었다.
  어느 날 우리학교에서 선생님들도 천재라고 칭찬을 하고, 학급 친구들도 우상처럼 생각하던 정 후자라는 여학생이 국어선생님이 일어서서 교과서를 읽어보라고 하였는데, 그때 글을 줄줄 읽어가다가 중단하면서 머뭇거리며 옆 학생에게 묻는 일이었었다. 학생들도 이상하여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우리 반에서 제일 공부를 못한다고 소문난 학생이 대신 읽어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의 교과서에 약 반줄의 글씨가 모두 지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을 대신 읽어준 한사람의 교과서만 깨끗하게 글자가 남아있었던 것은 워낙 교과서를 열어보지 않아 새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교과서인데도 UN이 무상 지원해준 고마운 교과서이니 곱게 쓴 후 후배에게 물려주라고 크게 쓴 글씨는 뒤표지가 떨어지지 않은 한 남아있었다.

  가을운동회 때면 지금의 이북 인민학교처럼 우리도 적군과 국군으로 나누어 적군을 무찌르는 퍼포먼스를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군대놀이, 전쟁놀이로 적개심을 기르며 공부를 가르치고 배워온 어린 우리에게도 그때부터 불신의 싹은 자랐을 것이다. 지금도 이북은 우리의 옛 이야기 속에 그대로 머무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상황이 그들의 생활환경에 따른 자연적 발생의 아름다움인지, 각인된 사고관념의 학습인지, 시간을 정체시킨 자유의사의 억압인지 도무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요즈음 진보주의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어정쩡한 민주주의 이름으로 야비하도록 잔인한 약육강식의 전형을 합리화하는 변명보다 차라리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신자유주의 의사를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도 졸업을 앞둔 우리들의 즐거운 수학여행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여행 날자와 목적지가 어린 아이들의 수다스럽고 소란한 학급회의에서 결정되자 여행경비를 개인별 분담으로 산출하여 학급별로 모아 학교에 바친다. 현금으로 가져오지 못하는 학생은 현물납부도 허락하였다.

  요즈음처럼 관광여행사가 없던 시절이고, 여행계획에 맞춘 대량운송교통수단의 독립대절은 적은 경비로는 엄두도 낼 수 없는 터라, 인솔 선생님과 교장선생님이 나서서 동분서주 주선한 대절차량이 광평 송림에 주둔한 6396부대의 군용트럭 두 대였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퇴각을 미처 못 한 남부의 인민군들은 추종자들과 함께 지리산이나 오대산을 거점으로 빨치산부대를 만들어, 밤마다 게릴라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은 전후방 없이 모두가 전장 터였다.

  인솔 선생님은 이른 아침부터 출발을 서두르며 수차례 인원을 점검을 하신다. 짝꿍은 왔는가, 확인해 보라는 둥 묻기를 수차례 하시고도 다시 명단을 보고 눈에 보이지 않은 아동의 이름을 부르며 한사람도 놓치지 않을 새라 연신 호명하고 확인하신다.

  두 반씩 나누어 차곡차곡 짐짝을 실 듯 어린 우리들을 두 차에 모두 싣고 교문을 나설 때 는 이미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었고, 운동장 한 가운데 혼자 서서 조용히 손을 흔들며 잘 다녀오라는 교장선생님의 모습은 참으로 인자한 아버지 같았다.

  아이들은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몸을 붙인 차안이라, 서로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신이 났던지 <금수강산 삼천리 늘어진 곳에……> 있는 힘을 다하여 하늘을 처다 보며 교가를 부르는 동심은 참으로 아름다운 슬픔이었다고 생각된다.

  얼마 가지 않아 모두가 앉을 수가 없이 빽빽이 일어선 채로, 남해 금산을 향해 자갈길을 터덜거리며 천천히 가는 자동차가 구비를 돌 때마다 우리들은 어이구! 하며 무의식중에 고통의 합창을 연발한다.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거듭될수록 굼벵이 같이 느린 여행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옥의 수학여행이었다.
  자갈밭 길에 황토먼지가 날려 우리들의 머리와 얼굴은 노란 분가루를 뒤집어 쓴 것 같았고, 황토먼지가 입가에 말라붙은 우리들의 모습은 가뭄에 말라 가는 웅덩이의 붕어새끼처럼 힘없이 꺼져가듯 가는 숨을 할딱거리고 있었다.

  키 작은 학생들은 자연히 키가 큰 학생의 등에 지친 듯 얼굴을 묻고 자는 바람에 땀에 젖은 새 옷의 등 뒤는 모두가 황토먼지로 반죽이 되었다. 피곤하고 지친 상태에서 남해 용문사에 도착하기도 전에 나의 생질녀동창인 정점숙이가 김광석(참존회장)의 등 뒤에 멀미를 참지 못하고 토하는 바람에 잘 견뎌왔던 아이들이 이곳저곳에서 구토를 하기 시작하여 아수라장이 되었고, 결국 차를 세워 모두 내리게 하여 숨을 돌리게 하는 바람에 밤이 깊어서야 첫 정류지 용문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적막했던 용문사가 자정이 되어도 내빈객실은 시끄럽다. 언제 우리가 다 죽어 가는 지친 붕어새끼였는가 하듯, 청승맞도록 스님의 염불흉내를 내는 신동연의 연기에 모두가 깔깔대며 박장대소를 해대는 바람에 옆방의 스님은 염불을 중단하고 흉내를 더 이상 내면 추방을 하겠다고 내린 경고가 너 댓 번은 됨직 했다. 결국 인솔선생님의 조용한 설득에 우리는 선잠을 자면서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새벽 4시종이 울리자 선생님은 잠을 설친 우리를 인솔하고 ‘보리암’에서 해맞이를 하기로 하였다. 아침에 떠오르는 깨끗하고 쟁반 같이 붉은 태양은 부끄러운 듯 얇은 구름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인사하듯 웃었다. 신선바위에 앉아 이성계도 되어보고 흔들바위를 움직여 보기도 한다. 용 굴을 나올 때면 아버지가 이야기해준 금산의 전설이 새롭게 떠오르기도 하였다.

  단풍이 너무나 곱게 물들어 아름답기가 한량없다. 어찌도 나무숲은 삶을 시작할 때나 그칠 때도 고운 마음을 가졌기에 우리에게 언제나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씀하신 아버지의 단풍예찬론이 지금도 가슴에 와 닿는다. 사람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하셨는데……

  작은 보리암의 좁은 방에 빽빽이 쪼그려 앉아 잠을 자려고 하니 너무 불편하고 피곤하다. 엎치듯 포개져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새벽을 맞는다. 벌써 일어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일출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두 밖으로 나왔다. 태양이 솟아오르려고 저 멀리 어두운 수평선을 검붉게 물들이더니, 마치 가마솥에 물이 끓어나듯 붉은 파도가 일렁거리기 시작한다. 수평선에 깔린 이불솜털 같은 구름도 붉고, 노랗고, 푸른 색깔로 염색이 된 것처럼 부드럽고 곱다. 붉은 쟁반 같은 태양이 솟았다, 갈아 앉기를 두어 번 하더니 쑥 고개를 들고 솟아오른다. 와- 하고 우리는 고함을 지르며 금산의 새벽 메아리를 깨웠다.

  검붉은 태양은 점점 노란 색으로 변하더니 가장자리부터 눈이 부시도록 하얀 은빛으로 바뀌며 하늘에 깔린 작은 새털구름들의 이불먼지를 털기 시작하는 듯 뿌연 하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날이 밝아지고 보리암에서 나눠준 한 주걱의 점심도시락을 허리에 차고 금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뛰는 놈, 걸어오는 놈, 노래 부르는 놈, 돌팔매질로 새를 잡는 놈, 제멋대로 외길로 된 오솔길을 따라 용문사까지 내려와 점심 도시락을 먹기로 하였다. 선생님들은 우리보다 반시간이 늦게 여학생들을 인솔하고 오셨다.

  아직도 버스는 용문사에 도착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이곳에서 모두 도시락을 먹고 차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모두들 둘러 앉아 도시락을 열어보더니 <에게!>하며 서로 서로 보여주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산을 내려올 때 도시락 안에서 달랑거리던 밥 덩어리가 진짜 꽁 알 같이 동글동글 하였다.

  밥을 먹고 얼마 있지 않아 한 대의 버스가 도착하였다. 좌석을 통째로 들어내고 손잡이도 제대로 없는 멍텅구리 버스였다. 굴러가는 빈 상자와 똑같다. 사람을 짐짝처럼 많이 태울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일부러 창가 쪽의 의자를 들어내고 왔다고 했다. 그래도 군용 터럭보다는 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차에 모두를 명태처럼 꼿꼿이 세워 태웠으니 오죽이나 답답할까마는 추운 날씨라 서로서로 가슴과 등을 붙인 덕에 따듯함을 느끼고 그대로 선채 자동차가 출발하여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잠이 든 것 같았다.

 꼬부랑 자갈길을 서너 시간을 달리는 동안 이제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 하였다. 만약 쉬기 위하여 사람을 풀어놓으면 다 태울 수가 없을 정도라 조금만 더 참으로라고 결려를 한다. 남녀학생 가릴 것 없이 어린 것들이 꼿꼿이 선채 오줌을 질기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벌써부터 속이 메스꺼워 구토를 하는 학생이 생겼다.

  이 모습을 본 비교적 키가 큰 김광석이 갑자기 왝 왝 하며 여학생들의 머리위에 토해버렸다. 지난번 정점숙이가 금산으로 갈 때 토했을 때는 광석이 등 뒤에다 토했으나, 이번에 광석이가 토한 것은 여러 여학생들의 머리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여기저기서 왝 왝 그리며 야단이 일어났다. 다행이 노량 나루터에 다 도착하였기에 다행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간신이 차에서 내린 우리는 어미를 잃은 새끼 펭귄처럼 덜덜 떨며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여학생 머리에는 음식물이 주렁주렁 달린 채 눈물만 찔끔 그리며 정신 나간 아이들처럼 입술마저 새파랗게 질린 채 남해노량의 바닷바람을 마시며 도선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동 노량으로 무사히 건너온 우리는 군부대에서 보내준 2대의 군용터럭에 나누어 탔다. 그래도 버스 보다 넓은 공간이기에 차디찬 가을바람을 마시며 다시금 생기가 돌기 시작하였다. 초록색 군용터럭이 출발하여 노량 바다를 뒤로하고 한 굽이 고개를 돌아서자 한 아이가 <금수강산 삼천리>하고 작은 소리로 교가를 불렀다. 한 두 아이가 따라 하더니 모두가 합창을 시작했고, 뒤따라오던 친구의 차에서도 우리들의 노래를 들었는지 뒤질 새라 더 큰 소리로 교가를 합창하며 제비새끼들처럼 즐거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