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과 실망 
<진주성 논개제 감회>

 

웅암/이 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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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중 하나는 어느 고장이나 그 지방의 축제에 가 보면 지역봉사자들이 제복을 챙겨입고 교통정리나, 안내, 미아보호와 유실물 관리 등의 다양한 봉사를 하는 모습이다. 다른 나라에도 가끔 씩 특색있는 복장이나, 가면, 또는 현역시절에 입던 정복을 차려 입고, 안내를 하는 노인들이나 지역 주민을 더러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처럼 조직적으로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 일은 거의 없다.

    엊그제 진주성 일원에서 <논개제>가 열렸다. 진주성 공북문 삼거리에 모의 경찰제복을 입은 청장년 봉사자들이 떼지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보건소 주차장 입출구에 설치된 건널목의 위치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교통법규에 건널목에 보행자가 진입하면 운전자는 정지선을 지켜 일단 정지 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서 건널목이 안전하므로 먼 길을 돌아 가게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이 건너가도 자동차는 앞 뒤로 스쳐지나 갈 뿐 멈추지 않는다. 이 건널목을 지나가는 차량의 운행방향은 다섯 방향이나 된다. 한꺼번에 차량이 진입하면 서로 엉켜 건널목은 최고의 위험 지역이 되므로 인도로 피신을 해야 한다. 가까운 거리를 횡단하기 위해 설치한 건널목의 위치가 차량 집중으로 더 위험한 곳에 보행자를 밀어넣는 꼴이 된 것이다. 나는 매일 오후 4시경이면 이 곳을 두 번씩 지난다.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지켜주면 어느 곳이나 건널목이 안전하겠지만, 어차피 차를 피하여 길을 건너야 할 바에는 자동차가 분산된 곳을 찾아 안전지대를 이용하여 길을 건너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런데도 운전자들은 멀리서 경적을 울린다. 건널목을 건너가라는 말이다. 어제 내가 건널목을 지나다가 차에 받칠뻔 하였다. 걸음보다 빠르게 내 앞을 지나 갔다. 봉사자가 어-차!하며 소릴 지른다. 두 사람이 건널목을 지키면서도 이 모양이다. 건널목일수록 속도를 더내어 보행자를 앞지르는 버릇은 여전하다.

  서구의 축제나, 중남미의 축제에 가 보면, 보행자를 우선하여 자동차를 통제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차를 소통 시키기 위해 보행자를 통제하는 교통 후진국이다. 진주의 축제때마다 늘상 보행자를 세워두고 차를 먼저 보낸다. 불법 운전을 조장시키는 것이다. 축제에 자동차를 몰고 나오지 못하게 하는 전통을 세우는 봉사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보행자 통행을 우선시켜 차를 통제하는 원칙을 배워야 한다.

   오랜만에 성지에서 사방이 열린 마당무대가 정감이 들었다. 공연자들의 표정과 숨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내 자신이 연주단원이나 가수가 되어 노래를 부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조용하게 들려오는 음향기기의 맑은 소리가 자연 공명으로 울려퍼져선지, 멀리서도 가까운 데서도 조용하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기에 청중들의 도란거리는 이야기 소리까지도 들렸다. 실내 음악을 감상하는 부위기를 느낄 정도였다. 산만하지 않고 숨을 죽이고 시청하는 관충들의 표정이 진지하게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조명이 켜지자 관중들의 표정이나, 출연자들의 표정이 모두 다 일그려진 얼굴이었다. 조명이란 무대 위의 공연자의 시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 특히 악보를 정확하게 볼수 없게 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무대가 낮출 수록 조명은 더 높게 설치하여 조명 사각을 최저 45도~60도(bird angle)정도는 지켜, 마당무대 안쪽만 조명하고, 관중석은 특별한 경우(비디오 조명)외에는 조명을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번 마당무대의 조명각도가 너무 낮아 연주자도 관중도 눈이부셔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아 아쉬웠다.

    솔직하게 카메라로 멋진 영상을 도무지 얻을 수가 없었다. 사방 팔방이 모두 역광이라 프로파일이 되었다. 어쩌다 조명이 꺼질 때 어두운 영상 한 두 컷을 찍었으나 포인트 촬영은 불가능 했다.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처음 시도한 마당무대는 시민들이 좋아하는 것 같았다. 정겹고 다정한 연주자들의 표정과 육안이 서로 마주칠 때의 설레임을 느낄 수 있는 마당무대가,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선수들의 숨소리를 듣는 박진감 넘치는 축구를 구경하는 기분이나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