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와  3·1절

   조선 말기의 동학이 천도교로 대고천하되어 한국 제1의 대 종교가 된 것으로 종지는 인내천이다. 천인합일의 지경으로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지상천국은 정신개벽, 민족개벽, 사회개벽의 순차에 따라야 이루어진다고 했다. 수운 최제우 대신사가 1세교주, 해월 신사가 2세교주, 의암 성사가 3세 교주다. 전국민 7~80%가 천도교(동학)의 교리(동경대전)을 외웠다. 나의 부모님도 할아버지도 동학혁명을 지지했던 농민이었다.

   오늘은 3.1절이다. 1919(기미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힘 입은 33인의 민족대표였던 손병희 성사는 3.1운동을 총괄 지휘 했던 통령이었다. 유교 불교 천주교 기독교의 지도자들과 함께 조직한 33인의 민족대표들은 탑골공원(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을 선포하고 전국 210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이때 참가했던 단체 수는 1천 500여 개였고, 참가 인원은 200만명이 넘었다.

  잔학한 일본군은 비무장한 한민족을 무자비하게 살상했다. 당시 기록의 사망자는 7천 500여 명, 부상자는 1만 6000여 명, 체포된 자는 4만 7000여 명 이었다. 우리는 그 때의 정신개벽을 지금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역사의 향수를 반추하고 있는 이유는 현재 한국의 부패정치가 한말의 일본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