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에서 보낸 망년

 

                                                                                                                         이 진 원

  아내로부터 전화오기를 기다리며 트로트 대축제란 음악회를 본다. 요즈음은 TV 라이브 프로도 버라이어티하게 그 규모가 광범하게 펼쳐져 예전처럼 단조롭지가 않다. 디지털엔터테인먼트 시대라는 실감이 난다. 갑자기 추워진 탓에 기운을 잃은 방안의 온기가 고희의 나이를 이불속으로 밀어 넣는다.

  비몽사몽간에 음악 소리와 어울리는 징글벨 소리가 들린다. 깜박 잠이 들었나 보다. 깜짝 놀라 다급하게 들어 올린 수화기에서 잠들었소? 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멋 적게 바로 나갈까요? 하고 되물었다. 아내는 날씨가 몹시 추우니 옷을 두둑이 입고 ‘지오리꼬’로 바로 나오라고 한다.

  진주로 이사 온지 25년이 넘었어도 진주성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만은 마치 꿈속의 지옥처럼 한심하고, 더러운 기득권이 판을 치는 편협한 고장, 추악하고 陳腐한 行政古都라는 잔상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 만은 이를 악물고 이 잔상을 털어버리기 위해 아내의 일터에서 만나, 진주성의 망년을 가져보려고 했던 것이다.

  걸음을 가볍게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따뜻이 입고 아내의 일터로 가 보았다. 조용한 카페에 아직도 손님이 있었고, 나를 뒤따라 들어온 인도의 신사부부 같은 사람이 이층으로 올라갔다. 자주 이곳을 찾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지오리꼬’는 정성이 가득히 배인 서구풍의 아늑한 작은 카페를 연상하는 자유스러운 분위기였다.

 내가 서성이며 머뭇거리자 어떻게 오셨냐고 바텐더가 묻기에
 “원 여사 일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좀 전에 퇴근을 했는데요...”
 “여기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내를 찾는 나를 알아본 젊은 분이 직접 자리를 안내해 주며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다.  나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인사를 받으며 정해 준 자리에 앉아 그가 권하는 따뜻한 녹차를 주문하였다.

 
“전화를 걸어 보시지요”한다

 겹겹으로 입은 옷을 들치고 호주머니에 차고 있는 돋보기를 꺼내 쓰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도 추운 날씨라 그 사이에 외투를 입으려 집으로 갔단다. 아내와 별거를 한지가 벌써 2년이 넘었다. 민주국가란 것이 멀쩡한 가정을 풍비박산 해 번린 탓이다. 바로 진주시청의 부패한 직권남용 때문이다. 아직도 그 한 많은 민원은 지금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 헌법소원까지 갈 것 같다.

  아내가 허겁지겁 들어왔다. 아내와 함께 이층으로 올라가 음악 연주도 보았다. 그리고 나를 먼저 알아본 사장을 다시 만나 인사를 하였다. 머리를 길러 더 젊게 보였다. 2년 전 진주성 야외연주 때보다 더 젊어 보였다. 미처 알아보지 못하여 미안했다. 나도 아코디언을 메고 외국인들과 합주를 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사장도 크게 반긴다. 한국가요도 소화할 수 있다고 하며, 손님들도 자기도 아코디언 소리를 좋아한다고 했다. 언젠가 한번 협주해 볼 것을 약속하고 그곳을 나왔다. 나이 많은 아내의 직장을 2년이 넘도록 돌봐준 은혜가 참 크다. 무능력한 나의 가족부양의무를 면탈케 해준‘지오리꼬’젊은 사장이 새삼 고마웠다. 찻값도 극구 받지 않고 문밖까지 전송해주는 지오리꼬의 송구영신이 추위마저 잊게 해 주었다.

  아내가 하나더 준비해온 목도리를 둘렀더니 귀까지 따뜻하여 좋았다. 수년 만에 아내와 밤거리를 거닐어 보는 것 같다. 촉석루 옆에 떡국을 30만 그릇이나 준비를 했다고 자랑하는 봉사원의 안내대로 줄을 지어서서 종소리 울릴 때를 기다린다. 멋쟁이 여자경찰관 두 사람이 질서를 지키는 분위기가 옛날을 회상케 한다. 나의 뒤에 열 살 남짓한 어린이가 앉았다 섰다 발을  굴리며 지겨운 듯 엄마와 서있는 모습을 본다. 

   625동란 수복직후의 그리스마스 날, 운동장에 천막교실을 지어 그곳에서 UN구호물자로 배급되는 학용품 한 개를 받기위해 줄을 서라고 안내하는 여군간호장교의 지시에 따라 발을 동동 굴리며 서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갑자기 종소리가 웅장하게 퍼졌다. 수많은 풍선이 한꺼번에 꼬리를 흔들며 촘촘히 별이 박힌 까만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아내가“아! 올챙이 같다”고 고함치며 어린애처럼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나도 덩달아 장갑 낀 손으로 박수를 치며“잉태를 위한 정자들의 진군”같다고 외쳤다. 한 사람의 생명을 잉태시키기 위해 수억의 경쟁자들이 자멸하며 도태되는 서글픈 인생의 환상 같다.

   아내가 얻어온 두 그릇의 떡국이 진주시가 우리부부에게 베풀어 준 최초의 봉사라고나 할까. 노익장 부인들의 사물놀이 중머리 리듬을 따라 몸을 흔들며 촉석루 입구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던 우리부부는 동명극장 앞에서 나는 옥봉동으로 아내는 봉수동으로 헤어지며 아쉬운 망년회는 끝났다. 무자년 새해에는 우리 네 식구가 비가 새지 않는 큰집을 구하여 함께 모여 오순도순 옛날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능동적 책임을 지는 효율적 기능행정체제로 돌입하겠다는 MB뉴딜 이코노믹스의 새 정부로 탄생하겠다는 당선자와 인수위의 의욕이 뚜렷하게 느껴진 탓이라고나 할까. 정부도 공기업도 구성원 자신들이 벼슬로 착각해온 지금까지의 생각을 깨끗이 버려야 한다. 이제 국민을 위해 쓸데 있는 돈을 벌어 올곧게 써야하는 정직한 공무원이 되어 정직하게 살아가는 국민이 더 이상 힘들지 않는 선진조국이 되도록 해 주었으면 좋겠다.
<2008. 1. 1.촉석루에서>