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짚신

   내가 국민하교 입학하던 해 아버지는 나의 발을 만지시며 '발을 손보다 더 귀하게 아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발을 쓰다듬어주셨다. 우리집은「공루(요즘의 천장을 2층으로 만든 다락방과 같다)」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은 아버지가 짚공예를 전문으로 하시던 공간(공방)이었다. 식구라도 그곳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 반드시 어머니와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야만 올라가 볼 수 있는 비밀 공간이었다.

  그러기에 공루에 쉽게 오를 수 있는 계단이나 사다리도 없다. 기둥 허리를 밟고 조심스럽게 타고 올라갈 수 있는 발 받침이 하나 매달려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그 곳에다 농주(당시는 밀주)를 몰래담아 감추는 곳이었고, 아버지는 그 곳에서 꽃짚신, 멍석, 더석, 망태기나 삼태기 인형 등 짚공예품을 만들어 두는 곳이었다. 아버지는 이웃 사람들이 무엇이든 부탁을 하면 틈틈이 그곳에서 만들어 주시던 짚 공예 예술의 대가이시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한 어느날 아버지는 조그마한 꽃 짚신을 만들어 나에게 입학 선물로 주셨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워 그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항상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니던 나는 친구들 처럼 하얀 운동화를 신고 싶었다. 아버지는 '왜놈의 흉내를 내어서야 되겠느냐!' 하시며 이 신발을 신고 가을 운동회때 달려보아라고 하셨다. 질긴 삼에다 붉고 파란 물감을 들여 촘촘히 짠 꽃짚신은 꼭 인형같이 예뻣다.

  가을 운동회가 돌아왔다. 나는 장애물 달리기 경기에서 일등을 했다. 고무신보다 너무 가볍고 미끄럽지 않아 높이 뛰기도 쉬웠다. 마치 육상선수들이 스파이크신을 신고 달리듯 나는 훨훨 날았던 것이다. 친구들은 내가 특별한 신발을 신었기 때문에 일등을 했다고 불평을 했다. 고무신을 신고 운동회 연습을 할 때는 항상 삼등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동회를 마치고 책상 밑에 두었던 그 신발은 누가 가져갔는지 없어져 버렸다.

  이듬해 가을 운동회가 시작될 무렵 친구들 모두가 아버지에게 꽃짚신을 만들어 달라고 졸라대니 아버지는 시간이 없어 두 켤레밖에 만들 수 없으니, 너희끼리 상의를 하여 두켤레의 주인을 정하라고 하시며 빙그레 웃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