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의 감응과 도통
― 나의 주장과 생각

 

이 진 원      

 

1.  천도교의 후천

   우리 민족은 오래전 부터 한자를 차용하여 지성 감천이란 말을 권선의 생활계명으로 써왔다. 천도교(동학)에서는 이 말을 感應, 유, 불, 선 삼교에서는 득도, 천주교나 기독교에서는 응답이라 표현하는 것 같다. 원래 감천이란 민속신앙의 토속어 이지만,  나는 감응, 득도, 응답 등이 바로 감천이라고 생각한다.

  지성 감천이란 무기력하고 무능한 인간이 갖는 최후의 절망이자 희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울님은 연약하고 안일한 인간을 결코 도우지 않는다. 아무리 연약하고 어렵고 힘겨워도 한울의 의지를 지키는 자를 도우기 때문이다. 우리는 '至誠이면 感天'이라는 말을 쉽게 쓰면서 자위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이것은 자신의 생명을 자박하는 무서운 형륙이 되어 되돌아오는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지성감천이란 우리 민족의 보편적·전통적·자연적·종교이념 일뿐만 아니라, 동학사상의 궁궁인 핵(宗旨)이라 생각한다.  내가 어설프게 알고 있는 동학이란  나에게 각인된 부친의 실천적 생활과 부친의 이야기를 기억한 것 뿐이다.  천도교에 입도하여 3년이 지나서야 동경대전의 진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고, 지성감천이 동학이념과 상통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울은 스스로 돕는자를 도운다' 는 서양속담이 비견된다. 그래서 동학의 지성은 스스로 돕는 것을 의미하고,  감천이란 감응,  득도,  응답이란 표현과도 유사한 것이라 여긴다. 나아가  '지성이면 감천한다'는 말이 동경대전의 참회, 성경의 회개, 유불선의 감화라고 단정하였다. 그러나 이 참회와 회개와 감화는 진리를 깨닫고 반성하여 자학하는 비통한 눈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천도교의 참회란 잘못을 깨닫고 그로 인한 과오나 책임을 실천궁행하는 의무가 내포되어 있다.  기독교의 응답이나 유불선의 득도는 빌어 얻은 깨달음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자기만족의 미래 지향일 뿐이다. 물론 이로 인한 소극적 배려와 간접적 봉사는 자연적으로 수반되지만, 천도교의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실천의무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것이 천도교경전에서 선천과 후천의 구별이라고 지적한다.  

   천도교에서는 아무리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일지라도 그의 의지가 지성으로 치닫는 목표의 대상에 비례하여 한울님의 감응이 불가사의한 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확실하다. 나는 이러한 사실이 나의 생활체험 속에서도 일어났음을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진정한 참회란 자신을 믿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이며, 한울의 의지와 성품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회란 책임을 회피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는 인간관계의 형성인 것이다.  참회란 어느 누구도 스스로 이루어 내는 것이고,  스스로 이루어 낼 수밖에 없는 한울의 의지이다.  천도교의 후천의 진리가 바로 이런 것이다. 후천 세계는 이제껏 빌어 행복했던 은혜를 되 갚아야 할 실천적 의무가 있다는 것이 천도교의 참회라 할 것이다. 입도한 그날이 도통이라는 의미가 바로 이것이며, 천도교의 포덕이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2. 천도교의 도통

  천도교나 다른 종교에서 그들이 정한 교당이나 수련원에서 그들의 지도방식에 따라 수련하거나 기도를 해야만 도통할 수 있는 것으로 믿게 한다. 병든 환자가 병원의 지시를 엄수하라는 이치라고 비유된다. 병원울 가지 못하는 많은 환자의 질병이 자연환경에서 자연치유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경전의 진리이기도 하다.

   더구나 건강한 사람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잘 못 받아 환자가 되어 나오는 경우가 병원에서 병을 완치하는 것보다 더 많다면, 최고의 인술을 갖춘 병원으로 격상되기 전에는 아무도 그 곳을 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를 종교적 패러다임 전환이라 비유한다. 물론 패러다임 전환은 인위적,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혁신도 혁명도 아닌 한 순간에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한울의 의지다. 지상천국이 어느새 온 것을 모르는 것 처럼…….

  경전에는 어느때나 어느곳에서 누구라도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하면 강령이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강령을 학술적으로 종교체험이라 한다. 그런데 이 강령을 도통으로 잘 못 여기는 사람이 많다. 경전에 도통이란 이런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영적을 베풀수 있는 조화를 가졌어도 이를 도통의 초보라고 말씀하셨다.  강령은 참회의 길(知)로 통하는 깨달음이며 그 참회를 실천 하는 것이 도통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실천없는 도통이란 없다는 말이며,  도통은 반드시 실천된 형상으로 보여진다고 했다. 그렇다면 실천된 형상은 어떤 것이며, 무엇을 위해 도통을 해야 할 것인가도 알아야 한다.  나는 천도교의 도통이란 경전 속의 참회와 감응으로 알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은 생각을 달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도통의 목적을 의무로 보지 않고,  수련의 급부로 얻어지는 한울의 권능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나아가 지극한 수련으로 도통이 되면 스스로 신격화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물론 도통은 지극한 수련에서 무엇보다 빠르게 얻어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평상의 생활 속에서도 넓고 깊게 크게 얻어질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참회와 감응은 사람의 생활환경에 따라, 깨달음의 정도에 비례하여 도통의 형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 한다. 이러한 암시는 경전 곳곳에 나타나 있으나 사람마다 인식하는 마음이 다른 것도 그 형상의 하나일 것이다.

   천도교의 도통이란 오직 인간에게 베풀어준 한울의 의지이므로, 한울님을 믿는 정성으로 실천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직도 많은 천도교도는 도통이나 경전의 진리가 공동의무의 이행이며, 이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지상천국은 바랄 것도 없고, 가혹한 시련으로 감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천도교가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도 우리 모두의 도통의 형상이라고 여겨야 할 것이다. 

   천도교의 도통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이루지는 것임을 앞서 말했다. 천도교경전은 모든 종교이념을 개괄적으로 포용하고 있는 의미가 바로 이를 말한다. 경전에서는 입도한 그날 우리는 모두가 토동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차별이 없는 서로의 신뢰가 동귀일체라 일러주고 있다. 기득권, 특권처럼 여기는 신앙의 기간, 가문과 연원,  도호의 자랑, 조직의 크기 등 인위로 조작된 신앙의 레벨로 한울님의 키를 재고 무게를 달고 있는 지금의 형국은 한울을 슬프게 하는 일이다. 진정으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지극한 수련이 아닌가!

 

3. 천도교 도통의 형상

   천도교 도통은 경전의 진리가 순리로 이루어 진 형상이다. 경전의 진리가 순리로 이루어 내는 자연현상을 무위이화라고 한다면,  인간이 한울님의 의지로 이루어낸 형상이 도통이다. 그래서 천도교의 도통은 사람이 한울님의 의지를 실천했을 때만 가능하며, 위임받은 한울의 권능을 올바르게 베풀었 때 비로소 도통이라 인정한다. 그러므로 한울님의 권능을 감응 받는 것만으로 도통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감응이 곧 도통이란 생각을 가진 수련자의 모습이 처음 입도한 사람을 의심나게 만들고, 천도교(동학)가 사이비 종교로 착각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런 모습을 대신사는 구구절절이 유사로 노래하시며 가련한 순교를 하셨다. 나는 천도교에 입도한 후 3년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는 수련모습이 이 글을 쓰게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입도 전의 일이나, 입도 후에 이루어진 불가사의한 일들이 한울님의 의지가 기연된 것임을 말하려고 한 것이다.

   나는 도통의 형상이란 불가항력인 고난에도 그 믿음과 의지를 끝까지 지켜 나가면 반드시 뜻대로 이루어진 결과가 도통의 형상이라 믿는다.  그리고 천도교의 도통은 실천하는 자에게만 이루어졌다는 것,  스스로 돕는자의 마음으로 정직하게 실천하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 젔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도통의 형상들을 몇 가지만 열거 해본다.

  20년의 해상 상활을 마치고 육지에 정착할 터전을 마련하여 1983년 4월경에 진주로 이사를 했다. 진주시청의 직권남용에 대항하여 이순의 나이에 방송통신대학의 법학과를 독공하며 행정심판, 행정소송, 민사소송, 형사소송 등의 비참한 시련을 감내하면서 25년여의 인권쟁투는 한울의 감응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힘과 권력은 선이며 상대적 권리 또한 힘이 있을 때만 선이 된다는 진리를 깨달았다.

   가족법의 개정으로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씨족의 역사를 보존하는 길은 족보의 원형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족보의 원형을 보존한다는 것은 동학이념과도 부합된다.  족보의 원형을 전산화하고 그 자료를 공개하여 객관적 검증을 받는 것은 공동의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독불장군처럼 방송통신대학의 컴퓨터과학과, 중어중문학과, 미디어영상학과를 수료하면서 기어이 3000여쪽의 한문족보의 원형을 인터넷에 공개할 수 있게되었다. 무려 10년여의 인고의 세월이었다. 한울의 의지가 아니면 가망없는 일이다.

   가문의 문중재산이 탕진되고 파산할 즈음 장묘법이 개정되었다. 수많은 선조들의 묘소를 잃어 버렸고, 후손들의 궁핍은 마치 지금의 천도교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빈 공간을 채우듯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제향귀진(2400기)을 건립하여 서부경남 전역에 산재한 선조의 묘소와 실묘한 선조의 위패를 이곳에 봉안 하였다.  어른들의 기쁨은 선영의 돌보심이 무심치 않음을 인정한 불가사의한 일이라 하셨다. 이것이 도통의 형상임을 입도후에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나의 입으로 말한 우연이 무서운 도통의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럴수가, 어찌 이렇게까지 이를까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진실은 비굴하지 않아야 하고, 한울의 의지를 시험하는 어리석은 믿음으로 비유된다. 한 사람의 한울의 의지를 도우면 대통령도 될 수도 있고, 이 사람과의 약속을 경시하면 대통령도 탄핵을 받게된다. 그리고 이 약자를 속여 책임을 회피하면 대통령도 형륙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도통의 형상이 나의 말로 이루어 진 도통의 형상이라면,  올바른 의지에는 누구나 도통의 형상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천도교의 경전은 교정일체를 종지로 하기 때문이다.

 

4. 후천의 징후

   나는 1959년 여름, 자유당 정권말기에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해병대에 입대하여 4.19혁명을 맞았다. 그때 대학생인 친구들은 나에게 돌을 던졌다. 실탄을 장진한 총을 거꾸로 매고 철모를 방패삼아 돌팔매를 맞았다. 그러나 그 친구들이 밉지 않았다. 나와 나의 친구들의 의지는 한울의 의지였기 때문이다.
   1961년 5월, 나는 혁명군이 되었다.  이때에도 대학생인 친구들의 돌팔매를 맞고 이마에 피를 흘리기도 했으나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것도 한을의 의지가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962년 2월 28일 나는 제대를 하고,  제5공화국 탄생을 탄생시켰다.
  한울의지가 흔들리는 형국을 두 눈으로 보았다.  6공화국, 7공화국의 무능하고 타락한 한울의지를 보고 비분 강개하였다.
  그 때의 부정축재에 비하면 지금의 최고 권력자의 과오는 해병의 말로 새발의 피나 같은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일선공무원들은 이보다 더 큰 부정축재나 배임죄를 저지르고도 무서워하지 않는 행정제국의 부패모습이 패러다임전환을 부르는 후천의 징후가 아니겠는가.

   후천의 징후는 국가 최고의 권력자나 교단의 지도자의 작은 과오는 그 대상이 국민이며, 교령의 대상은 모든 천도교도가 아닌가. 따라서 도통의 형상은 그 대상에 비례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도통의 형상은 가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으로 청렴하고 올바른 한울의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고,  교령이 되어야한다는 패러다임 전환을 인식하라는 후천의 징후가 분명하다. 머뭇거리고 안일한 약자에게 감천은 않을 뿐더러 반대 급부의 형륙으로 감응한다는 징후를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