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란의 여명

웅암/이진원

<피난>

  올여름 참외와 수박이 너무 잘 되어 여름철 인심이 좋을 것이라는 아버지의 표정이 정겹다. 벼농사도 풍년이라 시국만 조용하면 태평천국이라 하셨다.
  여름 방학은 아직 멀었다. 6월이 끝날무렵 학교 운동장에 부상당한 군인이 어제는 한 차, 오늘 두 차 다음날은 여러대가 오더니만, 교실까지 숙소로 사용하게 되면서 방학이 앞당겨 졌다.

  얼마 가지않아 교실을 넘친 부상병이 운동장에 나란히 눕더니, 중학교 교정과 송림공원까지 천막을 치고 환자를 눕혔다. 갑오년 동학군이 이런 모습으로 송림에 모여 있다가 모두 불쌍하게 죽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모두가 피난을 떠난다고 야단이다. 부모님은 참외밭 원두막에서 피난을 하셨다. 막내누나와 형과 나는 다섯째 누님부부를 따라 고전 잔내에 있는 외딴 친척집으로 피난을 하였다.

  부모님은 참외밭 원두막 밑에 깊은 땅굴을 파고 그곳에서 읍내를 드나들며 집과 논밭을 관리하셨다. 인민군이 오거나 폭격이 시작되면 이곳에 숨어 피난을 하셨다.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고전에 살고 있는 사촌들은 우리를 돌봐준다는 핑계로 폭격이 그치지 않은 화염을 뚫고 하동읍 '너뱅이' 참외밭으로 와서 부모님이 정성을 다해 마련해준 참외와 수박, 많은 양식을 힘부치게 짊어지고 어두운 도둑골재를 넘어왔다. 서촌은 그것을 우리에게도 돈을 받고 팔았다. 돈이 떨어지자 전란 중에 외상은 없다며, 먹고 싶거든 직접 하동읍에 다녀와 보란다.

 

  전쟁 와중에서도 포탄을 두려워하지 않는 탐욕이 생명의 존귀함을 모르는 미련함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많은 가족이 굶어야 한다. 포탄에 죽으나 굶어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절망에서 나온 극기라 했다. 우리가 미련한 탐욕으로 여긴 그들의 행동이 가족을 위한 처절하게 아름다운 노력이었다고 되새겨 본 것은 그들을 용서한 훗날의 생각이었다.

 

  형과 나는 배고픔을 견지지 못하고 사촌형의 말대로 하동에 다녀오기로 작정한 오후였다. 게잿재를 넘어 내려가는 길목인 적량면 전도리와 너뱅이들 언저리에서 인민군과 국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기관총소리와 포소리가 교차로 메아리치며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 전장을 지나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숲 속에 숨어 전쟁놀이를 구경하는 것 같아 재미가 있었다. 우리의 앞 뒤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라 오갈수도 없어 전투가 멎을때까지 기다리기로 하였다.

 

  장난감 같은 작은 짚 차 한 대가 하동읍 쪽으로 빠른 속력으로 들어간다. 아마도 국군의 짚 차 같은데 들어 갈 때는 기관총 소리가 계속하여 났다. 한참 있다가 다시 빠져 나오곤 하였다. 부상자를 결사적으로 실어 나르는 것 같아보였다. 짚 차가 빠져 나올 때 인민군의 포탄이 차 앞쪽에 터지면 멈칫 섰다가 달려 나가고, 차 뒤에서 터지면 펄쩍 뛰었다가 달아나곤 했다. 용감한 불사신 같았다.

 

  세 번짼가 네 번짼가 불사신 같은 용감한 짚 차가 국군진영에 다 와서 차 엉덩이에 포탄이 터져 자욱한 연기 속에 불사신의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형님과 나는 서로 처다 보며 약속이나 한 듯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성아, 짚 차가 그만 맞았재?」

「응, 그만 맞았다.」

  형님과 나는 두 주먹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산허리가 검은 연기로 뒤덮인 채 땅거미가져 어둡다. 화약 냄새가 풍기는 계곡을 따라 피난처로 살거머니 돌아오는데 동리 아저씨가 우리를 조용히 부른다.

「어이 학생들, 이리 좀 오게!」

「아저씨!」

「음 너희들이 구나」

「이 전쟁통에 너들이 왼 일이냐?」

「하동 갈라고예……」

「큰일 날라고!」

「하동 못 간다!」

「최후 발악 전쟁이다.」

「국군이 전부 쫓겨 가고……」

「어서 집에 가자!」

「아저씨는 여기서 뭐합니꺼?」

「응? 먹을기 있는가 찾아보러고……」

「참, 니 중학생이재?」

「와 예?」

「니 영어 할 줄 알 재?」

「모립니더…….」

「영어사전 볼 줄은 알 재?」

「예-」

「그럼 됐다.」

「어서 집에 가서 너의 형과 상의하자.」

  아저씨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지게의 한쪽 멜 방을 어깨에 걸친 채 걸음을 재촉하여 피난처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든 가족을 불러놓고 비밀같은 상의를 하였다. 미군 한사람을 집 뒤 안 땅굴에 숨겨 살려 보내자고 한 것이다.

 

 원자탄이 터질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둔 깊은 땅굴이다. 그를 위해 사용하기로 하고, 우리 외에는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아저씨는 형님과 나를 데리고 화염이 쌓인 그 계곡으로 다시 올라갔다. 으슥한 계곡의 큰 오동나무 밑 바위틈 속에서 희미하게 신음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형님에게 손전등을 쥐어주며 형의 얼굴을 비추며 학생이라고 말해라 이른다. 우리의 말소리를 들었는지 바위 틈 속에서 철컥하는 소리가 났다. 권총에 실탄을 장전하는 소리같다. 아저씨는 조급하게 속삭이듯 말한다.

「빨리 후라시를 니 얼굴에 비추고 학생이라고 말해!」하고 서둔다.

형님이 어물거리며 더듬거린다. 손전등을 턱 밑에서 비추니 형님얼굴이 머리깎은 몽달귀신같이 보인다. 높고 큰 코가 더 크게 보여 진짜 귀신같다.

「아이 앰 마 스튜 어 덴 트」하고 더듬거린다.

「아이 앰어 스튜덴트!」 조금 빨라진다.

 응답이 없다.

「아임, 스튜던트」

 형님이 다급하게 말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응답이 없다.

 아저씨가 미군의 발언저리에 손전등을 비추어 본다. 미군이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이제 되었다고 하면서 나더러 지게를 가져오게 한다. 아저씨는 미군을 부축하여 지게에 앉히고, 잎이 무성한 나뭇가지 꺾어 나뭇짐처럼 덮었다. 내려오면서 형님은 뒤에 처져 망을 보았고, 나는 맨 앞에서 전등을 들고 신호를 하였다. 아무도 모르게 돌아와 굴속에 그를 감추어 주었다.

  아저씨는 권총을 가진 것으로 보아 장교라고 하였다. 미군은 포탄 파편에 한쪽 엉덩이와 허벅지살점이 떨어져 나가 하얀 뼈가 보였다. 많은 피를 흘린 것 같다. 옷을 찢어 스스로 지혈을 하여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가 우리를 만난 것이다.

 

  황토굴 속은 밤낮 없이 어둡고 습하다. 그리고 냉기가 몸을 식혀 한 여름인데도 선선하다.

  형님은 얄팍한 한영단어집을 펼쳐 지적하면서 미군장교와 의사를 전달하는 통역이 되었다.

  막걸리를 설명하고 먹이는데 반나절이 걸렸다. 매년 6·25만 되면 '지금의 내가 그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어김없이든다. 나는 아직도 그 미군장교의 생사를 알지 못한다.

 

<우정>

  비밀을 지킨다고 노력을 했는데도 보름이 채 되기도 전에, 하동읍내 치안대가 지수까지 수색을 왔다갔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다행이 우리가 있는 곳은 외딴 숲이라 일족을 모르는 분은 고전 사람이라도 우리가 있는 집을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안전을 위해 미군을 앞당겨 돌려보내자고 결정하였다. 미군이 걸어갈 수 있으니 혼자 빠져나겠다고 말하는 것 같다. 미군이 지도를 땅에 그리면서 <메이산! 메이산!>하는 소리와 바다를 지적하는 것을 보았다. 마산을 지적한 것을 알고 노량 가는 길을 가르쳐 주며 바닷길이 안전하다고 믿었다.

 미군장교가 하얀 무명한복으로 갈아입고 밀짚모자를 쓴 채 간간이 절룩이며, 집 앞 논두렁길을 조심조심 걸어가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모자를 벗어 위로 들어 올렸다 내렸다 한다. 감사하다는 작별의 인사다. 참 아름다운 짓말은 정직함이 눈에도 보인다. 슬픔과 기쁨이 이렇게 분명할 수가 있는가!

 우리에게 이 논두렁은 행복만 오가는 길이었다. 그에게는 생과 사의 갈림길 되었다.

 그 미군장교가 떠날 때 그가 차고 있는 야광시계를 벗어 형님 손 목에 채워주었다. 미군이 떠날때 나갔다 돌아온 나를 보고 줄 것이 없자, 군번줄에 끼어있던 군번만 떼어 주머니에 넣고 사진과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송두리째 나의 목에 걸어주면서 다시 찾아오겠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군대생활을 하면서 자랑하던 이 목걸이를 그만 잃어버렸다.

 형님이 얻은 야광시계는 다섯째 자형이 기를 쓰고 빼앗아 갔다. 물론 이분은 내가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에 어려운 친정을 돌보는 누님이 싫다면서 강제 이혼을 하였다. 청년시절에 데릴사위처럼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보은을 배신한 사람으로 나의 일기에 기록되었다.

 

<소년인민군과 노부부>

  9월에 되자 무더운 열기가 식어가듯 전쟁의 소용돌이도 잠잠해 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쌕쌕이, 호주비행기, 이승만 처갓집 비행기라는 별명을 가진<세이브>전투기의 폭격은 기세를 더했다. 어떤 때는 민간도 무차별 폭격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처음엔 우군의 비행기라고 반겨주기도 했었다. 그랬던 우리도 날개 양끝에 럭비공 같은 혹을 붙인 쌕쌕이가 소리도 없이 나타나는 절대적 공포의 괴물이 되었다. 군인이건 민간이건 이 괴물이 나타나면 무조건 지형지물에 몸을 숨겨 피해야만 살아 날 수 있었다. 요즘 공개된 한국전쟁기록에 미공군의 무차별 폭격명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지금도 소름이 끼친다.

 

  어느 날, 아버지와 내가 강둑에 앉아 옛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쌕쌕이> 두 대가 소리 없이 나지막하게 우리 앞을 지나갔다. 나는 피하자고 하였는데 아버지는 민간으로 알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셨다. 그러나 곧 돌아온 그 쌕쌕이 한대가 우리를 행하여 기총소사를 하는 것이었다. 한발치 앞에 두 줄의 촘촘한 탄적을 내면서 총알이 박히고 뜨거운 큰 탄피가 우수수 떨어지자 아버지와 나는 혼비백산하여 원두막 땅굴로 다음 비행기가 오기 전에 숨었던 일이 있었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미국을 믿지 말라더니> 하시며 걱정이라 하셨다.

 

  전투가 잠잠해지자 형님과 나는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두 누님과 자형 몰래 밤중을 이용하여 아버지와 어머님 곁으로 돌아와 버렸다. 비쩍 살이 빠진 우리를 보고 어머님은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애들을 이렇게 굶길 수 없다면서 화를 내셨다. 요즘은 비행기가 무차별로 무섭다고 하시며 땅굴 밑에서 불을 가리고 흰쌀밥을 지어서 달콤한 김치를 두툼하게 찢어 담고 구수한 된장국까지 끓여주신 어머니의 밥상은 꿈속에 그리던 천국의 음식이었다.

 

  형님과 나는 시합이라도 하듯 게걸스레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시고 어머님은 먹을 사람 없으니 천천히 다 먹으라 하신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다. 그 많은 되 밥을 다 먹고 수박 두 개나 먹었는데도 허기는 가시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내일 아침은 안 해도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사흘 먹을 밥을 한 끼에 다 먹었으니 애들을 살리려거든 더 먹이지 말라고 하셨다.

 

  아침이 되었다. 형님과 나는 눈만 뜬채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제 몸보다 큰 도롱뇽을 삼킨 실뱀처럼, 형과 나는 맹꽁이처럼 부풀어 오른 배가 꺼질 그 다음날까지 누어 뒹굴었던 것 같다.

 부모님께서는 우리를 곁에 두고 보시니 안심이 된다 하시면 서도, 인민군들이 부역을 핑계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잡아가고 있으니 주의하라 이르셨다.

 

  9월 초순경이다. 한 인민군이 둑 위에서 따발총을 들고 나타나 총 한발을 하늘을 향에 쏜다. 미처 숨지 못한 아버지가 밭에서 일을 하는 척하신다. 그가 아버지를 강둑 위로 불러올린다. 아버지는 미적미적 시간을 끌며 올라오지를 않자 또 총을 한방 더 쏘면서 빨리 올라오라 명령한다. 어머니와 우리는 원두막 땅굴에 숨어서 말소리를 듣는다. 손에 땀이 난다.

「노인 동무!」

「왜 그러시오.」

「강변대밭에 숨겨둔 소가 노인동무 소지요?」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않고 천천히 둑 위로 태연히 걸어가신다.

「노인 동무! 소를 왜 숨겨두었소!」

「왜 내가 숨기요! 그놈이 대밭으로 들어 간 게지.」

숨어서 듣고 있던 어머니는 애를 태우시며 아버지의 답답한 대답을 걱정하신다.

「우리 소가 아니라고 하면 될 걸…….」하고 애를 태우신다.

「니들 아버지는 너무 정직해서 탈이다.」

 

  소년 인민군이 황소가 있는 대밭으로 함께 가서 소의 고삐가 풀려있는지 묶여 있는지 함께 가보자고 큰 소리로 말한다.

「노인동무의 말이 거짓말이면 이건 반동이요! 알갔소?!」

「또 숨긴들 무슨 반동이요?」

아버지가 겁도 없이 천연스럽게 대꾸를 하시는 모습이 못마땅했는지 따발총구를 아버지 가슴에 들이대며 큰소리로 고함을 지른다.

「동무는 소를 숨겨두었다가 국방군에게 바치려 한 것 아니오?!」하고 말하자 아버지는

「그러면 당신이 먼저 몰고 가시오!」하고 큰소리 치신다.

「강변 대밭으로 같이 갑시다.」하며

  인민군은 아버지의 등을 총열로 떠밀며 앞세워 강가로 내려간다. 어머니는 잘못하다가 아버지가 소를 몰고 그 인민군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둑길 아래 밭을 가로질러 대밭으로 먼저 가려고 애를 써도 미치지 못하였다. 아버지와 인민군이 대밭에 와 보니 천운인지 다행인지 황소의 고삐가 풀린 채 대밭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풀을 뜯고 있었다.

 

  인민군은 아버지의 침착한 행동에 미안했던지 부드러운 말로 이 소를 몰고 함께 가지고 하였다. 그때 막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어머니는 군인동무라 부르며 차분하게 설득한다.

「이 소는 사실상 우리 소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소란 말이오!」

「불쌍한 이웃 어린아이의 솝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소 주인집이 폭격을 당하여 그 부모와 할머니가 모두 죽고, 어린 아이만 살았는데 그 어린 아이도 한쪽 팔다리가 상하여 병원으로 데리고 가면서 살아  남은 이 소를 밭에 혼자 계신 노인에게 맡겨 놓고 간 것 이오.」

「왜 남의 소라고 말하지 않았소?」

「내가 보살펴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하고 그때서야 아버지가 해명하신다.  어머니의 거짓말이 걱정되어서다.

「어찌 하겠소, 노인동무가 소를 몰고 수고 해 주시오.」

어머니는 설득이 무시당하자 슬그머니 화가 치미셨는지 앞을 가로막고 대어들기 시작한다.

「보소 인민군동무, 소도 노인도 없으면 아이가 돌아와 맡긴 소를 훔쳐 도망간 늙은이로 여길 것이외다. 그러니 당신이 몰고 가던지, 우리 두 늙은이를 쏘아 죽이고 가시오!」

어머니는 큰 소리로 소년인민군을 윽박지른다. 인민을 위한다는 인민군이 인민을 죽이는 군인인가 어디 좀 보자고 하시며 대어들었다. 이판사판 대어드는 할머니의 살기에 질린 소년인민군이 뒤로 물러서는 초조한 모습을 눈치 챈 어머니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영감! 돌아갑시다. 총을 쏘아 죽이던지 소를 몰고 가든지, 어서 갑시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앞세우고 뒤에 일부러 천천히 따라오면서 큰 소리로 불쌍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는 시늉을 하셨다.

「보시오! 노인동무 거기 서시오, 안서면 쏘겠소!」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년인민군의 힘없는 정지명령소리를 들은 어머님은 순진해 보였던 소년인민군이 등 뒤로 총을 쏠 것 같지는 않았단다. 소년인민군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직접 소를 몰고 대밭을 나가는 모습을 먼 곳에서 바라보았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유엔군의 폭격기와 전투기가 번갈아 가며 계속하던 공습이 여명이 가까워서야 공습이 멎었다. 기가 질릴 정도로 무섭게 연이어 끝이없는 공습같았다. 들도 산도 시내도 온통 쑥밭이 되어 버렸다. 고향의 아름다운 풍광은 그때에 모두 사라지고 아름다운 시운의 노래를 간직한 섬진교도 세 토막으로 잘려져 버렸더. 섬호정도 강변의 오링징이 정자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동란의 여명>

  그날 밤 형님과 내가 물도랑에서 잡아온 피리 붕어를 손보시는 아버지에게 인민군이 몰고 간 소가 누구의 소인지 물어 보았다.

「그 소가 우리 솝니까?」

「니들 큰 자형소다.」

「그 소가 어디 있다가 나왔습니까?」

  아버지는 무책임한 큰 자형이 못마땅하다는 말씀을 하신다. 두서너 달 전에 비리 먹어 금방 죽을 것 같은 소 한 마리를 질질 끌고 와서 <이놈이 남해까지 갈려면 며칠 쉬어야 할 것>이라며 구례, 남원을 다녀와서 몰고 가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맡긴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자 너의 자형은 남해로 바로 가버렸다. 흙 간에서 금방 죽어가는 놈을 술과 약초를 먹여 두 이래를 치료하여 가까스로 기운을 차리게 한 이놈을 밤에 몰고 나와 낮에는 대밭에 숨겨 소의 기를 살리고 밤에는 원두막에 아래에 짚단을 깔아 잠을 재웠다. 우리는 그 황소 배 밑에 땅굴을 파고 숨어살았다.

 

  니들 큰 자형이 구례로 가면서 병든 그 소가 이틀을 넘기지 못할 것을 알고 갔단다. 내가 살려내었다는 소식을 듣고, 장인이 제보다 더 유명한 소의 명의라 하면서 그 소를 나에게 선물로 넘겨주었다. 아버지는 하필 병든 소를 선물하여 큰 고초를 겪게 했다고 하시며, 어떤 경우든 부모를 시험하는 자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오늘 그 소를 살리려고 정성을 들였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눈에 이슬이 맺힌다. 우리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 황소가 우리와 운명을 같이한 귀한 소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이른 새벽이다. 아버지가 밖에서 어머니와 우리를 부르시며 어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귀에 익은 황소의 울음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우리가 잠든 후에 그 황소가 코뚜레만 단 채 원두막을 제집처럼 찾아와 잠을 잔 것이다.

 그렇게 무서운 공습 속에서도 살아 도망쳐 돌아온 우리 황소가 이처럼 햇빛이 아름답고 신기한 아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버지가 조용하게 탄식하신다. 동란의 여명이라!

이젠 공습도 없고, 국군도 인민군도 보이지 않는 높고 파란 하늘뿐이다.

구월이 노 오란 바람소리를 내며 가을을 부끄러운 듯 슬며시 밀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