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키호테의 도전

   20년을 넘도록 자랑스런 해기사로 청춘의 바다를 누볐던 나의 경륜에 비참하고 부끄수모를 뒤집어쓰게 했던 세월호 참사였다. 그 울분이 가득한 불면증으로 변하여 추억의 사월과 아름다운 오월의 인생을 원망하다가 우연히 인라인스케이팅이 정직한 마음을 되찾을 수 있는 나의 운동으로 어필되었다. 인터넷에서 인라인스케이팅을 즐기는 7~80대의 건강한 모습이 아름다웠다.

   6월의 아지랑이가 하늘거리는 신안강변의 넓은 인라인장에서 내 혼자 시작한 이라인 스케이트가 6.25를 맞았다. 그후 한동안 부상치료를 마치고 동아리 선배들의 지도와 충고를 들으면서 속도를 낼 수 있는 스케이팅을 할 수 있을 때쯤이 8.15광복이었다. 일년이 지난 지금은 인라인 관성에 속력이 붙었다. 뛰는 사람은 물론 운동으로 즐기는 노인들의 자전거도 앞지르기 시작했다.

   어느날 운동장에서 속도를 재어보았다. 꿈같이 여겼던 나의 목표인 평균 속도(21Km/h)를 달성한 것이다. 인라인 학습을 도와준 오씨가 나의 요청대로 제5회문공부장관배전국인라인경기에 신설된 슈퍼골드 800m(46년 이전출생)경기와 제1회전국새만금인라인마라톤 21Km masters에 참가 신청을 해주었던 것이다. 시합당일 아내와 함께 이른 아침을 먹고 국도로 창원까지 달려갔다.

  경기시작 직전에 경기장에 도착했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경기진행원이 나의 참가 번호를 챙겨 주었다. 인천인가 경기도 선수라는 노인이 나를 찾아왔다. 무릅과 팔꿈치 보호대를 낀 나를 보고 얼마나 인라인스케이팅을 탔느냐며 묻는다. 작년 여름에 배웠다며 잘 지도해 달라고 말했다. 점심 식사 후에 나의 경기가 시작되었다. 7명의 선수가 차례대로 줄을 섰다.

  출발 하는 법을 며칠 전에 배운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있다. 총 소리와 함께 내 옆의 선수가 나의 왼팔을 사정없이 후려치며 번개같이 튕겨나갔다. 내가 한 발짝을 내디뎠을 즈음 6명의 선수가 떼를 지어 이미 20미터를 앞서가고 있었다. 기운이 확 풀리며 경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의 뜨거운 성원을 생각하여 힘을 다하여 눈 앞에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을 열심히 달렸다.

  세 바퀴 째도 나의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마지막 바퀴의 종소리를 들었을 때가 다른 사람들에겐 결승점이었다. 내가 한 바퀴를 뒤진 것이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을 혼자 달린 것 같다. 나 혼자만의 동키호테 경기를 축하한다며 엄지 손가락을 들어준 감독관이 이상했다. 아내는 어른들이 달리는데 아이가 뒤 딸아가는 형국이었고 진로방해로 퇴장될까 걱정했다며 위로해 준다.

  혜성같은 생활체육인이 될 것이라고 큰소리쳤던 내가 부끄러웠다. 우승 사냥꾼들이 나에게 말해준 것은, 첫 출전에 완주 한 것도 대단하지만, 내노라하는 전국의 일류선수들과 한 운동장에서 놀았다는 것만으로 건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생활체육을 고맙게 여기라는 것이다. 내년은 결승전에 추월당하지 않는 것이 나의 목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