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오지바위(五指岩)의 전설

<아버지와 늦둥이>

제 1 부

1

    동란이 일어나기 전 여름도 유달리 더웠다. 원두막에서 한 발짝도 나가기 싫을 만큼 한낮의 태양은 사막처럼 뜨거웠고, 은모래 펄에 이글거리는 아지랑이가 <중섬>을 불태웠다. 석양이 들판에 긴 그림자를 만들고, 섬진강물을 가득히 담은 긴 강둑이 너뱅이에 땅거미를 내릴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분홍빛이 물든 구름이 무등산을 덮고 있는 섬진강을 눈부시게 바라보셨다.

   시끄러운 달구지와 행인들의 인기척이 그친 강둑에는 광평 송림에서 강물을 타고 내려오는 높새바람이 시원한 송진 냄새를 실어온다. 해 지기를 기다리던 나는 심심했던 마음이 느긋해진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 허락을 얻어 집으로 일찍 돌아갈까 궁리만 하고 있는 내 마음을 아시는 듯, 늦둥이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웃음이 입가에 묻어난다.

  아버지는 나를 일찍 보내준들, 먼저 집으로 돌아온 나를 어머니가 야단을 칠 것이 분명하니, 어차피 함께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여름 방학이나 농번기 방학 때면, 친구들은 여행이나 캠핑을 간다.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라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겠다고 어머니와 약속을 했던 것이다. 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의 벌이, 상보다 더 무서운 걸 알고 후회도 했다.

   아버지는 세상이 수상하여 여름이면 수박과 참외 같은 농작물을 밭떼기로 훔쳐가고, 가을이면 무 배추와 가을 수확물도 송두리째 훔쳐가는 야적들의 천지가 되었으니, 나눔의 두레로 여겼던 <서리>라는 미풍마저 없어졌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아버지는 근래 인근 5일장을 전후하여 수레꾼들이 해질녘이나 이른 새벽에 달구지를 대어놓고 작물을 통째로 자기 것처럼 도매로 넘긴다고 하셨다.

  나는 여름방학 때 아버지의 식사교대를 해 드리거나, 새참을 갖다 드리기로 어머니와 약속을 한 것을 아시고, 심심찮게 해 주시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었고, 묻는 말에도 천천히 대답해 주셨다. 어떤 때는 늦은 대답 때문에, 바보 같은 질문이 부끄러워 딴 짓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런 아버지가 오늘은 긴 이야기를 하여주신다.

「요새도 너희들이 광평 송림 앞강에서 멱 감고 놀지?」

「예, 선생님도 못하게 하는데 수영하는 애들이 많아요.」

「너는 오지바위 앞에서 수영하지 마라라.」

「왜 그런데 요?」

「건너편 강변에 있는 오지바위 잘 알지?」하고 아버지는 진지하게 나를 쳐다보신다. 나는 양 볼을 빨며, 입을 쫑긋하게 세우고 아버지를 장난처럼 쳐다보았다.

「그 오지바위가 어떤 사람의 손이란다. 그래서 오지바위(五指巖)라 한단다.」

「예?」하고 놀란 나는 머리가 쭝긋하게 치솟으며 소름이 확 끼쳤다. 아버지는 두려워하는 나를 안심 시켜주듯,

「그 오지바위 전설을 얘기해줄까?」하시며 곁눈으로 살펴보신다.

「예, 해 주이소.」

   어둑어둑해진 들판의 주위가 갑자기 무서워지고, 솔 냄새 풍겨오던 산들 바람도 차갑게 느껴졌다. 나는 오금이 저려 일어났다. 앉았던 자리에 땀이 났는지, 궁둥이에 축축하게 붙은 옷을 털어내고, 아버지 곁으로 다가 앉으려는 나에게 집단 끝자락을 밀어내 주신다. 아버지의 체온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아버지는 무서움을 털어주듯, 따뜻한 손으로 등을 쓰다듬어 주신다.

「고려시대였다. 전라도 보성에 효자가 살았는데, 성은 선(宣)씨고 이름은 윤지(允祉)라는 사람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단다. 이 효자의 부모님 고향도 관운장의 고향인 중국의 하동과 악양의 동정호 근처에 살았던 명나라 사람이었는데, 고려사신으로 왔다가 이곳이 좋아 머물게 되었단다. 보성에 산지 두어 해가 지난 추운 겨울날, 그 어머니가 이상한 풍토병을 앓게 되었다. 효자는 고려 천지를 다니며 한의를 모셔왔으나, 어머니의 병명도 알아내지 못하였고, 기어이 말문을 닫은 채 식물인간이 되었단다.

  효자는 함박눈이 내리는 날 저녁에 머리를 깎고, 냉수목욕재계를 하고, 삼베옷을 입은 채, 기도를 하였는데, 싸리문 밖에서 목탁을 치며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왔단다.」 <어이할고, 제 몸만 알고, 내 마음의 부처를 모르니 낭패로고!> 효자는 스님을 모시고와 깊이 잠든 어머니를 보여드렸다.

  「향수가 상사로다. 여름하늘을 엄동설한에 찾으시니, 운명도 저주로다.」하고 푸념하는 스님에게 약방문을 물었다 「도원의 천도면 모를까 가망이 없소.」하며 탁발을 들고 떠나려 한다. 효자는 황급히 막아서며,

「천도를 구할 방법을 알려주시오.」하고 통사정을 했으나,

「딱하구려, 물길이 얼었으니, 용왕인들 찾아갈까?」하며 가망 없듯이 떠났다.

  효자는 몸이 얼어버린 듯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간신히 싸리문을 잡고 집안으로 들어와 죽담에 오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아 졸도해버리고 말았다.

   그 집 앞을 지나던 한 선비가 <봄이 아직 이른데 무슨 잠을 여기서 자느냐!>하며 효자를 흔들어 깨운다. 효자가 눈을 떠 보니 3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였다. 너무 반가워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어서려고 하니, 손을 뒤로 숨기며 <아들아, 아직 때가 아니다.> 네 혼자 일어나라 하신다.  효자는 아무래도 몸이 움직이지 않아, 어머니의 병환을 말씀드렸더니,

 <기다려 주지 않는 산 아래, 두꺼비가 사는 강으로 가거라.>하시며 효자의 등을 떠밀어 주었다. 효자가 넘어지면서 기둥에 머리를 부딪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함박눈이 이불처럼 포근하게 덮어주고 있었다. 열었던 몸이 풀려 팔다리가 움직였다. 방으로 기어 들어와 아버지가 현몽하여 알려주신 곳을 생각해 보았다.

 <기다려주지 않는 산>이라면 무등산(毋等山)이 아닌가. 두꺼비가 산다면 섬진강이다. 효자가 이웃어른에게 물어보았다. 고향이 하동이라는 그 어른은 <백사청송십리강변>앞에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하여, 무등산(霧登山)이라 부르는 산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섬진강이 무등산을 감돌고 있어, 마치 넓은 치마폭 같은 산자락이 강물을 담은 듯이 보인다고 했다. 그 무등산 물속 밑에서 산꼭대기까지 용천굴(龍天窟)이 뚫려있고, 짙은 안개가 끼면 산이 울고 강물이 소용돌이를 치는데, 그때에 용천, 하강한다고 하여 무등산(霧登山)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효자는 부친이 현몽하여 <기다려 주지 않는 산>이라고 한 것은 지체하지 말라는 경고가 분명했다. 효자가 찾아와 본 무등산은 여인이 양팔을 벌리고 아이를 안아 젖을 주는 형상이었고, 넓은 치마폭 같이 펼쳐진 산자락이 강물에 잠겨있는 형상 있었다.

  강 건너편 넓은 백사십리를 울타리처럼 솔밭이 깔려있는 절경은 신선의 고향이었다. 효자는 뜻이 이루어 질 것 같은 마음으로 얼어붙은 강으로 들어와 큰 구멍을 뚫고 물속을 내려다보며 간절한 소망을 빌었다.

「용왕님, 천도를 구해주세요!」

「도원으로 데려다 주세요!」하고 같은 말만 반복하였다.

  밤을 새워 기도하기 사흘째 되는 새벽이었다. 여명이 몽롱하게 비칠 때, 섬광이 번쩍하고 강물위로 솟구쳤다 떨어졌다. 큰 황금잉어가 효자의 양발을 개고 앉은 다리위에 떨어져 안긴 것이다. <제발 살려 보내주세요!>하는 간절한 애원이 들렸다. 효자는 황금잉어가 얼어 죽을까 걱정되어 얼른 강물에 넣어주었다. 물속에서 큰 소용돌이가 일었다.

  효자는 그날도 종일토록 용왕께 빌었다. 해질 무렵, 물속에서 큰 소용돌이가 일더니 황금빛이 번쩍하고 물위로 솟아올랐다. 효자는 눈이 아찔하여, 감았다 떠보니, 얼음구멍 맞은편에 청년이 미소를 짓고 앉아있었다.

「지난번 순례 때 당신의 통곡소리를 듣고 망동하여 옷고름에 감겨 되돌아가지 못하는데, 선비의 착한 마음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선비가 효자라 늦게 인사를 드립니다.」하고 공손히 목례를 한다.

「아니, 그때는 왜 사람으로 둔갑하지 않았소?」하며 효자가 말한다.

「새벽에도 나는 사람이었으나, 효자의 눈이 어두웠지요. 지금은 마음이 통하여 효자의 곡소리가 용궁까지 들려와, 사연을 알아오라 하여 다시 왔습니다.」

「청년은 누구요?」

「해수용왕(海水龍王)의 둘째 왕자로 강과 호수를 다스리는 수로왕자입니다. 새벽에 은혜를 입고 인사도 없이 떠났지요. 이제 보답을 하고 싶으니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간절히 묻는다.

  효자는 어머님의 병환에 천도가 있어야 한다기에, 용왕님께 빌어 도원을 다녀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로왕자는 침통한 어조로 비장한 결심을 하는 듯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한번은 도와 드릴 수는 있으나, 선비께서 감당해 내실 수 있을지가 걱정입니다. 저의 운명이 정해지는 약속이니까요.」하고 불안한 듯 말한다.

  「저의 목숨인들 못 바치겠소?」하고 효자는 확답하였다. 그러나 수로왕자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처럼,

  「저의 천명도 효자의 약속에 달렸습니다. 약속이란 남의 생명도 지켜주는 것이지요.」하고 수로왕자는 비장한 눈으로 효자를 쳐다본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 약속을 지키리다.」하고 장담한다.

효자의 의지가 너무나 강직하자, 수로왕자는 뱉은 말을 거둘 수 없음을 알고,

 「섣달그믐밤 자정까지 두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는 명주실타래 12개를 이음새 없이 이어가지고, 이곳에 와서 저를 불러야 합니다. 만약 약속을 어기면 해수문(海水門)이 닫혀 도원의 길은 물론, 저도 용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섬진강 이무기로 천명을 마치게 됩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수로왕자는 하늘을 우러러보더니, <신선의 도움 없이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말하면서 용궁으로 돌아갔다. 엊그제 동지가 지났다. 엄동설한에 명주실을 뽑는 데가 어디 있으며, 보름 남짓한 날짜에 그토록 많은 큰 명주실타래 12개를 어떻게 구하여 두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게 이음새 없이 이어놓아야 한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었다. 그 길이가 수 천 수만리나 되는데 그것을 어디에 쓴단 말인가!

 

2

   이야기를 하시는 아버지도 추임새를 중간에 넣어 탄식을 하시며, 불쌍하고 안타까운 듯 혀를 쯧 쯧 차시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실감난 표정을 지으시며 해설연출까지 더해주셨다. 나는 미리알고 싶은 조바심으로 잠시 이야기를 멈추신 아버지께 다급하게 묻는다.

 「아버지, 효자가 명주실을 구할 수 있어요?」하고 걱정스럽게 묻자

 「그럼, 구해야 사람이 살지. 명주실을 구해오는 이야기도 길고 재미있단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른 이야기로 해야 재미있고 좋을 끼다.」하시며 나를 돌아보신다.

  「다음에 꼭 해주시지 예?」

  「그러마. 이야기 중에도 조금씩 나오기도 한다.」

  아버지는 허리춤에서 짤막한 곰방대를 꺼내어 담배통을 담배쌈지 큰 주머니 속에 양손으로 넣고 한참을 만지작거리시며 연초를 꾹꾹 잰 담배통을 내려놓으신다. 그리고 담배쌈지 바깥쪽 작은 주머니에서 쑥 솜을 떼어 하얀 차돌위에 올리시고, 왜말로 <야쓰리(쇠줄)>로 만든 강철편(鋼鐵片)으로 부싯돌을 치신다.

  어두운 밤에 번쩍번쩍 섬광이 빛나며 쑥 솜에 불이 붙고, 향긋한 쑥 냄새가 몽개몽개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를 타고 내 코에 닿는다. 아버지는 불붙은 쑥 솜을 담배통위에 올려 엄지손가락으로 지긋이 눌려 붙이고, 양쪽 볼이 옴팍 들어가도록 곰방대를 힘껏 빨아, 담배에 불이 붙으면 엄지손가락을 떼신다. 아버지의 특유한 진한 담배냄새가 코끝에 묻었던 쑥 향기를 지워버린다. 그래도 그 때의 담배냄새가 싫지 않았다.

  「아버지! 성냥으로 부치시지 예?」하고 어려운 부싯돌로 힘들게 불을 붙이느냐고 하면,

  「뭐가 급해서, 어둡고 바람 부는 밤에는 불도 안 무섭고, 부싯돌이 더 멋지고 운치가 있어 좋단다.」하시며 느림과 여유를 즐기는 것도 운치라고 하셨다.

  나도 재미있을 것 같아 아버지 몰래 부싯돌을 쳐보았으나, 좀처럼 부싯돌에 불꽃이 틔지 않았다. 나는 오기가 났다. 시간만 나면 아버지 몰래 부싯돌 치는 연습을 했다. 왼손 금지손가락에 물집이 생기고 아팠다. 그래도 아버지가 일을 하실 때면 연습을 계속하던 어느 날, ‘퍼석’하는 소리를 내며 쑥 솜에 불이 붙었다. 너무 기뻐서 불이 붙은 쑥 솜을 들고 아버지에게 뛰어가 자랑을 하였다.

  아버지는 <구용이도 이제 신선이 되었구나!>하시며 기특한 듯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다음부터 아버지가 곰방대에 담배를 재실 때면, 나는 쑥 솜에 부싯돌을 거어 쑥 솜에 불을 붙여 드렸다.

  어느 날, 아버지는 <네가 부싯돌로 불을 붙이듯이 모든 일을 수련하듯 정성을 드리면 이루지 못할 어려운 일이 없다>고 하시며 <精神一到 何事不成>이란 말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아까 어디까지 이야기 했지?」하고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신다.

  「명주실타래 구해오는 이야기부터 예.」

  「음, 시간이 너무 늦었지? 오늘은 그만하고 내일 계속하자.」하시며, 짚자리를 들고 일어나신다.

  「아버지는 언제 가실 낀데 예?」

  「나도 가야지. 너 배고프지?」

  「예…….」

   오늘 하루는 너무도 빨리 지나갔다. 아버지가 이렇게 재미있게 이야기를 들려주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버지와 함 께 집으로 돌아온 말썽꾸러기를 어머님은 대견스럽게 보시며 웃으신다. 회초리로 야단만 치실 줄 알았던 어머니의 웃음을 처음 보았다.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다.

「구용이가 아버지하고 같이 들어오다니, 이제 다 컸네요.」하고 어머니가 칭찬을 하시자, 아버지도 웃으시며,

「내일도 같이 들어 올 걸, 아마.」하고 약속하듯 대답 하신다.

  어머니께서 직접 차려주시는 아버지와의 겸상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버지가 꼭 남겨주시는 1/3의 하얀 쌀밥을 내가 더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가 남겨 주신 밥을 먹게 된 것은 자연스럽게 버릇이 되었다. 아버지는 내가 밥을 빨리 먹고 먼저 일어나는 것을 앉히시고, 어른과 겸상을 할 때는 수저도 나중 들고, 찬도 어른이 들고 난 것을 먹어야 한다. 또 수저도 어른이 놓은 뒤에 놓고, 기다렸다가 직접 상을 물려드리는 예절을 익혀야 어진 선비가 된다고 하셨다.

  오늘은 점심시간이 너무 기다려졌다. 새참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작은 누나에게 아버지 새참을 서두르자 누나는 이상하게 여긴다. 새참 이야기만 하면 뺀질뺀질 핑계를 대다가, 어머님 호통을 듣고 나서야, 눈물을 훔치며 들에 나갔던 내가, 자진하여 서두르는 행동이 이상하게 여겨졌던 모양이다.

「구용이가 오늘은 왼 일이래? 참 별일이네.」하며 누나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내 딴엔 아비지한테서 들은 이야기가 있어, 아는체 해보려고 오지바위 이야기를 물어 보았다.

 「누야, 오지바위 이야기 아나?」

 「오지바위? 광평 송림 앞강에 있는 오지바위 말인가?」

 「응.」

 「그 오지바위는 와?」하고 누나가 되묻는다.

 「준비 다 됐나? 이리도, 갈란다.」

  하고 나는 새참 바구니를 빼앗듯이 쳐들고, 나는 듯이 대문을 뛰어넘는다.

 

3

  새참 심부름이 이렇게 즐거운 것도 처음이었다. 새 참이라야 소주 반병에 정구 지짐 몇 쪽을 꽃 접시에 담고, 용무늬가 새겨진 네모젓가락 통이 전부다. 평소에는 이것도 무겁고 귀찮았는데, 오늘따라 아버지의 새참이 너무 볼품없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버지―!」

  「오-냐, 어서 오너라! 오늘은 빨리 왔구나.」

  「아버지, 어서 오이소 예?」

  「아니다, 원두막에 두고 이리 오너라! 나중에 먹으마.」

  강둑에서 수박밭으로 길게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 끝에는 석양을 등진 아버지의 실루엣 영상이 장군처럼 거대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내가 밭고랑을 장애물 경기처럼 홀딱 홀딱 뛰어넘으며 아버지에게 달려오는 것을 보시고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신다.

  「야야, 천천히 오너라! 수 박 줄기 밟을라.」

   나는 숨을 할딱거리며 아버지 곁에 털 석 주저앉자마자 아버지의 팔을 끌어당기며 숨찬 목소리로,

  「아버지 이야기 계속해 주이소.」

  「오늘은 전부다 해 주이소, 일부로 일찍 왔어 예.」

  강둑을 단숨에 뛰어 올라와 숨이 차다. 아버지는 붉은 노을을 <북새>라 하셨다. 아버지는 언제나 솜처럼 부드러운 엷은 구름이 붉게 물들어 무등산을 덮고 있는 석양을 좋아하셨다.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흔들며 이야기를 졸랐다.

  「오냐, 그러 마.」하고 대답하시며,

  「구용아, 저 <북새>를 가슴에 담으면 인정이 많아진단다.」

  「<북새>를 가슴에 어찌 담아요?」

  「이렇게 양팔을 들면서 높새바람을 천천히 마시는 기라. 아버지 하는 거 보래.」하시며 석양의 무등산을 바라보며 다리를 벌리고 두 팔을 날개를 펴듯 천천히 머리위로 올려 나란히 세워, 팔꿈치를 꺾어 가슴 앞으로 나란히 내리시며 들어 마신 단전의 심호흡을 뱉어내신다. 항상 오줌장군을 짊어지고 다니시던 아버지가 이처럼 멋있고, 유식한 어진 선비이신 줄을 이제야 알았다. 아버지는 모르시는 것이 없었다. 자꾸 물어보고 싶었다.

  「아버지, 높새바람이 뭔데 예?」

  「동북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동북간이 뭔데 예?」

  「해가 뜨는 동쪽과 북쪽 사이다. 그러니까 <무등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지.」

  우리 집 앞에 사는 어깨동무 회경이 아버지는 일제 때 합천군수를 하신 분인데, 아버지를 항상 <이 생원>이라 부르셨다. 가끔 들길에서 새참을 들고 가는 나를 만나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구용이 아버지는 오줌장군을 지신 어진 선비니라. 효도해야 하느니!>하셨던 생각이 났다.

  「구용아! 오늘은 네가 수박을 한번 세어 보거라!」

   하시며 아버지는 너 마지기가 옷이 넘는다고 하셨다. 황금참외를 심은 세고랑은 빼고 수박만 세어보라고 하셨다.

  「내일까지 세면되지 예?」

  「아니다, 아버지가 새참을 먹는 동안 세야지.」

  「어찌 세는데 예?」하고 다시 물었다.

   아버지는 한 고랑만 세면된다고 하셨다. 한 고랑에 심은 수박포기와 한 포기에 열린 수박 개수가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매일 밭고랑을 순번대로 바꾸어 세어보면 전체 수박개수를 알게 된다고 하셨다. 숫자가 맞아야 매매할 때, 서로 손해 보는 일이 없다고 하셨다. 도매상인이나 이웃들도 신농씨라 하시며, 영농법을 묻기도 하셨다. 그 당시 진주농대의 유기농업 표본농장으로 지정되어, 견학을 오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새참을 드시는 동안 아버지가 지적해 주신 둑 안쪽으로부터 세 번째 고랑의 수박을 세어보았다. 똑 같은 크기의 수박이 두개씩 같은 간격으로 진열된 것처럼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그 넓은 밭에 수박이 한 개만 없어져도 쉽게 알아내는 아버지의 신기한 마술을 그때서야 알았다. 수박넝쿨 속에 숨어있던 고슴도치 한 마리가 놀라 도망가다가 수박 껍질에 상처를 입혔다. 나는 수박을 다 세고 개수를 말씀드렸다.

  「잘 세었다. 오늘 또 수박하나가 줄었구나.」하시며 밭으로 내려가시더니, 고슴도치가 상처를 입힌 수박을 따 가지고 오셨다. 오늘은 나에게 수지맞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원두막 천정에 끼어둔 낫을 뽑아 반달모양의 수박 두 덩어리를 양손에 쥐어 주시며, 천천히 먹으라고 이르신다.

「욕심내어 먹다가 죽는 사람도 있단다.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 먹어라. 그리고 수박씨는 그대로 삼키면 신선이 된단다.」하셨다.

  나는 수박을 한 입 가득히 베어 물었다. 양손에 수박을 들고 뱉어내지도 못하고 더 씹지도 못하는 나를 보시고, 오른손의 수박을 받아주시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웃으신다. 입안의 수박을 다시 꺼내어 수박씨를 고르고 천천히 먹는 것을 보시고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그 수로왕자가 말이다…….」

   나는 찔끔하고 놀라며 수박을 물고 아버지 곁에 다가앉았다. 그리고 소리 나지 않게 수박을 삼켰다. 아버지는 곁눈으로 나를 보시며 이야기를 하신다. 약속한 그믐날이 되자 수로왕자는 얼어붙은 강물 밑에서 효자 보다 먼저 와서 얼음 수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그러나 해가 지고 삭풍이 눈보라를 몰고 오는 바람에 천지가 눈으로 덮여 약속한강심의 수문도 찾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제발 효자가 시간 안에 명주실타래를 구해 와서 용궁 해수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걱정이다. 수로왕자는 초조하게 가다리다 못해 해수문을 한 번 더 둘러보고 오는데 약속한 수문에서 수로왕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왕자니-임, 수로 왕자님.」

  수로왕자가 밖으로 나와 보니 수문 앞에, 눈을 뒤집어 쓴 효자가 비리 먹은 늙은 나귀를 몰고 명주실 통발을 실은 썰매돛배를 끌고 왔던 것이다. 열려있는 수문의 얼음 두께는 석자가 넘었다. 수로왕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효자 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이제 어머님의 병환을 구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두 삼랑>의 정이 효심에 감동하여 상상도 못한 일을 하였습니다.」하고 수로왕자가 찬탄했다.

   나는 처음 듣는 이상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자 또 조급하게 물었다.

  「아버지, <두 삼랑>이 누군데 예?」

  「뽕과 누에를 길러 명주실을 만드는 신선이란다.」

  「그 신선한테서 명주실을 어떻게 얻어 왔는데 예?」

  「명주실을 구해오는 이야기가 너무 길어서 나중에 따로 하자고 했는데?」하시며 칭찬 하듯,

  「구용이, 학교에서 공부 잘 하겠네.」하신다. 나는 속으로 부끄러웠다.

  「아버지! 명주실 구해오는 이야기부터 해주시지 예? 더 재미있다면서요.」

  「그러면 이야기가 지루해질 낀데. 알았다. 수박이나 어서 먹어라!」

   하고 아버지는 잠시 이야기를 멈추시며 곰방대를 피워 무신다. 나는 이야기 듣느라 먹지 못한 수박을 부지런히 먹어치웠다. 그러자 아버지도 담뱃대를 손바닥에 쳐서 재를 털고 허리춤에 꽂으시며,

  「어디보자. 그 때 수로왕자가 헤어지면서 뭐라고 했지?」하고 나에게 물으신다. 나는 걱정하는 수로왕자의 말이 생각났다.

  「신선의 도움 없이 어림없다고 했어요.」하고 대답하자,

  「구용이가 이야기를 잘 듣는구나.」하시며 아버지의 말씀이 조금 빨라지신다. 아마도 긴 이야기를 줄여 넘기고 싶으신 것 같았다.

 

 

제 2 부

1

  효자는 어머님 병 고칠 일념으로 무턱대고 약속을 했지만, 신선의 도움 없이는 어렵다는 수로왕자를 말을 듣고 절망해버렸다.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함박눈은 삽시간에 수문 앞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효자를 앉은 그대로 덮어 버렸다.

  눈이 그친 맑은 다음날 강변길을 오가는 사람들은 강 복판에 부처같이 큰 눈사람이 만들어져 있는데, 살아있는 사람처럼 신기하다고 야단들이었다.

  「아버지, 효자가 얼어 죽었어요?」하고 나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직 안 죽었다.」

  「눈에 덮여 얼음덩이라가 되어도 살아납니까?」

  「암, 살아나고말고. 북극 에스키모인도 얼음 속에서 살고, 흰곰도 눈 속에서 겨울잠을 자지 않느냐.」

  「효자가 잠을 자면 명주실을 언제구합니까?」

  「아니다. 효자는 아버지와 돛단배를 타고 제비가 사는 강남으로 떠났다.」하고 효자 아버지가 다시 찾아오는 이야기를 해주신다.

  「아들아, 절망하지 말고 내 손을 잡고 일어나 이배를 타거라. 시간이 더디구나.」하시며 서두르셨다. 효자는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 전에는 손을 못 잡게 하시더니, 오늘은 왼 일입니까?」하며 의심스럽게 물어보자, 「그때는, 저승과 이승의 영성을 합칠 수가 없었구나.」

  「지금은 왜 다르십니까?」하고 효자가 물었다.

  「네가 수로왕자를 만난 그 때부터 신선의 영성이 통했단다. 너의 지극한 효심 때문이니라.」하시며 칭찬하였다.

   그때야 효자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무거운 팔다리가 훨씬 가벼웠다. 아버지가 끌고 온 썰매돛배에 타자, 아버지는 돛을 올렸다. 삭풍이 기다린 듯 불어주기 시작하니 썰매돛배는 질풍처럼 남쪽으로 미끄러져 갔다. 삽시간에 강 하구를 벗어나 바다의 물결을 가르고 있었다. 제주도 한라산도 멀어지며 따뜻한 남쪽바다로 구름처럼 흘러간다. 아들은 아버지를 돌아보며,

  「명주실을 구해야 한다는 걸 어찌 아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수로왕자가 명주실을 구하는 연유를 설명하신다. 「천상의 상제도, 바다의 용왕도, 지하의 염라대왕도 서로 다른 범주를 범하지 않으면서, 만물을 다스린단다.」하고 말했으나 아들은 깨닫지 못하고,

   「명주실을 구하는 연유와 상관이 있습니까?」하고 효자가 다시 묻자,「용왕의 도움을 받으라는 말을 듣고, 나는 너를 이곳으로 인도 하였다. 너의 효심이 수로왕자의 도움을 얻게 된 것이다.」하고 말해주자 아버지의 능력을 믿고,

「아버지가 명주실을 구하주실 수는 없을 까요?」하고 물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안타까운 듯이,

「어떤 신선이라 해도, 삼신세상의 범주는 서로 간섭치 못하는 것이라, 수로왕자가 명주실을 구하는 것도, 네가 나와 함께 강남으로 가야하는 것도 같은 연유니라.」하고 측은한 마음으로 설명하신다. 그리고 지상신선이 아니고는 하늘의 신물을 얻어올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2

   나는 신선이 된 효자가 영원히 죽지 않으면 어찌되는지 궁금하였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또 물었다.

 「아버지, 효자가 신선이 되어 안 죽으면 동방삭이가 됩니까?」

 「아니다. 신선도 잘못하면 벌을 받아 죽는다. 사람처럼 몸이 썩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위, 돌부처, 장승, 나무나 짐승이 되는 것도 있고, 산, 강, 들판, 호수 같이 자연모습으로 변하여, 사람에게 신선의 죄를 본받지 않도록 교훈을 준단다. 신선이 된 효자가 벌을 받아 바위가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느냐.」하시며 허리춤에서 곰방대를 꺼내신다.

  「아버지, 신선도 작은 잘못은 용서를 받지요?」

  「어림없다. 신선은 크고 작은 일이 없고, 선악도 없단다. 세상 사람이 크고 작은 죄로 구분하고, 선악도 구분하고, 행복 불행도 구분하여 차별하는 핑계를 만들어 낸 것이란다.」

  나는 무슨 말씀인지 어려웠다. 돛단배가 제주도를 지나 어디쯤 갔는지 물었다.

  「아버지, 효자가 탄 돛단배가 어디까지 갔어요?」

  「아마 강남땅에 이미 도착했을 끼다.」하고 아버지는 웃으신다.

  「제트 비행기보다 더 빠르네요?」

  「구용아, 바람에 구름이 빠를까? 비행기가 빠를까?」하고 아버지가 물으신다.

  「선생님이 바람에 구름이 더 빨리 간대요.」

  「그렇고말고. 효자부자는 구름보다 더 빨리 간단다.」하시고 담배연기를 천천히 불어 내신다.

  「어찌 그리 빨리 가는가요?」

  「신선은 인간세상의 5만 년 전이나, 5만 년 후까지도 마음대로 다녀 올수가 있단다. 그래서 거리가 시간과 같단다. 세상 사람은 과거, 현재, 미래가 따로 있는 것처럼 구별 하고 있지만, 신선은 멀고 가깝고, 오래되고 새로운 것이 하루나, 한 시간과 같은 것이니라.」하셨다.

  「강남에 명주실이 있어요?」하고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니다, 이곳에 온 것 보다 몇 배나 더 가야 된다. 강남에서 또 2100년 전의 세상으로 더 가야 <두 삼랑>을 만날 수 있으니 큰일이 아니냐?」하시며 아버지는 곰방대를 털어 허리춤에 꽂으신다.

   아버지는 나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2100년 전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강남에 도착한 돛단배는 기화요초가 아름답게 피어 있는 장강을 따라 내륙깊이 들어가면서 배를 대고 물어보는 곳마다 <두 삼랑>의 거처를 물었으나, 모두가 정신병자처럼 취급하며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해도 저물고 시장 끼도 들었다. 이번에는 북쪽강변 응달진 곳에 배를 붙이는 잔교가 있어 그곳에 배를 대었다. <추로객잔(鄒魯客醆)>이란 큰 간판이 눈에 띄었다. 무거운 객잔 문을 밀고 들어갔다. 방울소리가 들렸으나, 음산한 식당 안에는 손님이 없었다. 효자 부자는 식당 한 가운데 있는 둥근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계십니까?」하고 효자는 공손하게 사람을 불렀다. 객잔 안이 울리면서 여기저기서 부드러운 먼지가 가물거리는 벽 등에 뿌리는 듯이 떨어진다. 오래토록 사용하지 않은 옛날 객잔이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효자에게 한 번 더 불러 보라고 하였다. 효자는 자리에 일어나서,

  「주인어른 계십니까?」하고 한 번 더 공손하게 불렀다. 그러자 주방 쪽에서 구부정한 양 어깨에 머리가 묻힌 것처럼 목이 짧은 백발노인이 나오시며, 서있는 효자를 보고 묻는다.

  「자네가 <자론>가?」하고 묻고서 대답도 듣지 않고, 효자의 부친을 보고,

  「당신은 공 선생이고?」하시고 역시 대답도 듣지 않고 주방 쪽으로 걸어가시며 손님이 일찍 왔다고 하는 말이 들린다.

   효자부자는 이상한 곳이라 생각하면서도, 공자를 만나 도움을 받을 것 같은 기대가 있었다. 효자부자는 <추로객잔>이 2100년을 거슬러 갈 수 있는 기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신선의 영성이 없는 범인의 눈에는 결코 이 <추로객잔>의 간판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효자부자가 이상하여 어떤 곳인지 두리번거리고 했을 때, 객잔의 문에 붙은 작은 방울이 댕그랑 울리며 문이 열렸다. 덥수룩한 수염을 길제 늘어뜨린 한 선비차림과 짧은 수염과 큰 키에 듬직한 체구의 두 선비가 들어왔다.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어두운 벽 등잔이 아래의 구석진 자리에서 효자부자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효자의 아버지가 두 분이 공자와 그 제자 자로임을 금방 알아차리고, 아들을 시켜 우리가 차지한 이 자리로 모시고 오도록 일렀다. 효자는 공자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합장 인사를 드리며,

  「선생님을 모시고 배움을 얻고자 합석을 청하오니 거절하지 마옵소서!」하고 인사를 하였더니 공자는 기다린 듯 기쁘게 생각하며,

  「배움을 나누는데 기쁘지 않는 선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감사히 응하겠습니다.」하며 흔쾌히 합석을 하여 주었다.

   네 사람은 서로 소개를 하고, 행선지를 물었다. 공자는 추나라로 가는 길에 <두 삼랑>을 만나 도움을 청할 일이 있다고 하였다. 효자도 <두 삼랑>의 도움을 얻으러 왔다고 말하였다. 그랬더니 공자는 반가워하며,

  「선비가 고려국의 효자 <선 윤지>지요?」하며 합장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대성인께서 소생의 이름을 아시는 연유를 물어도 되는지요?」하고 효자는 공손하게 물었다.

  「내가 <두 삼랑>을 만나려고 <자로>를 보내 안부를 물었더니, 오늘 선비가 이곳으로 올 것이니, 인도해 달라는 부탁이 있었지요. 이 <추로객잔>은 <두 삼랑> 부모님의 객잔이나 오래전에 문을 닫았지요. 귀빈을 맞이하기 위해 그토록 많이 겹쳐진 시간을 걷어내고 간판을 보게 한 것이지요. 선비의 지극한 효심에 감천한 것입니다.」하고 효도를 칭송하였다. 이때에 노부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부리만두>와 물 주전자를 내려놓고 들어갔다.

 

3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자, 어느새 뿌연 연무가 끼인 아침이 되었다. 네 사람이 배를 타고 돛을 올리자 마치 끌려가는 배처럼 달린다. 효자가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더니 <추로객잔>의 모습도 잔교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공자를 돌아보자 미소를 지으며,

   「시간이 겹치면 마음의 눈도 겹치게 됩니다.」하고 공자가 말씀하셨다.

   「성자께서 가르침을 주시겠습니까?」하고 효자가 그 의미를 물었다.

   「시간이 겹치는 것은 인간의 <망각>입니다.」하고 공자가 말했다.

   배는 여러 구비를 돌아 올라갔다. 호수처럼 잔잔하고 어두운 큰 동굴 앞에 이르자 닻을 내리게 하고, 공자와 자로가 내렸다. 효자도 따라 내렸으나 아버지는 배에 머물겠다고 하셨다. 영문을 물었으나 그냥 다녀오라는 손짓만 하신다. 공자가 이 모습을 보고,

   「선비는 아버지를 방해하지 말고 어서 떠납시다.」하며 길을 재촉한다.

   공자는 그곳을 떠나면서 효자가 돌아올 힘든 아홉 구비의 길을 알려주었다.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돌아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작은 능선에 올라 뒤를 돌아보았더니, 호수도 배도 눈에 보이지 않고 사방은 끝없이 펼쳐진 뽕밭이었다.

   공자는 <자로>를 보내 <두 삼랑>에게 손님을 모시고 왔다는 소식을 미리 전하여 주었다. 자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효자는 아버지가 배에서 내리지 못하는 까닭을 물어 보았다. 그러자 공자는,

   「부친은 지하신선의 범주를 지키고, 효자를 위해 마지막 일을 준비하는 것이외다.」하고 알려주었다.

    한식경이 지나서야 <자로>가 돌아왔다.

   「선생님께서 손님만 모시고 들어오라 하십니다.」하며 자로의 표정이 험악했다. 공자는 자로의 급한 성정을 아시고,

   「군자는 남의 말을 믿어야 하느니라.」하시며 자로를 처다 보신다. 자로가 뽕나무 가지를 꺾어 바짓가랑이의 먼지를 털면서, <아낙이 스승님을 놀리다니!>하며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자와 효자가 작은 농가에 다다르니, 허리가 가늘고 키가 큰 중년부인이 소녀를 데리고 공자 앞으로 나왔다. 뽕나무 그늘 밑에 놓인 둥근 탁자위에 세 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두 삼랑>은 공자와 효자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그들 곁에 앉았다. 소녀가 수정잔을 공자와 효자 앞에 내려놓고 호로병을 열자 진한 오디향기가 진동을 한다. 검붉은 오디 즙을 수정잔에 채우고 병마개를 닫아 탁상위에 올려놓고 돌아갔다. 주위를 둘러본 <두 삼랑>은 공자에게 말씀을 드린다.

   「<자로>가 해답을 미리 알고 싶었던지, 해답을 대라고 서둘러 묻기에, 대성인이 그런 지혜도 없이 주유천하를 나서면 무슨 가르침을 주겠느냐고 핀잔을 주었지요. 화를 참지 못하는 그 제자에 그 스승은 아닌지 궁금합니다.」하고 공자를 쳐다본다. 공자는 너그럽게 웃으며,

  「지혜란 한울이 모든 생명에게 내려 준 길(道)입니다. 다만 각자 지닌 성품에 따라 다를 뿐이지요. 지혜란 지식이나 학식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아시는 부인이기에 도움을 청한 것이니 탓하지 마십시오.」하며 공자는 <두 삼랑>에게 무례를 범한 <자로>의 잘못을 인정하였다.

   효자는 두 성인이 말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불초 소생이 문제가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하고 공손히 물었다. 그러자 공자가 허리춤의 비단 주머니에서 칠색무늬가 새겨진 큼직한 수정구슬 두 개를 꺼내어 탁자위에 내려놓으며,

   「구슬에 있는 구멍크기와 같은 굵기의 명주실을 관통시키는 것이요.」하고 공자는 말씀 하였다. 그러자 <두 삼랑>은 말했다.

「이 해답이 두 분을 오도록 만든 일의 시작과 끝이랍니다.」하였다.

효자가 구슬을 들고 살펴보았다. 수정구슬은 어린애 새끼손가락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돼지 코처럼 나란히 뚫려 있었는데, 처음은 바로 들어가 구슬 안에서 바깥 주위를 아홉 구비를 돌아 나란히 나오게 되어 있었다. 효자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참 묘하게 시작과 끝이 이어지는 신물이라, 신비하기도 합니다.」하고 <공자>가 <두 삼랑>을 쳐다보며 해답을 묻는다.

「내 생각으로는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으니 정답은 아니지요. 해지기전에

해내지 못하면 효자는 돌아가지 못합니다.」하고 <두 삼랑>이 말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공자>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내가 주유천하를 시작한 것도, 이 문제가 생긴 것도, 효성이 지극한 선비의 연분이니, 선비가 해내야 할 해답입니다.」하고 효자를 믿음으로 쳐다본다.

「소생은 생각을 못했으니, 지혜를 베풀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하고 자리에 엎드려 간청 하였다. 그러자 <두 삼랑>이 소녀를 부르며 준비해둔 것을 가져오라고 이른다. 소녀가 바느질 통을 가져 왔는데 가는 명주실부터 그 구멍크기와 같은 굵기의 투명한 명주실이 들어 있었다.

「선비가 구하는 명주실이 어떤 것이요?」하고 <두 삼랑>이 효자에게 물었다. 「두 사람이 매달려도 끊어지지 않는 명주실로 큰 타래로 12개라 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공자님이 가지고 오신 구슬에 제일 큰 명주실을 끼워야 합니다.」하며 효자를 바라본다. 그 때 <공자>가 말하기를,

「사는 것도 길이요, 죽는 것도 길이니, 모두 의지가 하는 것입니다.」하며 용기를 준다. 효자가 가는 명주실을 몇 겹을 말아 한쪽 구멍에 얼마간 밀어 넣고, 있는 힘을 다하여 불어보기도 하고, 다른 구멍을 빨아 보기도 하였으나, 명주실이 한두 구비를 돌아 갈뿐 더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목이 타고 현기증이 났다. 앞 있는 검붉은 오디 즙을 벌컥벌컥 마셨다.

신기하게 머리가 맑아지고 힘이 솟았다. 한 번 더 힘차게 불거나 빨아 보았다. 그래도 네 구비를 돌지 못했다. 이 모습을 본 <두 삼랑>이 웃으며,

「힘이란 사는 방법이지, 의지는 아니라오.」하고 말하였다.

「벌레보다 못한 이간이라 하는 말은, 인간의 지혜가 벌레보다 많다고 착각했다가, 그 대등함에 놀란 표현이지요. 사는 것과 죽는 것이 길이란 것을 잊거나,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벌레는 결코 없지만, 영장이란 인간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요.」하며 효자를 바라본다.

효자는 지금도 미련한 짓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기력을 소진하고, 신선 주를 마시고도 반성을 하지 못했던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땅바닥에 떨어진 신선 주를 냄새를 맡고 개미가 몰려 있었다. 효자는 개미 한 마리를 잡아 허리에 가는 명주실을 묶어 구슬구멍에 밀어 넣어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개미가 아홉 구비를 돌아 나올 수 있는 길이 생각났다.

<공자>와 <두삼랑>은 눈을 감고 잠자듯 조용하였다. 이때 효자가 큰소리로,

「됐습니다, 개미의 의지가 해냈습니다.」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개미가 선비의 말을 들어 줍디까?」하고 <두 삼랑>이 장난처럼 묻는다.

「아닙니다. 개미도 신선 주를 좋아 하나 봅니다. 반대쪽 구멍에 신선 주를 넣어 주었더니, 아홉 구비를 돌아 나왔습니다. 작은 미물의 의지로 해냈습니다.」하며 기뻐했다.

공자가 신선주잔을 들어 눈을 감고 감사기도를 올리고 마신다. 자리를 일어서며,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하고 <공자>가 합장 인사를 하자, 「추나라에 다녀오시는 길에도 들려주십시오.」하고 <두 삼랑>이 답례를 한다.

<공자> 일행이 떠나자, <두 삼랑>은 일각을 지체하지 않고 명주 실타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선비의 효심이 지극하여 상제의 은혜가 큽니다. 이 수정구슬 두 개는 명주실 12타래를 이은 시작과 끝이오. 이 구슬 없이는 명주실을 거둘 수가 없고, 재앙이 되는 것이니 정직한 효심으로 신의를 지키시오.」하고 경고를 하였다.

「선비가 돌아가는 길은 명심하고 있겠지요. 힘들 땐, 구슬의 도움이 있을지도 모르니 정심 하시요.」

  <두 삼랑>은 효자를 뜰아래 있는 창고로 안내 하였다. 수레에 효자가 명주실을 관통한 수정구슬 두 개가 맨 앞쪽 통발에 이음새 없이 매달려있고 12개가 차곡차곡 실려 있었다.

  <두 삼랑>은 효자가 이 수레를 끌고 해지기 전에 아버지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으며, 혼자 돌아가는 길은 올 때와 달리 힘들 것이니, 정성과 믿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올 때는 성인과 함께 하였고, 신물(神物)이 없었지만, 갈 때는 누구나 탐내는 신물을 가졌고, 정성과 믿음을 잃으면 되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귀의 마탈심이 신물을 탐하기 때문이오.」하며 서둘러라 하였다. 효자는 수레가 무거울 것을 염려 하였으나, 빈 수레처럼 가벼웠다.

   「엄청난 명주실을 실었는데, 이렇게 가벼울 수가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두 삼랑>은 웃으며,

   「젊은 선비가 신선 주를 마시고, 역발산 기개를 얻은 탓이오.」하자, 소녀가 그 호로병을 효자에게 넘겨주자, <두 삼랑>이 어렵고 힘들 때 써보라고 했다.

   「은혜를 갚을 길을 아득합니다.」하고 효자가 인사를 했더니,

   「어머님 병환을 고치고 효도하는 것이 갚는 길이오.」하며 먼저 창고를 나갔다. 효자는 수레의 멜빵을 오른쪽 어깨에 걸고 활처럼 휘어진 손잡이를 끌고 창고 밖으로 나왔다.

 

4

   아직 해는 중천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두 삼랑>과 처녀도 없을 뿐 아니라, 주위의 넓은 뽕밭은 없어지고, 하얀 갈대꽃이 펼쳐진 언덕바지에 싸늘한 갈바람이 불었다. 공자의 말처럼 시간이 겹쳐진 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고, 아버지가 걱정 되었다. 그때, 오늘도 허탕을 쳤으니, 어떤 놈의 등을 쳐야지, 빈손으로 돌아 갈 수 없다는 말소리가 들렸다. 명주수레 앞길을 막는 도둑 패거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효자는 정신을 가다듬고 내리막이니, 수레를 밀고 나가면 야적들이 피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

   마음을 다잡고 순간적으로 수레를 돌려 질풍처럼 밀고 내려갔다. 한사람이 끌고 오던 수레에 사람은 없고, 수레만 질풍같이 달려오니 야적패들은 놀라 양 옆으로 피해버렸다. 뒤도 보지도 않고 한참을 달렸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 같았다. 한구비가 지난 것인지 경사도 멎었다. 다음의 오솔길은 백일홍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좁은 길이었지만, 힘들지 않게 두 번째 구비를 돌아 나왔는데, 그 다음 구비를 돌아가야 할 오른편 길에 어떤 늙은이가 길에서 졸고 있었다.

   세 구비 길에 들어선 효자는 노인 앞에서 공손히 길을 열어 달라고 했더니, 다리가 불편해 쉬고 있으니, 십리만 수레를 태워 달라고 했다. 효자는 허락을 했더니 늙은이가 수레에 타고, 수정 구슬을 양손에 하나씩 잡고 통발에 등을 기대고 편안히 앉아서 그대로 잔다.

   가벼웠던 수레가 갑자기 무거워졌다. 힘들게 끌고 오던 수레바퀴 한쪽이 진흙땅에 빠져 이대로 혼자 도저히 끌어 낼 수가 없었다. 효자는 늙은이에게 잠시 내려 달라고 부탁을 했으나, 십리까지는 약속대로 내릴 수가 없다고 떼를 쓴다. 효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노인을 섬기는 정성으로 보살피며, 수레를 끌어내고 다시 모시겠다고 사정을 하였다.

    그러나 어림없었다. 효자는 제발 업혀달라며 등을 돌려 한참을 서 있었더니, 겨우 업혀서 땅에 내렸다가, 수레를 끌어내고 다시 수레에 업어다 실어 주었다.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무거운 수레를 끌고 십리를 왔다고 생각했을 때, 효자를 골탕 먹이든 늙은이가 수레를 내리며,

   「허참, 실없는 놈을 봤나, 나쁜 놈 되긴 틀렸어. 해전에 가야지.」하고 투덜거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그 노인이 잡고 있던 수정구슬에 황사가 똬리를 틀고 앉은 모양이 눈에 띄었다. 그때 왼편 언덕길로 노란황사 한마리가 서리 맞은 뱀처럼 천천히 기어가고 있었다.

    가파른 언덕길인 네 번째 고비만 무사히 지나면, 나머지 구비는 어렵지 않을 것이란 공자의 말이 떠올랐다. 다행이 수레가 가벼워져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왼쪽으로 돌아 뱀이 들어간 언덕길에 오르자 수레가 노인이 탈 때처럼 무거워 졌다. 정신을 가다듬고 한 발짝 두 발짝 앞으로 끌고 나갔다. 땀이 쏟아지고 바짓가랑이에 비를 맞은 듯이 땀방울이 흘러 신발을 적신다. 비탈이 심하여 수레를 중간에 멈출 수도 없었다. 여기서 멈추면 수레와 함께 굴러 떨어질 것 같았다.

    마음을 다잡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중턱에 오르자, 수레를 멈추고 숨을 돌릴 수 있는 작은 평지가 있었다. 너무 지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갈증에 입이 말라붙어 숨쉬기도 어려웠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쓸어 질 것 같아, 수레를 붙잡고 가까스로 일어서자 호로병이 눈에 띄었다.

    병마개를 열고, 신선 주 한 모금을 입에 넣었다. 어느새 갈증이 가시고 산뜻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서야 <두 삼랑>의 말이 생각났다. 병마개를 꼭 막아 명주실 속에 간직하고 경사 길을 올랐다. 마귀에게 빼앗겨 버렸던 힘을 되찾은 효자는 산등성이를 힘들지 않게 넘었다.

   나머지 다섯 구비의 길은 오색으로 구분되어 있고 그 마지막 길에 접한 강가에는 효자가 타고 온 돛단배가 있었다. 효자는 흥분된 마음을 진정하고 마지막까지 조심하여 금, 목, 수, 화, 토의 상극(相克)의 마탈심을 물리치고, 아버지가 기다리는 강나루에 도착하였다.

 

5

   이곳에 도착 했을 때는 풍요로운 여름 이었었는데, 지금은 늦은 가을처럼 싸늘한 갈바람이 몸서리쳐지게 불었다. 효자는 명주실통발을 옮길 준비를 하며 아버지를 찾았다. 아무데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산 너머로 갈아 앉았다.

  「아버지, 아버지!」하고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효자는 서둘러 명주실통발 하나를 들고 배위에 올랐다.

  선창에서 잠이든 아버지를 발견 하고 아무리 흔들어 깨웠으나, 눈을 뜨시지 않았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귀를 얼굴 가까이 대어 보았다. 가는 숨소리가 마찰음을 내며 금방 끊어질 듯하였다. 효자는 호로병을 열고 신선 주를 한 모금 입에 담아 아버지의 입으로 넣어 주었다. 그러자 숨소리가 좀 커지더니 큰 기침을 두어 번 하시고 눈을 뜨고 아들에게 묻는다.

  「지금 해가 있느냐?」하고 물었다.

  「조금 전에 해가 졌습니다. 왜 그러십니까?」하고 의아하게 묻는다.

  「네가 언제 도착하였느냐?」

  「해가 지기 적전입니다.」

  「어떻게 나를 깨웠느냐?」하며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아들을 쳐다본다. 효자는 해질 무렵에 이곳에 도착한 이야기와 아버지를 깨운 이야기를 상세히 말 해 드렸다. 그러자 아버지는 서두르신다.

  「어서 명주실통발을 실어라. 순서를 바꾸지 말고 차례대로 실어라!」하시고

  「두 수정구슬이 달려있는 통발을 맨 앞으로 옮기고, 수레에 실어온대로 옮겨 라!」하신다.

  「아버지도 도와주시지요?」하자, 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혼자 하란다. 통발을 모두 옮기고 닻을 올렸다. 뱃머리를 돌려 동쪽으로 돌리고 돛을 올리자 기다린 듯이 갈바람이 불어준다. 어느새 강가엔 빈 수레도 갈대밭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장강의 하구를 벗어나 붉은 하늘 속에 하얀 백설로 뒤덮인 제주도 한라산이 눈부시게 다가왔다.

   이때 아버지가 아들을 돌아보며 자기의 운명을 실토하였다.

  「아들아, 이제 눈 덮인 섬진강이다. 내 말을 듣고 괴롭거나, 슬퍼하지 말아라.」하시며 결심을 말씀하신다.

  「염라대왕께서 밤낮을 가림 없이 효자의 일을 도울 수 있게 허락하신 시한이 오늘 해지기까지다. 그런데 나는 대왕의 명을 어기고 돌아가지 않았다. 나는 지옥문을 들어가지 못하고 학대받는 미물로 여생을 마치게 된다. 네가 나를 깨웠으니 탓 할 수도 없구나. 어차피 받아야할 벌을 너를 위해 마지막으로 쓰고 싶구나.」하고 말씀하셨다.

  「섬진강에 입구에 들면, 삭풍이 몰아칠 것이다. 돛대를 꺾고 돛배를 썰매로 끌고 가야 한다. 어차피 당나귀로 변할 내가 썰매를 끌고 것이다. 당나귀가 되는 순간부터 길을 알지 못하게 되므로, 효자는 나를 끌고 수로왕자와 약속한 수문에 약속시간을 대어 가야한다. 날이 어두워 약속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수문위에 눈부처가 앉아 있을 것이니, 그곳에 도착하면 눈부처를 밀어내고 수로왕자를 불러라. 시간이 급하구나.」하고 아버지는 강위로 올라온 설매 앞으로 걸어가시더니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었다.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불러본들 소용이 없었다. 자정이 다 되어 급하다.

   「불효자를 용서 하십시오!」하며 눈물을 흘리며 당나귀를 몰고 눈보라를 헤치며 달렸다.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 당나귀는 흰 거품을 물고 기진맥진 한다. 효자는 호로병을 열고 당나귀 입에다 남아 있는 오디 즙을 모두 부어주었다.

    당나귀는 질풍처럼 달려 어느새 눈부처 앞에 다다랐다. 효자가 눈부처를 밀어 보았으나 꿈적도 하지 않았다. 명주실 끝을 눈사람 목통에 걸고 당나귀가 끌게 했더니, 펑 소리를 내며 눈부처가 넘어지고 그 밑에 큰 수문이 열려 있었다.

   「왕자니-임, 수로왕자 님.」하고 효자가 큰소리로 불렀다.

 

 

제 3 부

1

   아버지 숨을 죽이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시며, 약속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떠냐? 재미있지?」하시며 나를 쳐다보신다. 나는 효자 아버지가 너무 불쌍하고 걱정이 되었다.

  「아버지, 신선이 당나귀가 되어도 죽지 않습니까?」하고 묻자,

  「아니다. 신선이 당나귀로 바뀌면, 당나귀의 마음으로 산단다. 다행히 신선의 당나귀가 되면 인간의 당나귀 보다야 낫겠지만.」하시고 담배를 피우신다.

  「아버지, 산이나 강이나 큰 바위 같은 것은 모두 신선이 벌을 받아 생긴 것인가요?」

  「전설이나, 신화가 있는 것은 그렇다고 봐야지?」하시고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신다.

   오늘 하루도 짧았다. 중국까지 가서 2100전의 공자님도 만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오디 즙을 만들어 먹으면 신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버지와 함께 들어오는 나를 보시고 어머니는,

  「우리장군,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시게, 이 어미가 준비를 할 테니.」하신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오디 즙 요.」하고 말했다.

  「오디 즙? 오디 즙이 뭣 고?」하고 어머니가 묻자, 곁에 있는 막내 누나가,

  「어머니, 오돌갭니다. 뽕나무열매 요.」하고 설명한다.

  「음, 오디술은 있어도, 주스는 없는데, 술이라도 한잔 올리지. 야야, 아버지 저녁밥상 반주로 오디술 잘 익은 것으로 한 병 올려라!」하신다. 아버지도 껄 껄 웃으시며,

  「구용이 덕으로 귀한 오디술을 반주 하겠는 걸, 허 허.」하고 즐거워하셨다.

   오늘은 한 낮부터 종일토록 이야기에 몰두 했던 탓인지 나는 피곤했다. 저녁을 배불리 먹고 오디술까지 맛을 본 탓인지, 식곤증이 덮쳐와 초저녁부터 깊은 잠이 들었다. 서늘한 새벽이 되자 이불을 당겨 덮고 새로 잠이 들었는지 눈썰매를 신나게 타는 꿈을 꾸다가 누나가 깨우는 바람에 잠을 깨었다.

   「구용아, 야가 무슨 늦잠을 이리 자노?」하며 나를 흔들어 깨웠다. 오전 새참 시간이 다되었다. 나는 후닥닥 세수를 하고 서둘러 채 새참 바구니를 들고 강변 들판으로 나갔다. 아버지는 강둑위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시는 것 같았다. 메아리를 울리듯이 멀리서부터 아- 버- 지- 하고, 길게 부르면 아무 대답도 하시지 않고 웃기만 하시던 아버지가 요즘은 곰방대를 든 손을 높이 들고 친구처럼 흔들어 주셨다.

   「아버지, 오늘 두 가지 술을 가지고 왔어요.」하고 자랑을 했다. 칭찬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버지는 못마땅한 하셨다.

   「다음에는 한 가지만 가지고 오너라.」하시고, 새참 바구니를 열고 오디술병을 원두막 천정에 끼어두고 자리에 앉으신다.

   「구용아, 너도 사이좋은 친구하고 놀고 싶지?」

   「예. 그래야 재미있어요.」

   「거 봐라, 술도 사이좋은 친구가 있단다.」

   「술은 너무 고집이세고, 잘난 체 하는 음식이라, 물밖에 친한 친구가 없단다. 그리고 곡식으로 만든 술하고, 과일로 만든 술은 사이나 너무 나빠서, 두 가지 술을 함께 마시면 몸 안에서 저들끼리 싸우는 바람에 사람 몸에 병이 생긴단다. 그래서 술은 한가만 취하지 않게 마셔야 좋은 음식이 된단다.」

   「아버지, 오디술이 나쁜 술입니까?」

   「아니다. 술은 나쁜 것이 없다. 취하게 마시면, 모두 나쁜 술이 되지. 네가 학교가면 다음 새참 때 먹으려고 저장해 둔 것이다.」하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신다.

   「아버지, 오늘은 이야기 다 해주이소.」하고 처다 보았다.

   「이제부터 본래 이야기가 시작 되는데, 오늘 다 되겠나?」하시며

   「어제 효자부자가 명주실을 싣고 송림앞강 수문까지 잘 도착 했었지?」

    「예. 효자가 수문을 열고 수로왕자를 불렀어요.」

    「그렇지. 수로왕자가 해수문이 닫힐 시간이 임박할 때 효자의 목소리를 듣고 강위로 올라가니, 곧 죽을 것 같은 늙은 당나귀를 끌고 온 효자가 도착한 것을 보고 반가워하며 어서 해수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서둘렀다.」

 

2

   수로왕자는 시간이 촉박하다고 서두르며 효자에게 명주실 끝에 매달린 수정구슬하나를 주면서 강변 왕대 숲 튼튼한 대 뿌리에 세 겹 세 매듭으로 묶어두고 수정구슬이 보이지 않게 해두라고 말했다.

   수로왕자는 다른 한쪽 구슬을 석자길이 남짓한 대통 속으로 통하게 하여 자기의 허리춤에 동여매었다. 대통을 명주실이 잘 빠져나오도록 수문에 얼음벽 두께에 맞춰 세워서 눈얼음으로 붙여두었다. 모든 채비를 마치자, 효자 에게 당부하듯,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예, 그러지오.」

   「효자는 이 영단을 삼킨 즉시 내 뒷들미를 두 손으로 잡고 잠시 눈을 감고 숨을 멈추시오!」

   「나귀가 얼어 죽을 텐데.」하고 효자가 걱정하자

   「우리가 도원에서 천도를 가지고 나오면 <두 삼랑>이 저 영물을 거둘 것이오!」하며 다른 생각은 말고 서두르라고 했다. 파란영단을 삼키고 왕자의 뒷들미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눈을 감았다. 수로왕자는 다이빙 하듯 강물 속으로 들어간다.

    싸늘한 냉기가 전신을 바늘처럼 찌른다. 몸은 차갑게 굳어지며 의식이 몽롱해진다. 두 손은 빨판처럼 수로왕자의 등에 달라붙어 있다.

   효자는 사람이 갈 수 있다는 도원은 '몽유도원'이다. 한 시성이 이 도원을 보았으나, 두 번 다시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수로왕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떠시오, 선 씨! 이제 눈을 떠도 됩니다.」

   수로왕자의 말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어항 속의 궁궐처럼 아름다운 용궁이 그림같이 보였다. 효자의 두 손은 커다란 황금잉어의 등지느러미를 붙들고, 두 다리는 젓가락처럼 굳어 있고, 입은 말할 수가 없었다.

   수로왕자는 용궁 대문근처에 있는 산호 숲으로 들어가 이곳이 우리형제들이 어릴 때 숨바꼭질하던 놀이터라 하였다. 아직도 수로왕자의 말만 듣고 있을 뿐 물을 수가 없었다.

    수로왕자의 뒷들 미에 손이 붙은 채 산호 숲을 걸어 나와 용궁대문 앞에 이르자 거북방패를 짊어진 뚱뚱한 수문장이 부하들과 함께 환영을 나오면서 공손히 절을 올린다.

   「왕자님 이제 오십니까?」

   「고맙소, 귀두 별장!」

    이 말소가 들리자 지금까지 굳었던 몸이 풀린다. 그러자 왕자는 나를 돌아보며,

   「선 씨! 내 뒷들미를 놓아주시오, 도망은 안 하리다.」 그때서야 말문이 열리고 손이 풀린다.

   「여기가 어딥니까?」

   「용궁입니다. 용왕의 허락을 얻어야 물길이 열립니다.」

    효자와 왕자가 귀두장군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와 용왕 앞에 무릎을 조아리니 용왕께서 왕자를 조건 없이 살려준 선 씨의 착한 마음을 칭찬하신다.

   「상제께서 효심이 지극한 그대를 보내어 왕자까지 구해 주었구려. 왕자를 구해준 은혜를 어떻게 갚을 고?」하고 용왕이 문는다.

    효자가 고개를 돌려 왕자를 쳐다보자, 왕자는 용왕을 바라보며 효자가 바라는 바를 말씀 올리고 동행을 간청한다.

   「효자는 천도를 얻어 어머니의 병환을 고치려 하나이다. 소자가 입은 은혜에 보답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소서!」

   「왕자는 천도를 얻지 못한다! 천상과 해수가 엄연히 다른 줄 어찌 모르는고?」

    용왕이 걱정 하자, 귀두 별장이 조용히 용왕 앞으로 나선다.

   「대왕마마, 소신의 생각으로는 왕자께서 물길만 안내하심이 어떨지 ….」

   「거참 옳거니, 별장!」

   「왕자는 은인을 대동하고 수로만 안내하면 어떨 고?」하고 왕자에게 묻는다.

   「그렇게라도 갚고 싶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수로왕자는 한번만 다녀오도록 하라.」하고 허락을 하신다.

    왕자와 효자는 용왕께 인사를 드리고 별장의 호위를 받으며 궁문을 나서자 별장이 작은 주머니를 왕자에게 건네주며 대왕마마의 영단이라고 하였다. 용궁을 나오자 왕자가 산호 숲으로 들어가 묶어 두었던 명주실을 허리에 다시 동이고 정벌을 떠나는 장군처럼 명령한다.

   효자는 왕자의 뒷들미를 잡자 이번에는 온몸이 나른하게 가벼운 풀잎처럼 하늘거린다. 주위의 풍광이 어슴푸레 사라지고, 왕자는 비단돌고래가 되어 따뜻한 조류를 따라 남쪽으로 헤엄쳐갔다. 몽롱한 정신이 조금씩 맑아지며, 왕자의 말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고 내 말을 잘 들으시오.」

   효자는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비단돌고래 등을 타고 앉아 있는 곳은 넓은 강 같기도 한데, 주위는 검푸른 녹음으로 덮인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있고 안개가 수면과 산 계곡에 자욱하게 깔려 있는 것이, 꿈에 본 도원경이다.

   왕자가 선 씨를 태우고 강 호수에 이어진 계곡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는데, 구비를 돌 때마다 두세 개의 물길이 나누어지건만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똑 같아 보였다. 아홉 구비를 돌아들자 자욱한 안개바람 속에 그윽한 복숭아 향기가 풍겨나기 시작한다.

   조금 더 들어가니 비단치마폭 같이 화려하고 높은 절벽아래 깊숙이 숨은 동굴이 보였다. 이곳에 들어서자 수로왕자는 영단주머니를 효자에게 넘겨주며 사용법을 설명한다.

   「이곳이 도원으로 가는 기문입니다. 사람이 꿈에서만 볼 수 있는 <몽유도원>이지요.」

   「이 영단은 빛을 색으로 바꾸어 만든 용왕의 영물입니다. 사람이 영생할 욕심으로 신선이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신선은 사람으로 화신하여 정직한 사람의 어려움을 보살펴 주기도 하고, 징벌하기도 하면서 상제의 명을 어기지 않는 한 영생합니다.」수로왕자가 설명한다.

 

3

    나는 <몽유도원>은 전에 들어 본적이 있었다. 그런데 <영물>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말하는지 알고 싶었다.

  「아버지! 영물이 뭔데 예?」

  「영물은 신선이 착한 사람을 도와줄 때 쓰는 물건이나 음식이다.」

  「도깨비감투 같은 거 요?」

  「그렇지!」

  「부자 방망이는 예?」

  「그것도 영물 이고.」

  「삼년 고개도, 젊어지는 샘물도 영물 입니까?」

  「그렇지, 다 영물이다. 구용이가 아는 것도 많구나.」

    아버지가 칭찬을 해주면 기분이 좋다. 그래서 모르는 것은 잘 물었다.

   「아버지, 영생은 먼데 예?」

   「사람이 안 죽고 영원히 사는 거지.」

   「천당 가고, 극락 가는 거요?」

   「아니다. 천당과 극락은 죽은 뒤에 가는 곳이지.」

   「사람이 안 죽으면 신선이고, 신선들이 사는 곳이 낙원이란다.」

   「효자가 가는 도원도 낙원 입니까?」

   「그렇지, 사람이 낙원에 들어가려면 신선이 되어야 갈 수가 있단다. 그래서 신선되는 약을 먹는 단다.」하시며 사람이 신선이 되는 길을 찾다가 종교라는 것이 생겼다고 말씀 하셨다.

   옛날에도 사람이 신선 되는 길을 찾았단다. 중국에는 신선이 되는 도교가 있고, 공자 맹자같이 성인이 되는 유교가 있지. 영국에는 기독교도가 있고, 서반아나 이태리에는 천주교가 있다. 인도는 불교와 힌두교가 있고, 티베트에는 라마교가 있고, 중동 사막국가에는 회교하고 유대교가 있는데, 서로 좋은 신선을 모신다고 원수같이 지금도 싸움질만 하고 있단다. 이러다간 신선이 되기도 전에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나라는 그런 종교가 없어 예?」하고 나는 물었다.

   「진짜 신선이 되는 종교는 우리나라에서 늦게 생겨났지.」하고 말씀하시며 웃으신다. 「어머니가 새벽에 정한 수 떠 놓고 비는 거요?」하며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건 삼신할머니가 아니고 동학이란다. 네 할아버지하고 큰아버지는 동학에 들었지. 나는 그때 구용이 네보다 조금 더 컸다.」

  「아버지는 동학을 믿어요? 유교를 믿어요?」

  「유교는 실천하는 학문이고, 동학은 실천하는 종교니라. 그래서 유교도 불교도 많이 닮았다. 지금은 천도교로 되었다는데, 실없는 사람이 많아 말썽인가 보더라. 구용이 학교서도, 아버지가 동학군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꼭 명심 하거라!」

  「효자가 신선이 되어서, 물속에서도 숨을 쉬는 거지 예?」

  「그렇지. 사람이 신선을 도우면 신선이 되고, 신선이 사람을 도우면 사람으로 변한단다.」

   아버지는 수로왕자가 효자에게 준 주머니의 삼색영단 이야기를 계속하신다.

  「이 영단의 녹색은 지상신선의 몸이 되는 것이고, 파란색은 수중신선이 되며, 붉은 것은 원래의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하고 수로왕자가 설명하면서,

  「나는 효자와 더 이상 동행 할 수가 없습니다.」

  「도원은 사흘만 머물 수 있습니다. 지체하면 영원히 나오지 못합니다.」하고 주의를 주었다.

 

4

  효자는 왕자가 가르쳐 준대로 동굴을 나서기 전에 초록색 영단을 입에 넣었다. 향긋한 꽃향기가 혀 밑으로 번지며 사르르 녹아 버린다. 몸이 날듯이 가벼웠다. 동굴을 나서니 아름답고 조용한 오솔길이 보였고, 그 길은 어릴 때 엄마와 손잡고 함께 걸었던 길 같았다.

  어린아이처럼 뛰어 보았다. 솜을 밟듯 폭신한 땅이 이상했다. 몸은 가벼워 공중으로 날아 갈 것 같았다. 눈 아래 보이는 산과 아름다운 마을은 그림책의 요술공주가 사는 마을 같았다.

   마을 입구 앞에는 넓은 뽕밭이 있고 바깥 주위에는 비단같이 부드러운 삼밭이 펼쳐있었다. 효자는 마음을 진정하고 뽕밭으로 들어섰다. 넓은 뽕밭에서 고운 비단옷을 입고 가는허리를 흔들며 뽕을 따는 부인을 만났다. 어릴 때 어머님 모습 같기도 하고, 어디서 만나 본 듯한 낯익은 얼굴이라, 가까이 다가서서 도원 가는 길을 물어 보았다.

  「아주머니! 도원으로 가는 길이 맞습니까?」하고 공손하게 물었다.

  「명주실을 구하려고 나를 찾더니만 여기서 또 만나는 구나!」하고 쳐다본다.

   효자가 명주실을 얻어올 때의 <두삼랑(杜三娘)>이었다. 이곳에서 다시 만나보니 더 아름다워 보였다.

  「선비의 효심이 천상에 닿았구려! 다행이 <서왕모(西王母)>가 오늘 천도를 따는 날인데 잘 맞췄네.」하고 <두 삼랑>이 말했다.

   <두 삼랑>은 하늘이 점지해준 감천이란다. 뽕밭을 지나면 넓은 모시삼밭이 나오는데 이곳을 무사히 지나야 도원에 들어설 수 있다고 했다. 도원에 들어서면 서쪽 산곡에 있는 정자에서 해지기전에 <서왕모>를 만나야 천도를 얻을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서왕모>를 만나 천도를 얻어 도원을 나올 때까지는 누구에게도 한마디의 말도 해서는 안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상제의 감응 없이는 세상 사람이 도원의 천도를 얻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해주며,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단 한 번의 도움을 주는 은혜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기적>이라 말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당부하기를,

  「작은 욕심도 가져서는 안 된다니 명심하라고 일러준다.」

  「고맙습니다.」

   공손하게 작별 인사를 하고, 가르쳐주는 길을 따라 앞으로 부지런히 갔다. 얼마 가지 않아 길 주위가 삼밭이었다. 좀처럼 길이 줄지 않고 제자리만 걷는 것 같았다.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의 병환을 걱정하는 순간, 삼나무 향기가 코를 찌른다. 머리가 어지럽고 이상한 환상이 유혹하기도 하고, 무서운 협박으로 길을 가로막기도 하였다.

   효자는 <두 삼랑>의 말을 기억하면서 세상 사람이 신선의 나라에 들어올 때는 세심천(洗心川)을 지나야 한다는 말이 이러한 지옥 같은 경계를 지나야 한다는 것을 들었다. 정신을 차려 앞으로 열심히 걸어갔다. 갑자기 진한 향기를 풍기며 아름다운 여인이 둔부를 흔들며 다가 왔다.

  「상제가 점지하신 효자라 하기에 모시러 왔습니다.」하며 방긋 웃는다. 효자는 <두 삼랑>의 말이 생각나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름답고 요염한 여인이 효자에게 다가서며, 두 손으로 손 씨의 목을 안으며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향수냄새를 풍기며 부드러운 입술로 손 씨에게 입을 맞추었다.

   풍만하고 부드러운 가슴을 문지르며 엄청난 힘으로 껴안았다. 효자가 숨이 막힐 정도로 입을 맞추니, 머리가 통째로 촉촉이 젖은 밀가루 반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밀쳐 낼수록 더 세게 옥죄어오는 힘에 효자는 그만 실신 해버리고 말았다.

 

5

     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듣자 오줌이 마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버지, 좀 있다가 해 주이소. 소변 좀 보고 요.」하고 강둑을 엉금엉금 기어 내려왔다.

   「오냐, 어서 갔다 오너라!」

    그렇게 큰 수박 하나를 나 혼자 다 먹은 탓이다. 엉금엉금 기어 논으로 내려가, 바지를 내리고 소변을 보았다. 어- 시원하다. 조마조마한 이야기 바람에 얼마나 참았던지 아랫배가 터질 것 같았던 오줌통이 푹- 꺼지니 배가 쑥 들어가고 속이 후련하였다.

   벌써 어둠이 깔려, 강둑에 계신 아버지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고, 부싯돌 치는 소리와 함께 불빛만 반짝 빛난다. 벌써 저녁이슬이 맺혀 발등이 축축해지면서 풀밭이 미끄럽다. 천천히 기어 올라와 아버지 곁에 앉으며 이야기를 다렸다.

    「아버지, 이여기 해 주이소.」

    「오늘도 너무 늦었지? 나머지는 내일 또 하자.」

    아버지는 이야기를 끝내려면 날을 새야 하니, 내일 또 하자고 타이르신다. 나도 배가 고팠다.

    「아버지, 시장하시지 예?」

    「밥 때가 벌써 지났으니 나도 시장하다.」

    「내일은 다 해주지 예?」

    「이야기를 줄이면 되지.」

    「줄이지 말고 다 해 주이소.」

    「오-냐 알았다. 어서 집으로 가자.」

   아버지가 천천히 일어서며, 오늘은 광평 철교다리발만 있는 철둑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자고 하신다. 아버지는 철로가 없는 철둑길을 둘러서 집으로 오면서 옛날 동학군과 일본군이 하동에서 싸운 이야기를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학군이 광평 솔밭에 모여 남원으로 가기로 했는데, 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송림으로 가신다는 말을 들었지. 내가 호기심으로 뒤를 따라 몰래 솔밭으로 가 보았단다.

   긴 대창을 들고 온 사람도 있고, 대창 끝에 낫을 묶어 든 사람도 있고, 글을 쓴 길죽한 깃발을 대창에 달고 온 사람도 있었다. 한 사람이 솔밭 안에 있는 바위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시간이 없다고 지시를 내린다.

   「우리와 같이 싸우러 갈 사람은 죽창과 낫을 받아 가시오! 조금이라도 싸우고 싶지 않은 사람은 조용히 돌아가시오! 일본군 지원부대가 오기 전에 구례를 지나 남원까지 가야 하오! 경각이 급하니 말씀을 잘 들어주시오!」하였다.

    바로 그때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몰래 송림까지 따라온 나를 알아보시고 네 할아버지는 호통을 치시며 집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야단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말을 듣지 않고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네가 뭣 할라고 여기에 따라왔냐!」

   「큰애 니가 막내 동생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큰형님이 아무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나의 손을 끌어도 내가 막무가내로 딸아 간다고 말을 듣지 않자, 할 수 없었든지 할아버지에게 도저히 고집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 병민이 고집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병민이를 데리고 함께 철둑길 밑으로 둘러 가십시다. 다음에 또 보지요.」하고 큰아버지가 손을 들었단다.

   「그것참, 하필이면 막내가 어찌 알고 따라와서 내…참.」

   할아버지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나의 손목을 낚아채가지고 강변모래사장 밑으로 걸어서 지금 이 철둑길을 돌아오시면서, 큰 형님에게 하시는 말씀이 <돌팍거리만 모두 무사히 넘어가면 되는 디, 모리것다.> 하시며 걱정하시었다.

   일본군이 <돌팍거리> 그때는 양쪽이 바위산으로 길이 좁은 협곡이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지나가지 못하는 좁은 길목이 되어있었다. ―― 처음은 세무서가 들어서 있었고 그 밑에 수리조합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동경찰서가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구구식 일본장총을 든 일본군 열댓 명이 잠복을 하고 하동 읍내를 지나가지 못하게 저지선을 구축하고 있었는데, 지원부대가 올 때까지 사수 할 것이라는 정보도 알고 계셨다.

    수백 명이 넘는 동학군이 머리띠를 하고 동학깃발을 높이세우고 의기양양하게 하동읍을 진격하여 갔는데 <돌팍거리>고개에서 총소리가 콩 볶듯이 들리더니, 얼마 후에 동학군이 하동 읍냇강 ――지금은 하동초등학교 앞의 복개천 도로가 되었다――을 따라 퇴각하는 모습이 보였다. 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나와 같이 한참을 쉬었다가 <돌팍거리>를 지나가는데, 일본군부대가 도착하여 동학군선발대 기수들의 시체를 치우고 있었다.

    일본군부대는 두 대로 나누어 한 부대는 동학군 뒤를 읍냇강을 따라가고 한 부대는 남당 고개를 넘어 송림으로 가는 것을 보았단다. 남도 동학군들은 솔밭에 재집결하여 일본군과 싸우다가 절반이 죽었고, 나머지는 돔박곡――철교가 있는 나룻터――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는데 일본군이 장총을 쏘는 바람에 사람들이 동요하여 나룻배가 전복되어 절반이 죽었단다. 일본군은 송림에 동학군의 시체를 전부 묻었던 공동묘지였단다. 광평 송림은 망국의 한이 서린 역사적인 곳이라 말씀하셨다. 이 동학군 이야기를 학교에서 누구한테도 말 하지 말아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당부를 하셨다.

    아버지가 집에 와서도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것을 보고, 어머님께서 철없는 애를 데리고 친구처럼 그러시냐고 핀 찬이시다.

   「이야기에 애 어른 이 따로 있소? 임자는 참.」하시며 퉁명스럽게 대답하신다.

    아버지는 마루에 걸터앉아 신발을 벗으시며 웃으신다.

 

6

     다음 날도 해가 아직 중천인데 나는 누나를 졸라 새참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달려가듯 밭에 도착하니, 오줌장군에 물을 길러다 넓은 밭고랑 사이에 물을 주고 계셨다.

   「아버지――.」

   「오-냐, 이리 더울 때, 뭣 하러 일찍 와.」

    아버지는 아직도 서너 고랑이 더 남았다고 하시며, 나에게 원두막에 가서 쉬라고 하시면서 노란 참외 두 개를 따서 양손에 한 개씩 쥐어 주신다.

   「한 개는 나중에 먹어라!」

    노란 참외를 <긴 마까>라고 부르는 일본종자라 하시며, 일본사람들이 농작물 종자를 잘 만들어 내고 있지만, 그 사람들이 전부 일본에 잡혀간 조선 사람들 이라고 하시며, 일본도자도 잡혀간 조선 사람한테서 배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씨없는 수박을 만든 우장춘 박사도 조선 사람이라 하셨다. 참외 하나를 다 먹고 나니 배도 부르고 심심해서 아버지가 밭도랑에다 많은 물을 붓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물어보았다.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은 물 아깝다고 안주는 고랑에다 물을 버립니까?」

  「네가 덥고 목마를 때 물고랑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시원하고 물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지지?」

  「예, 진짜 그래요.」

  「사흘에 한번을 주더라도 미꾸라지가 헤엄칠 정도로 고랑에 물을 듬뿍 주면 수박이 시들지 않고 건강해지는 기라.」

   아버지는 수박도 사람처럼 더위를 먹으면 병이 들어, 사람을 해치는 나쁜 수박이 된다고 하셨다. 마치 병든 닭이나 소를 잡아먹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내가 보기에도 상당히 먼 강물을 길어 오시는데도 금세 물을 다 주었다고 하시는 아버지의 부지런한 모습은 진짜 신선같이 보였다. 손을 털며 원두막으로 오신 아버지는 참 바구니를 열어 보시고 기뻐하신다.

   「어디 한잔 해 볼거나.」

   「앗다 야, 오늘은 술 한 병에 고기도 있구나.」

   석양에 붉게 물든 밀짚모자 밑의 하얀 아버지 얼굴이 다정해 보였다.

  「구용이도 한잔 해볼래?」

   「아니요.」

    나는 도리질을 하면서 얼굴을 붉히자 아버지도 웃으시며, 일본사람은 부자지간에 담배는 피우면서도 술은 못 마시게 하고, 조선에서는 그 반대라고 하신다. 왜 그러냐고 묻는 나에게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두 번 세 번 설명을 해 주신다.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술도 예절을 지키며, 과음을 하지 않고, 맑은 정신에서 술을 마시는 습관을 키우도록 일부러 어른들과 함께 술 마시는 시범을 보고 배우도록 가르쳤단다.

    또 술을 적당하게 마실 때는 건강에 도움을 주어, 선비와 군자를 만드는 신비한 음식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라 하셨다. 그러나 담배는 <백해무익>의 마약이라 어른이 되기 전에는 건강을 위해, 담배를 못 피우게 하여, 성인과 미성년을 구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도 하셨다.

    반면에 일본사람들은 예전부터 술과 담배가 다 같이 즐기는 기호식품으로 동일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성을 쉽게 잃을 수 있는 술은 어른들과 함께 못 마시게 하고 담배만 피우게 한 것 같다고 설명하셨다.

    땅거미가 지면서 선선한 바람이 원두막으로 불어온다. 아버지는 오래 기다린 나를 보시고, 다른 아이들은 아버지 이야기듣기를 싫어하는데, 우리 구용이는 아버지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참 기특하다고 칭찬을 해 주셨다.

 

7

   「저녁이슬이 해롭다. 오늘은 여기서 이야기하자.」하시며 자리를 잡으신다.

    나는 노란 참외 한 개를 양다리를 갠 가운데 얹어 놓고 아버지가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디까지 했니라?」

   「여자하고 입 맞추다가 기절 한 것까지 예.」

   「아 그래, 그랬나?」

    한참동안 기절을 했던 선 씨의 귀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며 몸을 만져주며, 흔들어 깨워 주는 바람에 정신을 들었다.

   「삼 독사에 걸렸으니 이를 어쩌나!」

    선 씨는 눈을 뜨고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바로 <두 삼랑> 이었다.

   「천명이 어찌 이리도 기이한고!」하면서 효자가 살아난 연유를 설명해준다.

    삼독사가 선비를 삼키 먹으려다가 몸에 지닌 영단 때문에 다시 토해내는 바람에 살아난 것이오. 앞으로는 무슨 악귀가 가로막더라도 숨을 멈추고 피하여 앞으로 가야지 머뭇거려서는 해전에 <서왕모>를 만나지 못한다고 했다.

    선 씨는 정신을 가다듬고 열심히 길을 재촉했다. 얼마가지 않아서, 황포적삼을 입은 노지심 같이 생긴 사람이 철퇴를 들고 길을 막아서며, 나도 천도를 얻지 못해 신선이 못되고 삼밭에 숨어살며 너 같은 놈을 잡아 먹고사는데, 천도반쪽만 주기로 약속하면 길을 열어 주겠다고 얼음장을 놓는다. 그러나 효자는 숨을 멈춘 채 똑바로 밀치며 뛰어 나갔다.

   「어? 이놈 봐라 나를 놀려?」하며 어이없이 서 있다가,

    질풍같이 달리는 효자를 보고 뇌성벽력 같은 큰소리로 <이놈 게 섰거라!> 하고 철퇴를 휘두르며 따라왔다. 죽기 살기로 뛰어온 바람에 다행히 삼밭을 쉽게 벗어났던 것이다.

    마을에 들어서니 복숭아 향기로 가득하고,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내 마음도 아름다운 것 같이 느껴졌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비단옷을 곱게 차려입고 공손하게 웃는 모습이 신선과 같았다. 이곳은 사람이 죽거나 아프지도 않고, 영원히 사는 곳이라 일러주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는 죄도 거짓도 없고, 미움도, 사랑도 없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영원히 사는 마을이라고 가르쳐 주면서, 자기 집에 머물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다.

   말없이 지나가는 효자에게 누구에게도 이곳의 이야기를 하면 상제의 벌을 받게 된다고 하면서, 이곳을 떠나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못하므로 돌아가지 말라고 권하기도 하였다. 서로 초대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아 이렇게 행복한 천국을 처음 본 것이다.

   얼마를 더 가니, <서왕모>가 있다는 계곡의 정자가 보였다. <서왕모>를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서왕모>는 어머니의 병환은 도원의 복숭아로도 고칠 수 있을 터인데, 삼천년의 천도를 얻어가려는 까닭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무 말을 못하는 효자를 보고,

  「네가 살려야 할 사람이 다로 있느냐?」

    하고 <서왕모>가 다짐하듯 묻는 바람에 효자는 불쌍한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하고 얼떨결에 대답을 하였다.

   「인간의 효도가 위선 때문에 신선이 못 되는 것 이니라.」

    하시며 <서왕모>는 천도 하나를 건너 주면서 상제의 뜻이니, 효자에게 주지만 한 사람만 밖에 구할 수 없다고 하면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천도를 받아 들고 보니 그 빛이 누에같이 해맑고 투명하여 붉은 씨앗이 불꽃처럼 보이는 듯하였다.

   천도를 안고 무사히 돌아온 효자를 보고, 부러워하는 수로왕자의 모습이 이상하였다. 수로왕자는 천도는 생명이라고 하면서, 죽은 사람은 백골이 되어도 살아나고, 사람이 먹으면 삼천년을 사는 신선이 되는 것으로, 상제가 은공이 특별한 신선에게 권능으로 내리는 선물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천도가 아니라도 도원의 복숭아는 사람이나 짐승의 어떠한 병도 고치고, 생명도 구할 수 있고, 신선이나 귀신의 마음도 고칠 수 있는 영물로 용왕께서 만드는 삼색영단도 도원의 복숭아 없이는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용궁의 신선을 만들 수 있는 도원의 복숭아도 삼천년마다 한 번씩 <서왕모>가 천도를 딸 즈음, 상제의 허락을 얻어 한 개의 천도복숭아를 얻어온다고 하였다. 왕자는 우리가 이곳을 나가면 상제가 허락한 삼천년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아 올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나갈 때는 언제나 도원의 천도복숭아는 오직 하나밖에 가져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번에 수로왕자가 죽기를 각오하고 이곳에 온 것은 신선을 닮은 세상 사람과 같이 오는 길에 효자의 손을 빌어 도원의 천도복숭아 하나를 얻어가 용왕에게 효도를 하고 싶었던 생각을 말했던 것이다.

   효자도 수로왕자의 효심에 감동하여 천도를 왕자에게 맡겨둔 채, 다시 동굴을 나와서 도원의 마을로 들어갔던 것이다. 도원의 마을은 거짓이 없는 곳이라 효자를 새로 온 사람처럼 믿음으로 대접을 해주었다.

   오늘이 복숭아를 따는 날이기에 복숭아 한 개 씩을 두 집에서 얻어 가지고 나오는데, 복숭아 두개를 가지고 도원을 나설 수가 없으니 반드시 하나를 두고 가야 한다고 하였다. 선 씨가 돌아와 동굴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수로왕자에게 그 말을 했다.

   수로왕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잠시 기도를 올리고 나드니, 효자에게 명령하듯 말하였다.

  「효자가 천도는 동굴 안에 남겨두고 복숭아 하나만 품고 나오시오!」

   「수로왕자의 복숭아는 어떻게?」

   「동굴을 벗어나기 직전에 복숭아하나는 강 멀리 힘껏 던져 버리십시오!」

   「천도는 누가 가지러 옵니까?」

   「천도는 누구도 가져갈 수 없고, 주인인 효자만이 가져갈 수가 있어요.」

   「두 번 다시 올 수 없다고 하던데….」

   「상제의 허락 없이는 다시 이 길을 찾지 못합니다.」

   「천도는 잊어버릴 수도 있겠는데….」

   「그래서 찾아올 물길을 위해 명주실이 있는 것입니다.」

   「<두삼랑이 명주실을 거두어 가면 어찌요?」

   「천도가 세상으로 나깔때 까지는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

   수로왕자가 이 말을 하자, 조용했던 동굴이 산울림처럼 수로왕자의 말을 반복했다. 떠나야 한다고 하면서 수로왕자는,

   「내가 사라지면 파란영단을 삼킨 후 도원의 복숭아 하나를 멀리 던지고, 곧바로 물속으로 뛰어 드십시오.」하고 물속으로 잠긴다.

    효자는 안절부절 하다가 천도를 감춰둔 곳을 한 번 돌아보고 파란영단을 꿀꺽 삼킨 뒤 복숭아 하나를 강 가운데 멀리 던졌다. 그리고 곧바로 물에 뛰어 들었다. 이상하게도 풍덩하고 물에 사람이 빠지는 소리 하나만 메아리쳤다.

    물속에 들어오자 몸이 싸늘하게 굳어지고 의식이 몽롱해지면서 어디론가 쏜살같이 꿈속에서 끌려가는 것 같았다.

     어디서 징소리와 꽹과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강바닥에 누워있는 선 씨의 몸을 흔들면서 어서 일어나라는 조용한 말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정월대보름이라 강가에 달집을 짓고 동리사람들이 농악을 울리며 달맞이를 하고 있다.

    「선 씨 나는 이제 돌아가야 합니다.」하고 수로왕이 작별인사를 한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머님 병환이 낫거든 나를 찾으시오!」하고 수로왕이 말한다.

    「어떻게 다시 찾습니까?」

    「매월 그믐밤 자정에 묶어둔 명주실을 치며 나를 부르면 돌 것이오. 집에 들어가기 전에 붉은 영단을 꼭 삼키시오.」

     선 씨가 마을로 들어서자 많은 이웃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속으로 세상이 바뀐 것으로 생각했다. 집에 들어서자 친구들이 아픈 어머니를 혼자 두고 어디를 갔는지 걱정하며 어머니가 불쌍해서 볼 수가 없다고 한다.

    그때서야 아직도 신선의 몸이 되어있음을 알고 방으로 들어가 붉은 영단을 삼켰더니 뜨거운 열기가 가슴에 퍼지면서 온몸이 따뜻하게 녹으며 잠이 들었다.

    동리 친구가 가슴을 흔들며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식은땀을 이렇게 흘리며 잠을 자는가!」

    「감기가 엄청나게 들었나 보네.」

     그때서야 친구들이 그를 알아보고 몸이 아프면 진작 이야기를 하지 않고 골방에서 혼자 이게 무슨 짓이냐고 위로를 해준다. 친구들이 애를 태우며 그 동안 어머니를 보살펴준 고마움에 감사를 하고,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숨김없이 해 주었다.

     친구들은 효심이 지극하여 감천을 하였다고 기뻐했다. 효자는 복숭아 즙을 숟가락으로 떠서 어머니 입으로 넣어드리니 큰 기침을 두어 번 하면서 일어나셨다.

    「어머니 아픈 데는 없으십니까?」하고 아들이 묻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예나 다름없이, 아들에게 하던 그대로 대꾸를 하신다.

    「아프긴, 너 시장하겠다. 곧 밥상을 차려 갈 테니….」하고, 어머님이 말을 하자,

     옆에 있던 친구들이 일 년 동안 어머니가 주무셨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어머니는 몸이 이전보다 훨씬 편안하고 가벼워졌다며, 아들의 효심을 칭찬하고, 신기하다며 기뻐하셨다.

 

 

제 4 부

1

  오랜만에 어머님과 예전과 다름없는 행복한 밤을 보내던 선 씨는 어머님께 자초지종을 숨김없이 여쭈었다. 그리고 효자는 어머니와 나를 위해 불쌍하게 저승에서 희생당하신 아버지를 환생시켜 드리는 것이 진실한 효도라고 말을 하였다.

   그러자 꿈에서 너의 아버지가 현몽하여, 나에게 하신 말씀은, 사람의 탐욕이 상제를 속이지 못한다고 하시더라. 부질없는 탐욕 때문에, 인간의 효가 위선을 벗어나지 못하여, 신선이 되지 못하는 빌미가 된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윤지에게 모든 것을 잊고 어머님을 모시고 효도다면, 너로 인해 상제의 믿음이 인간에게 지혜로 내려질 것이라고 간곡히 당부하셨다.

   그러나 선 씨의 마음은 도원에 두고 온 아름다운 천도가 눈에 떠올라 기어이 떠날 결심을 하고, 정월 그믐 자정이 가까워 섬진강변으로 내려와 수문을 열고 실을 통기며 왕자를 불렀다.

   물속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수로왕자가 나타났다. 어머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온 것을 다 아는 듯이 염려하며 묻는다.

   「어머님께서 아버지의 환생을 허락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하지만, 선 씨가 정직한 효심만 지킨다면, 천도로 아버지를 환생케 하실 수 있을 것이오.」

   「부친이 몇 살에 돌아가셨습니까?」

   「서른 살에 돌아가셨답니다.」

   「자당의 연세는 얼마이십니까?」

   「쉰일곱 입니다」

   「선 씨의 나이는 몇 살입니까?」

   「서른다섯입니다.」

   「아들보다 나이가 젊은 아버지의 이성 환생을 진정 바라십니까? 자당께서 두려워 하시는 것도 이것이 재앙이라고 여기시는 것입니다.」

   「누구나 죽었을 때의 나이로 환생합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녹(몫) 없이는 어느 누구도 탄생하지 않는다고 상제께서 점지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사람의 나이도 세월도 모두가 천부랍니다.」

  「천도는 언제 가져올 수 있습니까?」

  「선 씨가 마음만 정하면 언제든지 갈수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어떻게 환생 시킵니까?」

  「청명이 되면 부친 모를 열고, 상제께 감사제를 올린 뒤에 석관을 뚜껑을 열고 천도의 즙을 머리, 가슴, 배, 팔 다리 순서로 해골이나, 구신이 있었던 흙 위에 뿌려주면 됩니다.」

  「그러고 누구든 환생하는 모습을 보아서도 안 됩니다. 볼 수도 없게 하지만.」하고 수로왕자는 선 씨에게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며, 돌아가셔서 자당과 한 번 더 위로하여 마음을 상하지 않도록 하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돌아갔다.

   어느덧 섬진강은 봄을 맞은 듯이 눈이 녹고 강물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선 씨는 어머님께 용서를 빌고 도원을 한 번 더 다녀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나 어머님은 극구 말리시며 욕심을 버려라 일렀다. 그러나 아버지가 어머니를 위해 당나귀로 여생을 마치는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 행복하기 위해 아들보다 나이 젊은 남편을 모시겠느냐? 너 또한 효도를 위해 너보다 젊은 아버지를 모시겠느냐? 모두 두고 라도, 이성에서 자기보다 나이 많은 아들과 어머니 같은 부인과 함께 산다면 너의 아버지에게 무슨 효도가 되겠느냐?

   아들아 어미가 혼자 떠나 살고 싶구나! 제발 나의 말을 들어 다오. 간절히 부탁한다.」하고 통곡을 하시며 극구 말리신다.

    그러나 선 씨는 그토록 말리시는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기어이 집을 나섰다.

 

2

   황혼 빛이 아름답게 물든 섬진강의 봄은 거울같이 맑았다. 강 건너 푸른 솔밭과 백사십리의 모래톱이 거꾸로 뒤집혀 붙은 그림처럼 잔잔한 섬진강물에 비친 아름다운 풍경은 신선이 수를 놓은 비단처럼 곱다.

    선 씨는 강변 대 숲에 앉아 해가 기지를 기다려 명주실을 치며 왕자를 불렀다.

    어둠이 깔리고 사방이 고요해지자 강심에 소용돌이가 일더니, 수로왕자가 나타났다.

  「자정이 멀었는데 급한 일이 생겼습니까?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하기 위해 포기를 하셨습니까?」하고 소로왕자는 기대를 한다.

  「아닙니다. 수로왕자님은 가고 싶지 않겠지요?」하고 선 씨가 묻는다.

  「나의 의지는 선 씨에게 한 약속으로 이미 없습니다.」하고 수로왕자가 단념한다.

  「마음이 흔들릴까 조급하여 집니다.」 하고 선 씨는 불안한 마음을 숨지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은 항상 재앙입니다.」하고 수로왕자는 체념한 듯, 스스로 만든 운명을 피할 수도 없다는 듯이, 지금이라도 출발하고 싶으면 안내해 드리겠다고 말했다.

   쪽빛처럼 파란 구슬을 하나주며,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혀 밑에 감추고, 지난번처럼 한 손은 왕자의 뒷들미를 잡고 한 손은 명주실에 끼어있는 대통을 붙잡고 눈을 감으라고 말한다.

   손 씨가 구슬을 혀 밑에 머금고 수로왕자의 말대로 했다. 엄청나게 힘 센 큰 강메기로 변한 수로왕자가 대통을 잡고 있는 손 씨를 등에 업은 채 명주실을 따라 곡예 하듯 물속깊이 캄캄한 암흑세계로 내 달라기 시작한다.

   몽롱한 가운데 추위와 따뜻함이 번갈아 느껴지면서도 칠흑 같은 암흑이라 주위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지난번의 아름다운 강과 바다 속의 풍광과는 사뭇 다른 암흑의 길이었다. 수로왕자가 불안하게 말했던 것처럼, 열리지 않은 상제의 길을 명주실을 따라 몰래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불안하였다.

    섬진강을 떠날 때는 검은 메기였던 수로왕자가 바다에 들어왔는지 엄청나게 큰 바다뱀장어로 화신을 하여 명주실을 따라 끌려가듯 달려가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넓은 호수 가운데 도착하자 수로왕자는 어느새 거북이로 변하여 선 씨를 등에 업고 천천히 물가로 선 씨를 내려놓고 작은 목소리로,

  「여기가 도원의 기문 동굴입니다.」하고 수로왕자가 말해준다.

  「 … 」

  「입안에 있는 구슬을 뱉어내고 이 구슬을 입에 넣으시오.」

   왕자가 주는 녹색구슬을 청색구슬과 바꾸어 입에 넣자, 말문이 열리고 천도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아- 그 천도의 향기가 납니다.」

   선 씨는 깜깜한 동굴을 더듬어 지난번에 숨겨둔 천도를 찾았다. 선 씨를 등에 태우고 호수가운데까지 들어온 왕자는 다시 구슬을 바꾸어 주며, 물속으로 잠수하더니 커다란 뱀장어로 변하여 다시 명주실을 따라 천천히 헤엄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몽롱한 꿈속에서도 두세 번 따뜻하고 차가움을 느끼며 한참동안 하늘을 치솟듯 올라오더니, 갑자기 눈앞이 훤하게 열리며 아름다운 용궁의 풍광이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정신이 든 선 씨는 오른 손은 명주실에 낀 대통을 붙잡고, 왼손에 천도를 든 채, 황금색이 바래져 회색으로 바뀐 힘없는 커다란 잉어의 등을 타고 있었다. 수로왕자는 기진맥진한 기력으로 유언을 하듯 간신히 말을 한다.

  「선 씨! 무사히 도원을 빠져 나왔습니다.」

  「 … 」

  「나는 더 이상 선 씨를 도울 기력이 없습니다.」

  「 … 」

  「이제부터 선 씨는 대통을 잡은 채 헤엄을 쳐 섬진강을 올라가야 합니다. 그리고 수문에 이르면 구슬을 뱉어 버리면 인간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천명을 다하여 용궁 앞의 산호초가 됩니다. 내가 가라 가라앉기 전에 부지런히 가야 합니다. 어서!」하고 절규하듯 명령한다.

   선 씨는 이 말을 듣자마자 두발로 물장구를 치고, 몸을 흔들며 부지런히 헤엄을 쳤다. 한참 도망가 듯 달리고 있는데, <사람이 신선이 되지 못하는 것은, 위선을 벗지 못한 효도 때문입니다.>하는 수로왕자의 신음소리가 들려 왔다.

   수로왕자는 깊은 바다 속으로 하얀 배를 보이며, 머리를 수중으로 처박았다. 큰 소용덜이를 하얗게 일으키며 가라 앉아 버렸다.

   선 씨의 몸이 소용돌이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을 느끼고 죽을힘을 다하여 헤엄을 쳤다. 드디어 인어처럼 사정없이 솟구쳐 오르더니 맑은 강물이 따듯하게 느껴졌다.

   섬진강 속의 경치가 황홀하고 아름답다. 수많은 작고 큰 물고기들이 오가면서 정답게 손짓하는 것 같고, 조개들의 이야기도 들리는 듯 행복했다. 도원이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어 보였다.

   문득 도원의 신선들이 부러웠다. 신선같이 영원히 살고 싶은 마음이 움트기 시작했다. 강변에 도착하여 물 밖으로 나오려 할 때, 어머니의 간곡한 말씀이 선 씨의 귀에 울렸다. 아버지에게 효도하는 길은 차라리 선 씨가 신선이 되는 것이 낫겠다는 결심을 하고, 입 속의 파란구슬을 물속에 뱉어버렸다.

   갑자기 무등산이 울고 강물이 일렁이며, 천둥 같은 상제의 노성이 선 씨의 귀를 찢듯 너무나 크게 울려왔다. 왼손의 천도를 물위로 들어 올리고, 오른 손은 귀를 막고 물 밖으로 나오려고 애를 썼다.

  『인간이 신선이 되지 못하는 것은, 위선을 감춘 효도 때문이니라. 상제를 속인 너의 몸으로 도원의 길을 막으리라!』하는 순간 효자 선 씨는 커다란 바위로 변해버렸다. 지금도 <아버지―>하고 부르며 왼손에 천도를 손에든 모습의 바위가 무등산 자락 강변에 그대로 있다.

   아버지는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거짓말 잘하는 아이들은 절대 오지바위 있는데서 멱을 감아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매년 섬진강에 빠져죽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일 것이라 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훗날 아버지는 <이것이 너의 외갓집 보성 선 씨 시조의 이야기다> 하시며, 시조 선윤지(宣允祉: 호 退休堂)는 원래 명나라 사람으로 문연각 학사였는데 고려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전라도 안념사(按廉使)가 되어, 전라도 일대에 침입하는 왜구를 소탕하고 민생을 안정시키며 유교의 진흥과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이셨다 한다. 그 후 조선이 개국되자 은퇴하여 신선이 되는 도를 닦으셨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졌다고 하셨다.

   나는 그 뒤부터 어머님이 유별나게 무서운 것도 이상하지 않았고, 중학교입학 할 때까지 오지바위 있는 강에서 멱을 감지 않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