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성의 본능

 

    6·25 동란이 일어나기 얼마 전의 초가을이다. 공씨가 집에 오셨을 때 형과 내가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가려움을 못 참고 피가 나도록 긁어 온 다리와 목덜미가 빨갛게 부어있는 피부병을 가만히 보더니 이 피부병에 좋은 약물이 곡성에 있다고 하였다. 자기도 소문을 듣고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왔는데, 신통하게 잘 나았다고 하시며 우리를 데리고 그 곳에 한 번 더 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씀하였다.
  아마 요즈음 유행하는 알레르기성 아토피 피부질환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공 씨의 말을 곁들은 어머님은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공씨와 함께 곡성을 다녀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하신다. 그러자 아버지는 요즘 전라도에 시국이 어수선하니 그 쪽으로는 여행을 삼가 해야 된다고 하셨다.

  그러나 성정이 급하신 어머님은 괜찮을 것이라고 아버지와 다투시자, 민망한 공 씨는 가시게 되거든 집에 들러주시면 길을 안내하겠다고 약속하고 돌아가셨다.

  여수와 순천에서 국군이 반란을 하여 광양까지 왔다는 소문이 들리는데도 어머님이 우리를 데리고 기어이 다녀오시겠다고 우기신다. 화를 내실 줄 모르시던 아버지께서도 흥분하신다.

「병 낫기 전에 불상사가 나서야 될법한 일이요?!」하시며 야단을 치신다. 그러나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남자가 저렇게 옹졸하게 겁이 많아서야 원…」하며 아버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신다. 참다못한 아버지가

「남들이 임자를 여장부라 하니까 만용이 넘쳐요!!」

 화를 참지 못하신 아버지는 들에 가신다며 삽을 들고 집을 나가시자, 어머님은 형님과 나를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집을 나셨다.

  어머님은 형님과 나를 데리고 섬진강 돔태기 나루터를 건너서 진상으로 갔다. 진상에서는 반란군이 광양읍까지 점령하여 경상도 하동으로 곧 진격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여기저기서도 붉은 완장을 두른 치안대원이 대창을 들고 설치고 있었다. 반란군을 지지하는 농민이나 청년들은 붉은 완장을 두르거나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멀뚱히 서서 재미있게 구경하고 따라오지 않는 나를 보고 되돌아온 어머니와 형님은 말없이 나의 머리와 등을 툭 치며 빨리 따라오라고 다잡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망덕리에 도착하였다. 반갑게 맞아주는 공씨는 우리가 요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오실 때 사정을 물어본다. 조심하여 광양만 지나면 안전하다고 하시며 함께 길을 나섰다. 다시 진상면에 도착하자 벌써 반란군 선발대가 진군해 있었다. 반란군은 붉은 리본을 팔에 두르거나 철모에 띠를 하였고, 한복을 입은 청년들과 어울려 모든 길목마다 책상을 하나씩 놓고 검문을 하고 있었다.

  반란군은 붉은 완장이나 철모에 붉은 띠만 둘렀을 뿐 모두 국군과 똑 같았다. 나는 반란군과 국군이 편을 나누어 전쟁놀이를 하는 것 같이 무섭지도 않고 오히려 참 재미있어 보였다. 그러나 형님은 입술이 파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없이 무서운 표정으로 어머님의 얼굴만 자주 처다 볼 뿐이었다.

  우리가 아직 준비 정돈이 되지 않은 거문소를 빠져 나서며 광양으로 막 들어서려 하는데 바짓가랭이를 짝짝이로 거저올리고 검은 고무신을 신은 좀 무식하게 보이는 젊은 청년이 우리를 보고 고개를 몇 번 갸웃갸웃하더니 뛰어와서 ‘보소, 보소!’하며 공씨와 어머니를 붙잡아 세운다.

「틀림없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모른 척 하고 지나가려니까 그 사람은 공씨를 보고 모두 따라 오라고 한다. 어머님이 천연스럽게 갈아 앉은 목소리로 갈 길이 멀다며 위엄을 보인다.

「쓸데없이 바쁜 사람들을 붙들어 귀찮게 하느냐!」

 그 사람이 고개를 갸웃 그러며 어디서 본 듯한 얼굴로 어머니를 노려보며 말한다.

「대 지주의 며느리가 맞지요!」한다.

「대지주고 소지주고 그게 무슨 말인데 우리를 붙잡아!」

  어머님이 화가 나신 듯 나무라신다. 그때서야 공 씨가 어머님을 말리시며 참으라고 눈짓을 보내며 그 사람을 조용히 달랜다.

「자네가 잘 못 알고 그러네.」

「아무리 닮은 사람 이기로 병든 아이들을 치료하는 길인데 어서 보내주게…」

  공씨는 어찌하던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진땀을 흘리신다. 남의 일처럼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슬슬 모여든다. 그 중에 붉은 완장을 한사람도 있고 머리띠를 한 사람도 있다. 주위에 사람이 모여드니 용기가 솟은 듯 그 청년이 더 큰 소리로 말한다.

「큰애를 여기 남겨두고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조사를 해 보시오!」

 형님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그 청년을 보고 어머님이 호랑이 같은 눈에 쌍불을 켜고 당장이라도 덤벼들어 목을 조를 듯이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정도로 큰 고함소리로 형님의 손을 놓으라고 호통을 치신다.

「이 놈아! 병든 아이를 무슨 권리로 인질을 잡아! 이 죽일 놈아-!」

「어 어 이 여자가 디질려고 환장을 했나!」

「그래 개만도 못한 놈아, 어디 나를 죽여 봐라!」

  ‘하동양철할매’라는 별명으로 소문난 비교적 큰 체구의 어머님께서 흰 무명치마저고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마귀할멈처럼 두 손을 갈고리같이 높이 쳐들고 덤벼들자, 그 사람은 동무들! 이 여자를 죽이시오! 하며 형님의 손목을 놓고 뒤로 물러섰다. 아무도 말려주지 않고 보고만 있는 주위를 휘둘러본 후 제풀에 화가 났던지 이번에는 대창을 앞으로 내밀고 야-앗! 하면서 어머니를 향해 돌진하였다. 눈 깜짝 할 순간이다.

<오냐, 이 놈 잇!>하면서 어머니가 큰 고함을 질렀다. 쿠당탕 하고 검문소 책상머리에 부딪히며 넘어진 사람은 대창을 들고 덤볐던 촌놈이었고, 오히려 어머니가 그의 대창을 빼앗아 들고 그 머슴 같은 청년을 찔러 죽일 듯 충혈 된 눈으로 살기등등하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공 씨가 달려들어 어머니의 허리를 붙들고 말리시며 가까스로 대창을 뺏으셨다.

  이런 소란이 일어나자 멀리서 소식을 들었는지 호루라기를 불며 철모에 붉은 띠를 둘러 계급을 알 수 없는 한 군인이 권총을 차고 짚 차에서 내리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무슨 일이오!」

「대장동무! 이 여자는 대지주의 며느리가 확실합니다.」

  조금 전까지 어머님의 대창 앞에서 손을 싹싹 빌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놈이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일어나며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며 인민재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소리에 공씨가 낙담을 하고 있다가 그 군인을 가만 보더니 회색이 돌아오는 눈치였다.

군인은 잘 알았다면서 그 사람을 칭찬한다.

「동무, 수고하였소.」

「어디 사는 사람들이오?!」

어머니가 군인을 보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하동서 왔오!」

「어디로 가시오?」

「아이들 피부병 때문에 곡성 가는 길이오.」

「곡성으로 갈 수 없소! 위험하오!」

군인의 말이 부드러워지자, 그 머슴 같은 사람이 한 번 더 대장에게 고한다.

「대장동무! 저 여자는 대지줍니다!」

「알겠소! 하동으로 진격중이니… 조사한 후 인민재판에 부치겠소!」

「예…」 

「당신들은 모두 이차를 타시오, 시간 없소!」

  우리는 짚 차 뒤에 올랐다. 녹 쓸고 앉을깨도 없는 철판의자다. 짚 차가 진상을 빠져나오자, 운전병에게<기름도 부족한데 저 굴에서 처리하고 올 테니 신작로 입구에 대기하라>명령한다.

「당신들은 여기 내리시오! 굴속으로 앞서 가시오!」

 권총으로 기차 굴을 가리킨다. 형과 나를 앞세우고 어머님이 뒤에 선다. 군인이 권총을 든 채 따라왔다. 명령을 하는 군인의 목소리가 초조한 듯 다급했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짚 차를 앞에 보내고 철로가 없는 굴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반란군 대장은 다급하게 당부한다.

「이 굴을 따라 빨리 가시오, 누구에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반란군 장교가 굴 밖으로 나가자 권총소리가 두세 번 울렸다. 한참 후 신작로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며 무등산 고개 길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이제야 안심한 듯 어머니는 걸음을 재촉하며 조용하게 설명하듯 말씀하신다.

「왜놈들이 대동아 전쟁을 이겼으면 기차가 이 굴로 다녔을 끼다.」형님도 그때서야 용기를 내어 말한다.

「어머니, 죽으면 어쩔 라고 그렇게 싸웁니까!」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요…」

「죽기를 결심하고 싸우면 살기가 쉽고, 살려달라고 애걸하면 더 죽기 쉬운 기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자주 들려주시던 이순신 장군 이야기 같다.

나도 안심이 되었다. 공 씨 아저씨가 누군지 궁금하였다.

「엄마, 공씨 아저씨가 우리 일가가?」

「참, 공씨 아저씨는 어찌되는 기요?」하며 덩달아 다시 묻는다.

어머님은 기침을 한번하고 나서 역사 선생님 같이 이야기를 시작 하신다.

「니들 할아버지께서는 해방 이전부터 김(해태)밭을 경영하면서 돈을 벌어 해안 포구에 인접한 많은 농지를 사들이고, 인근 거주 농어민에게는 후한 조건으로 소작을 주면서 겨울철 농한기를 이용한 소작인들의 저렴한 인건비와 넓은 소작농토를 이용한 자연 건조과정을 거쳐 많은 해태(김)와 건파래(싱갱이와 속대기 등)을 많이 생산하셨단다. 전라도 광양에서 생산되는 김과 건파래도 하동노량조합의 등록을 받아 수출도 하고 시장에서 팔았다.
  해방이 되고 새나라가 들어선 직후에 토지개혁이 시작되어 할아버지는 하동에 있는 재산은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전라도 광양현지에서 김 생산을 하던 소작농지는 소작인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었단다. 그 중에 공 씨는 소작인들 중 가장 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분이지.」

   그래서 그는 추수를 마치거나, 명절이 될 무렵이면 밤, 고구마, 찹쌀, 수수 등의 특 작물을 소달구지에 실어다 주셨고, 어린 나와 형님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귀여워 해 주셨다.

  나의 기억으로 6.25 사변 직전까지 집에 자주 오셨는데, 서울 수복 후에 소식이 끊겼고, 그의 자식들이 부산에서 큰 관광회사를 차려 잘 산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님께서 기뻐하셨던 모습이 선하다. 

  철교도 없이 다리발만 늙은이 이빨 같이 높은 것 낮은 것이 드문드문 넓은 강폭을 징검다리처럼 박혀있는 돔박곡 나룻 뱃길을 건너 철로 없는 철둑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삽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만났다.

  그토록 여장부답게 무서웠던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께 미안하게 되었다고 사과를 하신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이들 보는데서 내 할 일을 임자에게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위로를 해 주신다.

  훗날 공씨는, 어머니와 우리가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 몰래 가버린 것은, 그 반란군 장교가 바로 할아버지로부터 무상 토지를 얻은 한 소작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리고 그 날 우리와 헤어진 반란군 장교는 구례로 쪽으로 갔다는데, 그 후 소식이 없다고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