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정의 잉태


  모두가 죽었다고 말하는 싸늘한 나를 어머님은 가슴에 사흘을 품고 내려놓지 않았다. 너무나 진지한 모습을 믿고 아버지는 광양군 진월면으로 내려가 할아버지가 일러준 성지의 대나무 큰 것을 잘라 어깨에 둘러메고 한 번도 쉬지 않고 흙 한 점 묻히지 않은 채, 집에까지 운반하여 어머니 방 앞에 세우시고 한울님 감응하시기를 기도하신지 일주일 만에 나의 체온이 돌아오고 얼굴이 붉어지며 기지개를 하고 깨어났다고 한다. 천연두를 옛날에는 손님이라고 하여, 동학의 한울님 곧 조상신이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의 성령을 이어받아 살아났다는 그 때가 다섯 살인가 보다.

  대여섯 살 먹은 꼬마들 대여섯 명이 진흙이 묻을까 염려하여 웃통과 바지를 전부 벗어 멀찌감치 벗어 두고 고추를 달랑거리는 알몸으로 지금은 하동시장이 되어 있는 작은 물도랑에서 수벵이(왕잠자리)를 잡는다고 낙 채를 돌리는 놈, 붕어 송사리를 잡는다고 온몸에 시커먼 진흙을 묻힌 채 손을 휘저으며 고기를 삼태기로 모는 놈, 어떤 놈은 물도랑을 막아 고무신짝으로 물을 퍼내고 잡은 붕어 송사리를 고무신에 맑은 물을 담아 넣어둔다. 네 것, 내 것 해가면서 가지런히 정렬해둔 크고 작은 검은 고무신짝이 나란히 불어난다.

  날씨가 갑자기 어두워지며 후텁지근한 구름냄새가 가슴팍에 밀려오더니, 주먹만 한 빗방울이 이마와 어깨에 후드득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어떤 것은 따뜻하고 어떤 것은 소름끼치도록 차다. 시커먼 구름이 하늘을 전부 뒤덮었는데도 멀리 '너뱅이' 끝자락 하저구 하늘만 흰 이불보에 뚫린 구멍같이 작은 파란하늘 사이사이로 번갯불이 숨바꼭질을 한다. 갑자기 더 컴컴해지더니 하늘이 무너지듯 쏟아지는 소나기에 벗어둔 옷과 고무신들이 송사리를 실은 채 모두 떠내려 가버렸다.

  진흙 뻘죽이 된 팬티를 입었던 몇 놈도 모두 발가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어둠 어둑한 대낮의 소나기를 이용하여 섬진강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옷을 씻어 입을 양으로 목 넘어 섬진강 쪽으로 달려가는 중에, 지금의 하동읍사무소 앞까지 뛰어오자 갑자기 비가 멎고 햇볕이 쨍쨍 나버렸다.

  모두가 고추를 손으로 가린 채 엉금엉금 뛰어가는 우리를 보고, 지나던 어른들이 요- 매사니(메아리의 요정)놈들 모두 잡아다 꼬치를 따야지! 하며 뒤를 좇아오는 시늉을 하며 뛰어오기도 한다. 그때의 기억으로 꼬마들의 대장이 지금의(주)참존 김회장으로 기억된다.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 몰래 열심히 우물을 퍼부어도 머리털과 바지저고리에 파묻힌 진흙과 시커먼 뻘은 물감처럼 잘 씻어지지가 않는다. 결국 어머님과 누님들에게 발각되어 종아리에 실핏줄이 서너 개 생긴 후에야 편안하게 새 옷을 갈아입고 밥을 얻어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