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賃乘車

 

웅암 이진원

 

   지난 주말은 문중의 합동 성묘일이었다. 음력 8월 1일. 이 날을 수 세기 동안 지키져 오면서 일족의 공동의무를 고취시켜왔다. 문중을 세우신 5형제의 할아버지 자손들인 아버지 형제항열들인데 그 중에서 동학사상으로 정신무장한 개화파의 일원 들이많았었다. 나에게 각인된 그 잔상이 60년을 넘긴 지금, 나의 책임으로 절로 남아버렸다.

  태풍으로 한 주일을 미룬 오늘 새벽에 봉안당으로 왔다. 철대문 설주의 꺾쇠가 부러지고 철문이 떨어져 나무기둥으로 받쳐저 있었다. 매년 주차장 제초작업과 주변의 환경 정리등 큰 일은 미리 해 두고, 봉안당 영내의 청소만 간단히 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쳐준다. 즐거운 참배와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온 것이다.

  10시가 되어도 한 사람 오지 않았다. 벌초를 혼자 마무리 한 풀 숲에 버려진 빈 술병과 종이 컵들이 발견되었다. 어제 이웃 정씨가 태풍이 지난간 다음날 문중 일족이 성묘를 왔다가 문을 수부고 자동차를 진입시킨 것 같다는 제보가 확인된 셈이다. 종친회의 의사결정에는 미꾸라지처럼 빠지면서 결정 사항에 사사건건 불평을 선동하고 갈등을 조장하면서 의무이행을 회피하는 이단자의 소행같다.

   경찰에 고발을 하고, DNA검사를 의뢰할까도 생각하였다. 분수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건방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분수가 없다는 구체적 명분은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 매사에서 권리만 주장하고, 그 반대급부인 의무를 망각한 형상을 <무임승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의  공동사회에서 <무임승차>가 사라진 곳이 바로 우리의 이상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